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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케 쇤! 코리아” 떠올리게 한 독일의 이탈리아 징크스[심재희의 골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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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선수들이 24일 스위스와 경기에서 후반전 막판 극적인 동점을 이룬 뒤 함께 기뻐하고 있다. /게티이미지코리아

니클라스 푈크루크(9번)의 동점골 후 환호하는 독일 선수들. /게티이미지코리아

[마이데일리 = 심재희 기자] “당케 쇤! 코리아(danke schoen! Korea).” 2002 한일월드컵 당시 독일 베를린에서 유럽축구 통신원으로 지낸 필자는 소니 센터에서 한국과 이탈리아의 16강전을 봤다. 한국이 연장 접전 끝에 안정환의 골든골로 2-1로 이기면서 8강에 오르자, 이탈리아 관중들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짓고 화를 내기도 했다. 지인들과 함께 기뻐하는 순간에 한 유럽인이 다가왔다. 그리고 말을 건넸다 “당케 쇤! 코리아.”

그는 독일 축구팬이었다. 짧은 독일어로 대화를 이어갔다. 그 독일인은 한국과 이탈리아의 경기를 모두 지켜봤고, 한국을 응원했다고 밝혔다. 이유는 간단했다. 독일이 이탈리아에 매우 약했기 때문이다. 이전까지 독일은 월드컵과 유럽축구선수권 대회 같은 메이저대회에서 이탈리아에 단 한번도 이기지 못했다. 독일이 그토록 만나기 싫어하는 이탈리아를 한국이 꺾어 줬으니 고마운 마음이 들 법했다.

이후 한국은 독일과 준결승전에서 만나서 0-1로 졌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2006 독일 월드컵에서 독일은 이탈리아와 준결승전을 치렀다. 홈 이점을 가진 독일은 이탈리아의 탄탄한 수비 벽에 막혀 고전했고, 결국 연장전 후반전 막판에 파비오 그로소와 알레산드로 델 피에로에게 연속골을 얻어맞고 0-2로 졌다. 독일의 ‘이탈리아 징크스’와 함께 4년 전 2002 한일월드컵을 독일에서 지켜보며 겪었던 에피소드가 다시금 떠올랐다.

유로 2024가 독일에서 펼쳐지고 있다. 조별리그 3차전이 진행 중이다. 개최국 독일은 조별리그 A조에 속했다. 가볍게 2연승으로 조별리그 통과를 결정했다. 하지만 스위스와 조별리그 3차전에서 흔들렸다. 경기 막판까지 0-1로 뒤지다가 후반전 추가 시간에 극장골로 간신히 1-1로 비겼다. 조 선두를 지키며 16강 토너먼트로 향했다. 스위스가 조 2위로 16강 한 자리를 꿰찼다.

25일 조별리그 B조 3차전 두 경기가 끝나면서 이번 대회 16강전 첫 매치업이 결정됐다. A조 2위 스위스와 B조 2위 이탈리아가 맞붙게 됐다. 이탈리아는 25일 조별리그 3차전에서 크로아티아와 1-1로 비겼다. 크로아티아의 중원 사령관 루카 모드리치에게 선제골을 내주고 끌려갔으나, 후반 53분 마티아 자키니의 ‘극장골’에 힘입어 패배의 위기에서 벗어났다. 3연승으로 B조 선두에 오른 스페인에 이어 2위를 지키고 토너먼트행 티켓을 손에 쥐었다.

조별리그 A조와 B조 일정이 모두 마무리되면서 16강 대진표 윤곽이 드러났다. 스위스와 이탈리아가 8강 길목에서 격돌한다. 자칫 잘못했으면 독일-이탈리아의 16강전이 벌어질 뻔했다. 독일이 스위스와 조별리그 3차전에서 극장골을 넣지 못하고 그대로 졌으면, A조 2위로 추락해 이탈리아와 16강전을 벌일 수도 있었다. 독일로서는 만나고 싶지 않은 이탈리아를 극적으로 피한 셈이다.

25일 크로아티아전에서 후반전 극장골 후 기쁨을 나누는 이탈리아 선수들. /게티이미지코리아

9승 13무 15패. 독일과 이탈리아의 역대 전적을 찾아 보니 이렇게 나온다. ‘전차군단’으로 불리며 세계 최고 축구 강국 중 하나로 군림한 독일이 이탈리아에 매우 약했던 게 사실이다. 메이저대회 결과를 보니 더 놀랍다. 1982년 스페인 월드컵 결승전에서 당시 서독이 이탈리아에 1-3으로 져 준우승에 그친 것을 비롯해 9전 5무 4패라는 놀라운 결과를 확인할 수 있었다.

독일은 앞서 말했듯이 2006 독일 월드컵 준결승전에서 0-2로 졌고, 유로 2012 준결승전에서 1-2로 패했다. 유로 2016 8강전에서 1-1로 비긴 뒤 승부차기에서 6-5로 이기며 메이저대회에서 처음으로 이탈리아를 넘어섰다. 하지만 승부차기 승리라 공식적으로는 무승부로 처리됐다. 가장 최근 맞대결인 2022년 6월 15일 가진 유럽축구연맹(UEFA) 네이션스리그 경기에서는 5-2 대승을 거두긴 했다. 그러나 독일에 이탈리아는 여전히 까다로운 상대로 여겨진다.

이탈리아를 피한 독일은 내심 웃고 있을까. 대진표상 결승전에 올라야 이탈리아를 만난다. 가장 껄끄럽게 여기는 상대를 피했으니 기뻐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유로 대회에는 강팀 옆에 강팀이 자리한다. 이번 대회 16강전에서 이탈리아를 피한 독일은 지난 유로 2020 16강전에서 뼈아픈 패배를 안겼던 잉글랜드를 만날 수도 있다. 흥미로운 건 잉글랜드가 ‘독일 징크스’를 오랫동안 겪었다는 점이다. 잉글랜드는 유로 2020 16강전에서 2-0으로 이기며 55년 만에 메이저대회 독일전 승리의 기쁨을 맛봤다. 징크스가 이어지고, 징크스가 깨지고. 이래서 축구가 더 재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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