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표준 전산언어(XBRL)로 지난해 사업보고서의 본문과 주석을 공시한 상장사 4개사 중 1개꼴로 실수를 한 것으로 집계됐다. 새로운 양식에 서툴렀던 탓이다. 공교롭게도 공시를 잘못한 상장사는 모두 4대 회계법인(삼일·삼정·안진·한영)으로부터 자문을 받은 곳이어서 주목된다.
25일 금융당국 등에 따르면 지난해 사업보고서에 대해 XBRL 주석 공시한 상장사는 모두 156개사였다. 이 중 4대 회계법인으로부터 자문을 받은 곳은 142개사, 로컬 회계법인으로부터 자문받은 곳은 8개사였는데 4대 회계법인에서 컨설팅을 받은 상장사 42개사에서만 XBRL 공시 오류가 발생했다. 4대 회계법인 외의 회계법인에서 자문을 받았거나 자체 공시한 6개사는 모두 정상적으로 공시했다.
XBRL이란 기업이 재무정보를 공시할 때 강 항목에 대해 태그(전산 식별코드)를 붙여 입력해야 하는 체계다. 재무상태표, 손익계산서, 현금흐름표와 같은 재무제표 본문은 정형화돼 있지만 재무제표 주석은 기업에 따라 제각각 작성되고 있다. 이에 공시 이용자가 기업간 재무제표 주석을 비교·분석할 수 있도록 금융당국은 지난해 자산 2조원 이상의 상장사에 대해 사업보고서 주석에 대해서도 XBRL을 도입했다.
주석에도 일일이 태그를 붙여야 할 정도로 까다로워 다수 상장사는 XBRL 공시를 위해 회계법인에 컨설팅 비용을 주고 자문을 받고 있다. 지난해 사업보고서 주석을 XBRL로 공시한 회사 156개사 중 150개사가 회계법인의 자문을 받았다. 기업이 자체적으로 XBRL 공시를 낸 곳은 LG, KG스틸, 강원랜드, 포스코퓨처엠, 한국항공우주산업 등 6곳에 불과하다.
4대 회계법인은 XBRL을 새로운 먹거리로 인식하고 적극적으로 영업해 왔다. 삼일PwC는 지난해 전문인력 등 30여명이 소속된 XBRL센터를 신설했다. 삼일PwC는 또 디지털 전담팀을 만들어 상장사가 XBRL을 작성하는 데 도움을 주는 자동화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삼정KPMG와 딜로이트안진, EY한영도 XBRL을 담당하는 조직을 만들고 관련 툴을 제작하는 등 신사업에 박차를 가했다.
하지만 ‘공시 정정 남발’이라는 불명예를 얻었다. 4대 회계법인 중 한 회계법인은 자문한 상장사 중 절반 이상(51.1%)이 잘못 기재했다. 특정 회계법인이 실수한 탓에 4대 회계법인의 자문을 받은 상장사 전체에 공시 오류가 집중된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이 실수가 XBRL을 주석에 처음 사용한 데 따른 단순한 기재 오류가 다수라는 점이다. 가령 XBRL을 통해 감사인명과 감사의견, 감사보고일, 감사인의 고유번호를 써야 하나 ‘해당사항 없음’으로 적어 공시한 사례다. 또 새로운 양식인 XBRL에 적응하지 못 해 이 틀을 맞추지 못한 회사도 있었다.
올해 1분기 보고서 제출 때는 자문을 받지 않고 자체 작성한 상장사가 14개사로 늘었다. 아시아나항공과 KCC, 삼천리 등이 자체 작성으로 전환했다. 지난해 3월 금감원이 ‘재무공시 선진화 추진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유관기관과 협력해 상장사를 대상으로 XBRL 재무제표 작성 실무 교육을 지원한 덕분이다.
다만 지난해를 시작으로 XBRL 주석 공시를 적용받는 상장사는 확대될 예정이라, 충분히 대비를 하지 않으면 무더기 정정 공시가 반복될 수 있다. 올해부턴 자산 5000억원 이상 상장사도 XBRL 주석 공시를 해야 하는데, 지난해 말 기준 개별 자산 총액 기준으로 따지면 500개사가 해당된다.
금감원 관계자는 “XBRL 재무공시 제도가 성공적으로 안착될 수 있도록 유관기관과 협력 체계를 강화하겠다”며 “제출인의 공시 부담을 줄이기 위해 맞춤형 실무 교육도 계속 지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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