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노민호 김정률 정지형 기자 = 정부가 북한과 군사적 밀착으로 한반도 안보 위협을 높인 러시아에 ‘우크라이나 무기 직접 지원 가능성’을 언급하며 ‘맞불’을 놓았다. 회복하는 듯했던 한러관계가 다시 급속도로 냉각될 것으로 보인다.
장호진 국가안보실장은 20일 오후 용산 대통령실 브리핑에서 북러 간 ‘포괄적인 전략적 동반자 관계에 관한 조약’ 체결을 규탄하며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지원 문제를 재검토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는 러시아와 북한이 지난 19일 정상회담에서 새로 체결한 조약에서 ‘유사시 상호 군사개입’ 조항을 28년 만에 부활시키며, 북러의 자의적 판단에 따라 러시아의 한반도 군사개입이 가능하도록 한 것에 대한 대응이다.
우리 정부는 그간 우크라이나 전쟁에 살상무기를 직접 지원하지 않겠다는 방침이었다. 그러나 ‘레드라인’을 넘은 북러의 밀착에 방침을 바꿔 직접 지원 가능성을 열어두면서 압박을 가하겠다는 외교적 카드를 즉각 꺼냈다.
대통령실 고위관계자는 이날 “구체적으로 어떻게 할지는 러시아 쪽도 차차 아는 게 흥미진진하지 않겠냐”라며 최종 결정은 러시아의 행보에 달렸다는, ‘맞춤형 대응’을 시사하기도 했다.
북한은 이례적으로 회담 하루 뒤 조약 전문을 공개했다. 비준 절차를 밟아야 효력이 생기지만 이를 비준 전에 먼저 공개한 것은 그만큼 조약의 내용에 대해 ‘확고한’ 북러 간 합의가 있었음을 보여 준다.
북러는 이번 조약으로 1961년 체결했다가 1996년 폐기한 ‘우호 협조 및 상호 원조에 관한 조약’, 2000년 ‘우호·선린·협조 조약’을 뛰어넘는 전방위적인 협력에 대한 법률적 기초를 세우는 등 한반도 및 동북아 안보 위협의 강도를 높였다.
특히 ‘유사시 자동 군사개입’과 관련해 ‘모든 수단’을 동원한 지원을 하겠다는, 핵무기 지원까지 불사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는 내용을 포함시킨 것이 문제로 지적된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지난 5일 우크라이나 전쟁에 살상 무기를 지원하지 않은 한국에 ‘사의’를 표하는 등 향후 관계 복원을 위한 여지를 두는 듯했으나 북러 정상회담의 결과로 이는 ‘기만전술’이었음이 확인됐다. 정부가 북러 새 조약의 상세 내용이 공개된 지 7시간여 만에 ‘맞대응’ 기조를 확정한 것은 이같은 배경에서다.
1990년 수교한 한러 양국은 2008년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를 맺는 등 큰 2000년대 이후에는 줄곧 협력을 도모하는 기본적 관계를 유지해 왔다. 지난 2020년엔 수교 30주년을 맞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국면에서도 기념행사를 개최하기도 했다.
하지만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불법 침공 이후 상황이 바뀌었다. 서방의 대러 경제제재에 한국이 동참하자 러시아는 한국을 ‘비우호국’으로 지정했고 국제사회의 ‘민주주의 대 권위주의’ 블록화의 영향으로 한러관계는 얼어붙었다.
러시아는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에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노골적으로 ‘북한 뒷배’를 자처하는 등 밀착을 강화했다. 새로운 대북제재 결의 채택에 ‘거부권’을 행사하거나 대북제재 무용론, 미국 책임론을 펼치면서 진영 간 갈등이 심화됐다.
북러는 이번 조약에서 기존의 조약에서 한 번도 빠지지 않았던 ‘한반도 통일’ 관련 내용을 지웠는데, 이는 푸틴 대통령이 ‘두 국가론’ 이후 남북관계 단절에 속도를 내고 있는 김 총비서의 의지에 힘을 실어주는 셈이 됐다.
결국 한러관계는 러시아의 ‘선택’으로 다시 냉각을 피하지 못하게 됐다. 만일 러시아가 이날 정부의 대응 발표에 또 맞대응한다면, 냉각을 넘어 ‘파국’으로 큰 갈등을 겪을 가능성이 높다.
박원곤 이화여대 교수는 “푸틴 대통령과 김 총비서의 이번 조약 체결로 우리 입장에선 ‘레드라인’이 뚫린 것이고, 이는 비상조치가 필요한 상황까지 왔다는 것”이라며 “2차 레드라인을 그을 필요가 분명히 있는 것이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한국의 무기 지원 가능성을 언급하는 것은 러시아에게 ‘움찔’하며 생각을 해볼 시간을 주는 방안이다”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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