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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도적 조난, 윤석열 호의 연금개혁 중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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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정부의 연금개혁이 21대 국회 회기 종료와 함께 중단되었다. 지난 5월 9일, 취임 2주년 기자회견에서 대통령이 “연금개혁을 22대 국회로 넘기겠다.”고 선언하자, 여당은 21대 국회 회기 내 연금개혁 논의 중단을 선언했다. 주요 의제인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과 보험료 수준을 야당이 대폭 양보하여 여당의 안인 소득대체율 44%, 보험료 13%를 최종 수용했음에도 용산의 뜻에 따라 합의는 무산되고 연금개혁특별위원회(이하 연금특위)는 해산되었다.

공적연금 축소 숨은 의도 의심

그동안 윤석열 정부는 대선 공약과 상반되게 국회에 연금특위를 설치하여 국회중심으로 연금개혁을 추진해 왔다. 공사연금을 망라하여 전문가 논의와 이해관계자 타협과 사회적 공론화를 거쳐 임기 내에 완성판 연금개혁을 만들겠다는 공약이 채 귓가에서 떠나기도 전에 정치일정에 쫒기는 국회에 개혁 기구를 급조하여 만든 배경부터 의심스러웠다. 예상대로 아무런 로드맵도 없이 내몰린 민간전문위원들은 논의 우선순위를 놓고 구조개혁과 모수개혁에 혼선을 거듭하였고, 개혁 논의의 범위도 직역연금과 퇴직연금, 개인연금까지 포함할지 확정하지 못한 채 논의는 쳇바퀴만 돌아야 했다. 그러다가 연금특위에서 최종 제시한 7가지 주제를 놓고 올 해 들어 공론화논의에 들어가 4월 말까지 진행되었다. 외형상 전문가들의 논의와 이해집단 대표들의 의견수렴과 시민대표들의 숙의토론과 표결이라는 절차를 거쳐 잘 진행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연금개혁의 책임 주체, 지원 조직, 개혁 로드맵, 진행 일정, 논의내용 등 모든 면에서 윤 대통령이 공약한 완성판 연금개혁을 달성할 수 있는 개혁구도는 아니었다. 이번에 비상식적으로 중단된 연금개혁 사태를 통해서, 이번 정부가 실은 국회에 바지 사장을 앉혀놓고 보이지 않는 손으로 모든 상황과 변수들을 조정하려는 것 아니냐는 그동안의 의심에 더욱 확신을 갖게 되었다. 나아가 보이지 않는 손이 이끄는 곳은, 공적연금의 강화나 내실화를 통한 빈곤예방과 적절한 노후소득보장이 아니라, 재정안정화와 사적연금시장 확대를 통한 자본시장 활성화가 아니냐는 의심이 사실로 드러나고 있다.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는 바지사장

이렇게 눈에 환히 보이는 무책임하고도 비효율적인 개혁구도를 야당이나 시민단체, 언론, 학자 누구도 날카롭게 지적하지 못했다(필자는 이 개혁구도의 문제를 신문 칼럼을 통해 여러 차례 제기했지만 호수에 돌을 던지는 것에 불과했다.). 이미 국민의 신뢰를 잃은 언론은 그렇다 치더라도, 수많은 인적, 물적 자원을 보유한 거대 야당조차도 아무 문제제기 없이 연금개혁특별위원회에 참여하였다. 지금까지의 과정만을 보면, 여야 모두 실세 사장의 들러리 역할을 수행해온 모양새가 되었다. 그 이후 연금특위는 마치 조난당한 배처럼 방향키를 누가 잡을지, 어디로 향해야 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른 채 시종을 허둥지둥 거렸다. 대양을 항해하고 있어야 할 배가 출항한지 2년이 지난 지금 마치 조타키가 고장 난 듯 출항한 연안만을 계속 맴돌고 있다.

하지만 이번 국회회기에서의 여야 합의 불발이 차라리 잘 되었는지도 모른다. 이미 시민대표단 다수가 선택한 소득보장 강화(소득대체율 50%로 상향조정)와 재정안정화(보험료율을 13%까지 인상) 동시추진 안이 여·야의 손에서 변질되었기 때문이다. 정부·여당이 고집한 안(소득대체율 44%, 보험료율 13%)대로 야당이 동의했다면, 그리고 22대 국회에서 또 다시 급여감축에 초점을 둔 구조개혁 논의를 하기로 했다면, 모처럼 맞은 국민의 소득보장 강화 기대를 완전히 저버리게 되었을 것이다. 또한 개별 연금제도만으로는 치유가 불가능할 정도로 피폐해진 공적연금 체계 전반을 재구조화 하여 공정하고 평등하며 효율적이고 현대화된 다층모델을 구축할 기회가 아주 없어졌을 것이기 때문이다.

