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이하 밸류업 프로그램)’ 기대 덕분에 현대차·기아가 1년 중 가장 높은 주가를 기록하고, 좀처럼 움직이지 않던 금융·보험주가 하루 만에 10% 가까이 상승하는 일이 있었다. 밸류업 프로그램이란 한국 증시만 유독 저평가받는 현상을 해소하기 위해 올해 초부터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으로, 상장사 스스로 주가가 낮은 이유를 분석하고 개선방안을 공시하게 하는 게 골자다.
연초부터 우리 증시의 상승 재료였던 밸류업이지만, 아직 그 효과가 끝나지 않았다는 분석이 나왔다. 하반기에도 한 번 더 밸류업의 기대를 타고 코스피·코스닥 지수에 훈풍이 불 것이라는 뜻이다. 증권가에서 예측한 다음 밸류업 랠리는 7~8월과 11~12월이다.
먼저 7~8월이 꼽힌 이유는 밸류업 프로그램의 흥행을 점칠 수 있는 기획재정부의 내년 세법 개정안이 이때 공개돼서다. 밸류업 프로그램은 정부가 기업에 강제하지 않는 게 콘셉트다. 원하는 기업만 프로그램에 참여하면 되는데 여기에 최대한 많은 기업을 끌어들이려면 정부는 그에 상응하는 당근, 즉 세제 혜택을 줘야 한다. 기업이 ‘주가 반성문’을 쓰는 걸 감수할 만큼 세법 개정안에 매력적인 감세안이 담기면 연초 밸류업 랠리가 재현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기업들이 바라는 건 단연 상속세 인하다. 현재 우리나라 상속세 최고 세율은 60%(대주주 할증 포함)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26%보다 2배 이상 높다. 최근 대통령실이 상속세율을 선진국 평균 수준으로 낮춰야 한다는 의견을 낸 만큼 세법 개정안에도 관련 내용이 들어갈 가능성이 있다.
성태윤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16일 KBS ‘일요진단’에 출연해 “(상속세는) 30% 내외까지 인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성 실장은 또 “여러 국가는 기업 상속 시점이 아닌 차후 (상속을 받은 이가) 기업을 (더 경영하지 않고) 팔아 현금화하는 시점에 세금을 매긴다”며 “우리나라도 이처럼 자본 이득세로 전환하는 전반적인 개편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최상목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이 배당소득 분리과세를 언급한 만큼 이 안도 포함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배당 소득은 이자와 같은 금융소득과 합쳐져 이 소득이 1년에 2000만원 이상이면 종합소득으로 분류돼 최고 49.5%의 세율이 적용된다. 배당이 종합소득에서 빠져 분리과세로 분류되면 세금 부담이 낮아지는데, 대주주가 이사회를 좌지우지하는 우리나라 기업의 특성상 이 방안은 배당 확대를 독려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해 최 부총리는 지난달 27일 기자간담회에서 “배당소득 저율분리과세의 대상과 범위를 두고 여러 의견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며 “(세제 혜택이) 너무 크면 형평성에 어긋날 수 있으니 대안을 마련해 접점을 찾겠다”고 밝힌 바 있다.
세법 개정안은 정부가 독자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라 야당의 동의를 얻어 국회를 통과해야 시행까지 이어진다. 11~12월이 밸류업 랠리 후보 기간으로 꼽힌 이유도 세법 개정안의 국회 통과 여부가 나오는 시기라서다. 세법 개정안은 통상 예산안의 부수 법안으로 통과되는데, 예산안의 법정 의결 시한은 12월 초다.
박소연 신영증권 연구원은 “야당도 ‘주식시장 활성화가 필요하다’는 대명제에는 충분히 공감하고 있다”며 “(밸류업 2차 랠리에) 지나치게 비관적일 필요는 없다”고 분석했다.
저평가받는 업종 중에서도 밸류업이 가능할 만한 업종을 추려보는 것이 필요하다는 조언도 나왔다. 김재은 NH투자증권 연구원은 “보험 업종에선 시니어케어 시장의 빠른 외연 확대가 기대된다”며 “석유화학 업종은 이달 말 정부가 구조조정을 유도하면서 전망이 밝은 신사업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재편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
한국 정부가 코리아 디스카운트 현상을 타파하기 위해 일본 모델을 참고해 도입한 정책이다. 상장사가 주가순자산비율(PBR)과 자기자본이익률(ROE)을 공시해 투자자가 한눈에 기업 지표를 확인할 수 있게 하는 게 핵심 내용이다. 상장사가 배당을 확대하거나 자사주를 소각하는 등 주주가치를 제고하는 조치를 취하도록 유도하는 게 목적으로, 정부는 세제 혜택과 상장지수펀드(ETF) 편입 등으로 기업의 프로그램 참여를 독려하고 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