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조영준(35)씨는 3년 전부터 탄소배출권에 투자 중이다. 지구온난화로 탄소배출 대응 문제는 장기간 지속될 투자 테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특히 요즘과 같은 폭염 기간에는 온실가스 문제가 부각되는 만큼 수익을 낼 기회라고 봤다. 조씨와 같이 기후변화에 관심을 갖고 탄소배출권 투자를 알아보지만, 신생 투자처인 만큼 잘 알지 못하는 투자자를 위해 궁금증을 풀어봤다.
최근 폭염과 홍수 등이 세계 곳곳에 발생하면서 지구온난화의 주범인 탄소를 줄이기 위해 만든 탄소배출권이 투자자들 사이에서 주목받고 있다. 탄소배출권은 온실가스의 일정량을 배출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탄소배출권은 매매가 가능해 정부가 정한 탄소 배출 허용량을 초과한 기업은 시장에서 탄소배출권을 구매해 쓸 수 있다. 탄소배출권의 가격은 모든 상품이 그렇듯 수요와 공급이 만나 결정된다. 공급이 줄거나 수요가 늘면 가격이 오른다. 증권가에서 탄소배출권을 유망하게 보는 이유는 각국 정부가 탄소배출량을 줄이는 친환경 정책을 펼쳐 공급이 계속 줄고 있기 때문이다.
탄소배출권을 사고파는 시장은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런던증권거래소에 따르면 지난해 전 세계 탄소배출권 시장 규모는 8810억유로(1260조원)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가장 규모가 큰 지역은 유럽연합(EU)이다. EU의 지난해 시장 규모는 7700억유로(1011조원)로 전 세계 시장의 87%를 차지했다. 탄소배출권 규제는 나라마다 다른데 유럽이 가장 빠르고 강력하게 규제하고 있는 만큼 거래가 활발하다.
◇ 국내 상장된 탄소배출권 ETF 4종
탄소배출권 투자는 탄소배출권 선물 시장을 추종하는 상장지수펀드(ETF)가 대표적이다. 관련 기업에 투자한 ETF나 펀드도 있지만, 탄소배출권 자체에 투자하는 ETF가 가장 직접적이고 효과적이다. 국내에는 지난 2021년 탄소배출권 관련 ETF 4종이 상장됐다. 이전까지 국내에는 탄소배출권과 관련한 ETF가 없어 ‘KRBN(KraneShares Global Carbon) ETF’와 같은 해외 ETF에 투자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다.
국내에 상장된 탄소배출권 ETF 4종은 추종지수에 따라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유럽의 탄소배출권 선물에 투자하는 상품으로 ‘KODEX유럽탄소배출권선물ICE(H)’, ‘SOL유럽탄소배출권선물S&P(H)’가 있다. 다양한 국가의 탄소배출권 선물에 투자하는 상품으로는 ‘SOL글로벌탄소배출권선물IHS(합성)’, ‘HANARO글로벌탄소배출권선물ICE(합성)’가 있다. 유럽은 탄소배출 규제가 강하기 때문에 탄소배출권 가격이 비싸고 변동성이 높다. 대신 위험성만큼 높은 수익률을 기대할 수 있다. 반면 유럽 외 국가의 탄소배출권은 변동성이 낮지만 그만큼 기대수익률이 낮은 특징이 있다.
올해 초 30% 가까이 떨어졌던 탄소배출권 ETF가 최근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최근 3개월간 ‘SOL 유럽탄소배출권S&P(H)’는 11.76%, ‘KODEX 유럽탄소배출권선물ICE(H)’는 11.16%의 수익률을 보였다. ‘SOL 글로벌탄소배출권선물ICE(합성)’도 10.91%, ‘HANARO 글로벌탄소배출권선물ICE(합성)’도 10.53% 올랐다. 최근 탄소배출권 ETF 수익률이 상승한 이유는 중동 위기 심화로 국제 유가와 천연가스 가격이 상승했기 때문이다. 유가와 천연가스 가격이 높아지면 대체재인 석탄 사용량이 늘어 기업의 온실가스 배출 수요가 늘어나 탄소배출권 가격도 상승한다.
