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김송이 기자 = 4년 전 오늘 서울남부지법 형사합의11부(부장판사 이환승)는 항공사 승무원 30대 김 모 씨의 살인 혐의 결심공판에서 김 씨에게 징역 18년에 보호관찰 5년을 선고했다.
◇ 결혼식 사회도 본 11년 지기 무참히 살해
김 씨는 국내 주요 항공사 승무원이었다. 경찰 공무원인 친구 A 씨와는 ’11년 지기’로 같은 대학 같은 과에서 만난 두 사람의 우정은 남달랐다.
경남 거제도가 고향이었던 김 씨는 대학 때부터 자취생활을 했고, 그런 김 씨를 A 씨의 가족도 각별히 챙겼다. 김 씨는 A 씨의 가족과 외식도 하고 집에서 자고 가기도 했다.
두 사람은 경찰관과 항공사 승무원이 돼 각자 원하던 꿈도 이루고 단짝 친구로 인생을 함께했고, 2018년 겨울 A 씨가 결혼했을 때 김 씨가 사회를 맡았다. 기념 촬영 때도 부부의 바로 옆자리에 섰던 김 씨는 왜 11년 친구를 무참히 살해했을까.
◇ 결혼 1년 만의 첫 외박에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온 남편
두 사람은 2019년 12월 13일 오후 7시 20분부터 다음 날 새벽 1시 20분까지 주점 3곳을 다니며 소주·맥주·위스키·칵테일을 들이켰다.
13일 밤 11시에 아내에게 전화를 건 A 씨는 ‘친구가 안부를 묻고 싶어 한다’며 김 씨에게 폰을 건넸고, 김 씨는 ‘오늘 A와 술을 좀 많이 마실 건데 우리 집에서 재우고 가도 되겠냐’고 물었다.
이후 밤 11시 40분께 ‘택시 타고 강서구 친구 집으로 가고 있다. 외박 허락해 줘서 고맙다’고 보낸 메시지가 아내가 마지막으로 받은 연락이었다.
◇ 몸에는 상처 하나 없이 얼굴만 심하게 짓이겨진 경찰관
새벽 1시 59분 김 씨 집 CCTV에는 김 씨와 A 씨가 사이좋게 어깨동무하고 올라가는 모습이 찍혔으나, 집에 들어간 지 약 30분 만에 이상한 상황이 벌어졌다. 속옷 바람으로 피를 묻히고 뛰쳐나온 김 씨가 CCTV에 찍힌 것.
바로 옆 동에 있는 자신의 여자 친구 집으로 향한 김 씨는 공동 현관문에서 속옷을 벗고 여자 친구 집으로 올라가 샤워를 한 뒤 잠에 들었다. 당시 김 씨의 여자 친구는 집에 없는 상태였다.
주짓수 수련자인 김 씨는 자기 집 안방에서 무슨 이유에서인지 감정이 폭발해 A 씨를 일방적으로 폭행했다. 김 씨는 A 씨의 얼굴만 집중 공격했고, 벽에는 선혈이 낭자했다. 김 씨는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얼굴이 뭉개져 피를 흘리는 A 씨를 방치했고, 아침에 집으로 돌아와 119에 신고했으나 A 씨는 이미 숨을 거둔 뒤였다.
◇ 친구 살해 전 ‘몰카’ 찍은 혐의로 경찰 조사받았다
범행 수개월 전 사실 김 씨는 성범죄(불법촬영) 혐의로 고소당해 경찰 조사를 받고 있었다. 혐의가 사실로 입증돼 처벌받는다면 김 씨는 미국 비자를 발급받을 수 없게 돼 더 이상 항공사 승무원으로 근무할 수 없었다.
실직 두려움이 김 씨를 감쌌고, 김 씨는 즐겨 마시던 술도 끊었다. 경찰관인 A 씨는 김 씨에게 수시로 전화해 조언과 위로를 건넸고, 2019년 11월 20일 수사기관은 최종적으로 불기소 처분(혐의 없음)을 내렸다.
이에 김 씨는 A 씨에게 전화를 걸어 고마움을 전한 뒤 자연스럽게 술자리를 약속했다. 그렇게 김 씨는 3개월 만에 술을 마시고 살인을 저질렀다.
A 씨의 아내는 MBC ‘실화탐사대’와의 인터뷰에서 김 씨가 자신의 성범죄 혐의와 관련해 남편에게 ‘네가 담당 팀에 아는 사람이 있으니 사건에 대해 물어봐 달라’고 부탁했다고 기억했다.
아내는 “남편이 경찰로서 ‘네 잘못이 있다’는 식으로 친구에게 얘기하기도 했었다”며 몰카 사건이 무혐의로 나오기는 했으나 남편이 직언했던 것이 살인의 발화점이 되지는 않았을지 의심했다.
◇ “기억 안 나”…고의성 없었다고 주장했으나 징역 18년
재판의 최대 쟁점은 살인의 고의성 여부였다. 김 씨는 재판에서 ‘몸싸움은 있었으나 술에 취해 왜 친구를 때렸고 방치했는지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살인의 고의성이 없었고 설령 고의가 인정된다고 해도 ‘미필적 고의’에 불과하다며 범행 당시 심신미약 상태였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A 씨의 유족은 “술에 취해 몸을 가누기도 힘든 피해자를 일방적으로 살해한 것이다. 범행 후 여자 친구 집 비밀번호를 똑똑히 기억해 누르고 들어간 것 등의 정황을 볼 때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주장은 명백한 거짓”이라며 울분을 토했다.
재판부는 김 씨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피해자가 다량의 피를 흘리고 있었던 점, 범행 장소였던 안방에서 나와 씻고 여자 친구 집에 가서 또 한차례 샤워를 하고 잠을 잔 점 등 범행 이후 행동을 봤을 때 김 씨가 A 씨의 상태를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고 판단했다.
검찰은 무기징역을 구했으나 2020년 6월 11일 1심은 김 씨에게 징역 18년을 선고했다. 이후 2심과 대법원에서도 1심 판결이 그대로 유지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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