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에서 컵라면 하나를 사도 카드결제가 되는 시대. 하지만 매달 수십만원에서 많게는 수백만원씩 내는 보험료는 여전히 신용카드 사각지대다. 수수료에 부담을 느낀 보험사들이 카드결제를 원천 차단하거나 결제를 까다롭게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카드 결제시 매달 지점 총무에게 연락해야 한다거나, 현금으로 내면 보험료를 할인해 주는 방식으로 현금이체를 유도하는 일도 꾸준하다. 소비자 불편만 가중된다는 지적이다.
24일 생명·손해보험협회 ‘보험료 신용카드납지수’에 따르면 생보사는 전체 상품 중 3.8%, 손보사는 30.5%만 카드결제를 허용하고 있다.
특히 대형 생명보험사의 카드결제 기피현상이 뚜렷하다. 삼성생명은 삼성카드를 통해서만 보험료 카드 결제를 허용한다. 그마저도 전체 계약건수의 0.3%에 그친다. 교보생명과 한화생명은 아예 카드 결제를 거부하고 있다. 신한라이프(9.0%)와 KB라이프생명(8.1%) 역시 카드 결제 비중이 10%에 못미친다.
그나마 사정이 나은 손보사도 자동차보험 비중을 제외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자동차보험 카드 결제 비중을 제외하면 전체 손보사의 보험료 카드결제 비율은 15% 수준으로 떨어진다. 대형 손보사 5곳의 1분기 보장성보험 카드결제 비중은 ▲삼성화재 15.1%▲메리츠화재 17.1%▲DB손해보험 16% ▲현대해상 15.9% ▲KB손해보험 13%다.
일부 손보사의 경우 보장성보험에 카드결제를 제한적으로 허용하는 방식으로 현금 납부를 유도하기도 한다. 가령 보험 가입 시 초회보험료에 한해 카드 결제를 허용하고 계속보험료에 대해서는 자동결제 시스템 미구축 등을 이유로 추가적인 절차를 거치게끔 만드는 식이다. 자동이체 방식을 지원하지 않고 지점 내 담당 총무가 매달 수기로 카드결제를 하기도 한다. 보험사별 방침도 천차만별이라 소비자 혼란을 초래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카드결제를 선호하는 고객이 많아 일단 카드 결제로 보험계약을 받아놓고 현금이체로 변경하면 할인해주는 방식으로 현금 결제를 유도하기도 한다”며 “설계사들도 카드 결제를 허용해 달라고 지속 요구해 보험사도 일부 상품에 카드 결제를 허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보험사도 이유는 있다. 보험 상품 특성상 결제가 장기간에 걸쳐 이뤄지기 때문에 타 업권 대비 카드사에 내는 수수료 부담이 크다는 설명이다. 보험료를 카드로 지속 납입하게 되면 사업비가 증가해 결국 보험료 인상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논리다.
특히 생보사는 특성상 장기 계약이 많고 월 보험료도 높아 손보사 대비 형편이 여의치 못하다고 토로한다. 특히 저축성보험의 경우 계약자에게 약정된 수익을 제공해야 하는 만큼 카드 결제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설명한다.
공정위원회도 보험료 카드수납을 의무적으로 강제할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카드결제 여부는 보험사와 카드사 간 가맹점 계약에 따라 이뤄지기 때문이다. 자동이체 등 이미 다른 결제 방식이 있는 만큼 카드결제 허용 여부는 어디까지나 보험사 경영진의 자율판단이라고 본다.
보험료 신용카드 사용 제한이 소비자 권익을 제한한다는 점에서는 보험사도 공감하고 있다. 다만 카드결제 활성화를 위해서는 카드사 수수료를 1% 수준으로 낮춰줘야 한다는 입장이다. 통상 보험료를 카드로 납부할 경우 결제액의 1.9~2.3%는 카드사 수수료로 지급된다.
현재 22대 국회 첫 보험업법 개정안으로 보험료 카드납을 의무화하는 법률 개정안이 발의된 상태다. 관련 법안은 지난 19대 국회부터 발의됐지만, 매번 문턱을 넘기지 못했다.
관련 개정안은 이정문 의원 등 12명이 제안해 지난 7일 국회에 접수했다. 향후 정무위원회 심사를 거치게 된다. 개정안에는 카드 결제로 발생하는 수수료를 소비자에게 떠넘기거나 카드결제 소비자에 대한 차별을 둘 시 처벌하는 조항 등이 담겼다.
이정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개정안 발의 배경과 관련해 “신용카드 보편화로 보험상품에 대한 카드 결제 수요는 증가하고 있다”면서도 “보험사들은 카드수수료 부담을 이유로 보험료신용카드 결제를 축소하거나 보장성 보험 등 특정 보험상품에만 카드 납부를 허용하고 있다”고 꼬집했다.
김대종 세종대학교 경영학부 교수는 “현재 보험료 카드 결제 수수료는 2% 정도로 보험사 전체 수입 중 일부분에 불과하다”며 “보험사 입장에서도 카드 결제를 확대하면 수납이 원활해지는 만큼 적극적으로 보험료를 카드로 받게 해 소비자 편익을 도모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대현 기자 jdh@chosunbiz.com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