◇ 주요국 탄소중립 정책이 방향키
탄소배출권 가격은 크게 네 가지 요인에 따라 움직인다. 우선 세계 주요국의 정책 기조와 경기에 영향을 받는다. 각국 정부가 탄소배출 규제를 강화하면 탄소배출권 공급이 줄어 가격이 상승한다. 또 경기가 좋을 때는 기업의 생산량이 늘며 탄소배출권 수요가 늘어 가격이 상승한다. 유가와 탄소 저감 기술의 발전도 탄소배출권 가격에 영향을 미친다. 유가가 상승하면 비싼 천연가스 대신 석탄의 수요가 늘며 탄소배출권 수요도 늘어 가격이 상승한다. 반대로 탄소 저감 기술이 발전하면 기업이 자체적으로 탄소 배출을 줄이면서 탄소배출권 수요가 감소해 가격이 내려간다.
이 중에서도 탄소배출권 가격의 방향키를 쥔 것은 세계 주요국의 정책이다. 최근 주요국들은 규제를 강화하고 있다. EU는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1990년 대비 55% 감축하고 2050년 탄소중립을 달성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미국은 바이든 정부 출범 이후 인플레이션 감축법에 서명하며 2030년까지 탄소 배출량을 2005년 대비 50% 줄이고 2050년에 탄소중립을 하겠다고 밝혔다. 세계 최대 탄소배출국인 중국은 2030년을 기점으로 탄소 배출량을 감축하고 2060년까지 탄소 중립을 달성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글로벌 탄소 규제가 강화되면 탄소배출량을 줄이지 못하는 기업은 탄소배출권을 구매해야 하기에 탄소배출권 가격은 계속 오를 것으로 보인다.
◇ 절세 효과 위해 연금·ISA 계좌로 분산 투자
탄소배출권 ETF에 투자할 때는 절세 효과를 누리기 위해 연금계좌와 ISA계좌 등으로 투자하는 것이 좋다. 연금계좌와 ISA계좌로는 4종 모두 투자할 수 있다. 다만 퇴직연금계좌(IRR 포함)는 합성 2종 상품만 투자할 수 있다. 연금계좌와 퇴직연금계좌에서 매매차익은 나중에 연금으로 수령할 때 연금 소득세로 납부해 과세이연 효과를 누릴 수 있다. 이 때문에 세전수익으로 운용을 지속하며 복리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 ISA계좌는 200만원까지 비과세 혜택을 제공한다.
다만 탄소배출권 ETF는 가격 변동성이 커질 수 있다는 점에 주의해야 한다. 중동 지역 불확실성 커지면서 당분간 유가 상승 압력이 높아질 것으로 보이지만, 불확실성도 있는 만큼 유가 변동성이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또 최근 인플레이션이 심화하는 만큼 기업의 생산 둔화가 길어지면 탄소배출권 구매 수요가 줄면서 가격 상승에 제동이 걸릴 수 있다. 아울러 친환경 경영이 화두가 되면서 기업이 탄소 저감 장치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는 점도 장기적 수요 감소를 불러올 수 있다.
전문가들은 투자처 다변화 차원에서 자산 일부를 넣어두는 방식으로 투자하는 것을 권장하고 있다. 김대수 신한PWM여의도센터 PB팀장 “탄소배출권 ETF는 석탄, 석유, 천연가스 등 원자재 가격에 굉장히 민감한데 원자재는 변동성이 큰 자산인 만큼 탄소배출권 ETF도 가격 변동성이 높다”며 “메인 투자처로 투자하기보다 주식, 채권 등과 함께 포트폴리오를 분산하는 도구로 활용하되 국제 탄소배출 정책 제도 흐름을 따라가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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