“현재 우리나라는 경영권을 방어할 수단이 없습니다. 경영권 방어 수단이 없다고 경영권 방어 행위가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자기주식을 취득해 소각이나 처분하지 않고 대주주가 갖고 있었던 거죠.”
김지평 김앤장 법률사무소 변호사는 26일 서울 마포구 한국상장회사협의회에서 열린 ‘기업 밸류업을 위한 지배구조 개선 세미나’에서 이같이 밝혔다. 적은 지분으로도 회사의 경영권을 지킬 수 있는 대주주의 방어 수단이 법적으로 보장되지 않아 궁여지책으로 자사주라는 카드를 쓴다는 의미에서다. 이날 세미나는 상법 개정안의 도입 필요성을 처음 제안한 금융감독원이 반대 입장에 있는 재계 측으로부터도 의견을 듣고 논의를 이어가자는 차원에서 마련했다.
이 자리에 참석한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근본적인 원인으로 빠른 경제성장 과정에서 누적된 기업지배구조의 모순이 지목되고 있다”고 입을 뗐다. 이 원장은 그간 상법을 개정해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기존 ‘회사’에서 ‘전체 주주’로 넓혀야 한다며 재계와 반대되는 입장을 피력해 왔다.
이 원장은 재계가 주최하는 행사에서도 이들이 반기지 않는 주장을 이어간 것이다. 이 원장은 “주주들의 권리 행사가 촉진되고 모든 주주가 합당한 대우를 보장받도록 기업지배구조가 마련돼야 한다”며 “이사회는 기업의 전략적 지침 설정, 경영진에 대한 효과적인 감시를 수행하고 기업과 주주들에 대한 책임성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내 대기업의 대주주는 지분율이 20~30% 수준으로 외국 기업보다 낮아 외부 세력에 의한 경영권 공격의 위험에 노출돼 있지만 방어 수단은 없는 게 현실이다. 주주는 그가 보유한 주식 수에 따라 평등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주주의 평등원칙 때문이다.
김 변호사는 “대주주에 대한 견제가 항상 건강한 것인지는 의문”이라며 “집중지배구조의 장점을 살려 회사의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경영권 방어가 필요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차등의결권과 포이즌필 등의 수단이 없어 대주주가 설비투자나 임직원 보상에 쓰여야 하는 회사의 현금을 계열사 간 주식 상호보유나 순환출자를 통한 경영권 방어에 쓰고 있는 게 현실이라는 것이다.
차등의결권이란 경영권을 보유한 대주주의 주식에 대해 보통주보다 더 많은 의결권을 부여하는 제도다. 포이즌필은 적대적 인수합병(M&A) 시도가 있을 때 기존 주주에게 시가보다 훨씬 싼 가격에 지분을 매입할 수 있도록 미리 권리를 주는 것이다.
대주주가 해당 제도를 악용할 수 있다는 반박에 김 변호사는 “경영권 방어를 위한 직접적이고 효율적인 수단을 무조건 외면하는 건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는 것”이라며 “경영권 방어 법제가 없다고 해서 경영권 방어 행위가 없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발표자로 나선 권재열 경희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상법 개정안이 다수결의 원칙과 충돌한다고 말했다. 권 교수는 “소수 주주를 비례적으로 보호하자는 게 개정안의 내용이다”라며 “다수의 자의에 의해서 소수를 배려하는 건 문제가 없지만 개정안처럼 배려를 강제하는 건 납득하기 어렵다”고 했다.
상법 개정안으로 이사는 회사의 이익과 주주의 이익에 모두 충실해야 하지만, 이 두 이익이 충돌했을 때는 양쪽으로부터 책임 추궁을 당할 수 있다는 게 권 교수의 입장이다. 가령 회사의 장기적인 발전을 위해 연구개발(R&D)에 투자했지만 주가는 단기적으로 하락한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권 교수는 “회사가 이사의 책임을 추궁하지 않는 경우 주주가 대표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며 소송이 남발할 것이라고 했다.
금감원이 소송의 방패로 제시한 경영판단원칙도 사실상 무의미하다고 했다. 경영판단원칙이란 이사가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 의무를 다했음에도 회사에 손해가 발생했다면 이사에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법률적 판단이다. 권 교수는 “주주가 민사법상 불법행위책임을 추궁할 경우 현행 제도하에선 영영판단원칙의 적용 대상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권 교수는 이사책임 보상계약제도의 도입을 제안했다. 이 제도는 이사의 의무이행과 관련해 주주 등으로부터 책임을 추궁받으면 이사가 지출한 비용이나 부담하는 손실을 일정 범위와 조건하에서 회사가 지급하는 것이다. 권 교수에 따르면 일본에선 비슷한 정책을 운영하고 있다.
기업가치 향상을 위해선 기업의 승계 제도도 함께 개선돼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오너 일가가 상속증여세를 조금이라도 덜 내기 위한 기업의 갖가지 결정에서 주가 하락 등을 유발할 수 있으니 아예 상속증여세의 부담을 줄여주자는 것이다.
오문성 한양여자대학교 세무회계학과 교수는 “상속세는 (피상속자가) 생전에 이미 소득세 등을 부담하고 난 후의 재원”이라며 “소득세의 세율(최고 45%)보다 더 높은 세율을 적용하는 건 불합리하다”고 했다. 최대 주주의 경우 상속세율은 60%로, 일본(55%), 프랑스(45%), 미국(40%) 등보다 높은 수준이다.
그러면서 자본이득세를 해답으로 제시했다. 현재 상속세는 피상속인이 생전에 자산을 100원에 취득한 후 사망 시기에 이 가격이 140원으로 오르면 상속자 또한 140원에 대해 세금을 내는 구조다. 오 교수는 “사망 당시의 가격에 상관없이 피상속인의 자산 취득가액은 100원”이라며 “상속인이 해당 자산을 처분할 시점에 그 가격이 250원이 됐다면, 150원의 자본이득에 대해서만 과세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오 교수는 “유산과세구조에서 유산’취득’과세 구조로 바꾸고 세율을 소득세 수준보다 더 낮게 인하해야 한다”며 “최대주주에 대한 할증평가제도를 폐지하고 처분에 제한이 있는 재산은 처분할 때까지 과세를 이연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장기적으론 자본이득 과세 방법을 통해 과세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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