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료가 줄줄이 새고 있다. 중심에는 국민 5명 중 4명이 가입해 ‘제2의 국민건강보험’이라 불리는 실손의료보험이 있다. 비급여 치료를 보장해주며 공보험을 보완하는 사적 사회 안전망 역할을 할 줄 알았던 실손보험은 적자 규모만 2조 원에 달하는 대표적인 ‘골칫덩어리’가 됐다. 갈수록 진화하는 보험사기와 과잉진료로 보험료는 올라가고 보장범위는 줄어들어 보험사와 선량한 고객들의 부담만 높아지는 형국이다. 정부가 몇 차례 걸쳐 수술을 했지만 약발이 먹히질 않고 있다. 소비자와 보험권, 의료계가 긴밀히 엮여 엉킨 실타래를 어디서부터 풀어나가야 할지 막막하다. 실손보험 개혁에 대한 목소리가 또 다시 불거진 가운데 보험료 누수 실태와 원인, 해결 방안 등에 대해 집중 조명해 본다.
보험금 누수로 ‘끙끙’ 앓는 제2의 건보
의료 고도화로 늘어나는 비급여 ‘몸살’
조직화 되는 보험사기까지 살길 막막
국민 약 4000만 명이 가입한 실손의료보험이 또 다시 수술대에 오른다. 많이 쓰면 많이 내는 식으로 바뀐 4세대 실손보험을 선보인 지 3년 만이다. 과잉진료와 보험사기 등 날로 다양해지는 비급여 치료를 보장하다 보니 매년 수조 원의 손실이 나고 있지만 막을 방법이 없는 탓에 다시 한번 ‘메스’를 들기로 한 것이다. 금융당국이 범부처, 관계기관과 실손보험 관련 실무반을 구성해 개선책을 마련하기로 한 가운데 시장에서는 보다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지 않으면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없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24일 금융당국 및 관련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7일 출범한 보험개혁회의에서는 실손보험 정상화를 위한 제도 개선 방안을 논의 중이다. 금융당국과 보험사와 보험협회 등 관계기관과 학계가 참여한 보험개혁회의는 다음달 두번째 회의가 진행될 예정인 가운데 4세대 실손보험 개정을 넘어 새로운 상품 출시 등 다양한 의견을 수렴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보험개혁회의 관계자는 “현재 판매되고 있는 4세대 실손보험을 손봐서 4.5세대 내지는 5세대 상품을 출시하자는 논의가 유의미하게 이뤄지고 있다”며 “비급여 치료에 대한 보장 범위는 합리화하고 임신·출산 등을 신규 보장하는 등의 내용도 다뤄지는 중”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실손에 새로운 ‘세대’가 나온다고 하면 기존 상품과 너무 다른 상품인 것처럼 고객에게 오인되고, 5년 간 보험료율을 변경하지 못하는 만큼 이 표현을 바꾸는 것도 고민 중”이라고 했다. 보험업법감독규정에 따르면 실손보험 신상품은 출시 후 5년 동안 보험료를 동결해야 한다.
이 관계자는 “시기적으로 새로운 실손보험을 출시해도 무리없다고 판단하고 있다”면서 “현재 기본적으로 질병 치료 목적이면 모든 비급여를 보장해주되 미용이나 성형 등 일부 상황을 보장하지 않는 네거티브(negative) 방식 이지만 업계에서는 일부 비급여만 보장해주는 포지티브(positive) 방식으로 바꾸자고 제안하고 있다”고 말했다.
앞서 정부는 대통령실 직속 의료개혁특별위원회의 의료개혁 핵심 안건으로 ‘실손보험 제도 개편’을 상정하고, 비급여와 실손보험을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방안을 강구 중이다.
정부가 또 다시 실손보험에 칼을 빼든 것은 과잉진료와 가입자 간 형평성 등 실손보험의 구조적인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보험료 할인·할증제를 적용해 4세대 실손보험을 내놨지만 적자의 늪에서 좀처럼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어서다. 실제 지난해 비급여 진료 확대로 인한 실손보험 적자 규모는 2조원에 육박했다.
특히 4세대 실손보험은 비급여 항목 과잉 진료로 적자를 더욱 부추기고 1,2세대 보험가입자들의 보험료만 높이는 부작용을 초래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다음달부터 보험료 할인·할증제 3년 유예 끝나고 본격적으로 적용되지만 보험료가 할증되는 가입자는 전체의 1.3%로 추정돼 차등화 제도 효과가 미미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비급여 항목에 대한 촘촘한 손질이 이뤄져야 한다고 조언한다. 김경선 보험연구원 연구위원은 “비급여·실손보험 관리 강화 방안으로 과잉공급이 많이 일어나는 주요 문제 비급여 항목에 대해서는 이용 횟수나 보장한도를 설정하고 자기부담률을 상향해 도덕적 해이를 완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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