개혁구도 제대로 짜 원점에서 다시 시작해야

이제 문제는 22대 국회에서 연금개혁 구도를 어떻게 다시 구축할 것인가이다. 이는 국민 노후의 삶 뿐 아니라 젊은이들이 안심하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마음껏 도전하는 사회를 만들 수 있을 것인가가 달린 문제다. 보험료와 급여주준은 합의가 쉽지 않지만 기본적인 개혁 논제일 뿐이다. 소득계층 간 다른 보장 목적을 수행하도록 제도간 기능이 명확하게 설계되고, 제도 상호간 갈등이 아닌 상승효과를 낼 수 있고, 노후소득보장 뿐 아니라 산업과 경제 선순환에도 기여할 수 있는 효율적 다층 연금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야당은 가장 먼저 정부·여당의 숨은 의도를 파악하고 보이지 않는 손이 작동하지 못하도록 합리적 개혁기구와 개혁논의 구도를 만드는 노력부터 해야 한다.

나아가 연금개혁의 철학과 비전, 개혁 방향과 전략, 연금체계 개혁의 큰 그림을 제시하여 국민에게 꿈을 줄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근로자와 고용주와 국가의 3자 부담을 설득할 수 있다. 지금까지 우리나라 연금개혁 과정을 보면 국민을 진정으로 설득하는 정당을 본적이 없다. 하지만 그럴 때만이 국민과 기업들의 이해와 양보와 얻을 수 있다. 특히 사회권 보장을 위한 쇄빙선 역할을 자임하는 조국혁신당은 공적연금제도에 비우호적일 수 있는 정부·여당의 숨은 의도를 간파하고 명확한 문제의식과 아름다운 노후의 삶에 대한 비전과 최선의 개혁 대안 제시에 다른 정당들의 모범이 되어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의 우리나라 연금개혁, 특히 국민연금개혁은 국민 편에서 보면 지나치기를 넘어 가혹하기까지 했다. 공무원 등 특수직역 공직자들을 위한 공적연금제도와는 다르게 대다수 국민이 가입한 국민연금에 대해서는 차별적이고, 선제적이며, 세계사에 유래 없이 급격한 삭감개혁으로 일관했다. 그 결과가 지금의 가혹한 노인빈곤과 노인자살의 현실이다. 그렇게 국민연금 개혁에 앞장선 자들은 대부분 공무원연금이나 사립학교교직원연금에 가입한 관료들과 교수들이다. 그들 중 상당 비율은 부부 합산 연금이 월 700만 원에서부터 많게는 800만 원 이상이 되기도 한다. 그들은 자신들이 가입한 공적연금에는 알게 모르게 옹호하거나 묵인해 왔다. 그럴 지위와 기술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면서도 뒤늦게 태동하여 채 발육도 하지 못한 국민연금에 대해서는 때로는 왜곡된 기금고갈론으로 위협하고, 때로는 세대갈등론을 조장하며 삭감개혁을 강요하였다. 삭감 개혁에 따른 국민의 빈한한 노후 삶도 문제지만 가뜩이나 낮은 국민연금에 대한 가입자들의 신뢰를 더 추락하게 만든 과오를 반복적으로 범하였다. 이는 청년들의 연금 가입기간 부족을 초래해 연금빈곤의 악순환을 야기하게 하였다. 그 결과 제도의 장기적 유지가능성을 저해하는 핵심요인이 되고 있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이 지난달 31일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열린 제4차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연금학자와 전문가들의 책임이 크다

지금 우리나라의 극심한 노후빈곤과 노인자살의 참상이 개선되지 못하는 데에는 필자를 포함하여 연금학자나 전문가들의 책임이 크지 않다고 말할 수 없다. 정치권과 언론들은 의도를 가지고 고의적으로, 또는 잘못 이해하거나 무지해서 공적연금과 사적연금의 원리를 혼동하여 재정문제를 지속적으로 부각시킨다. 그것이 국민의 눈에 잘 띄기 때문이기도 하다. 또한 국가의 공적연금에 대한 재정책임에 대해서는 언급하려 하지 않는다. 국가는 자신의 역할의 많은 부분을 공적연금에 전가하여 수행하게 하고 있다.

즉, 공적연금을 통해 강제적으로 소득을 재분배해 빈곤을 예방하게 하고, 사회적 연대 기능을 강화한다. 또한 국민의 자유를 일정부분 제한하여 연금가입과 탈퇴를 강제한다. 출산과 군복무 등 사회공헌에 대하여 연금으로 보상하도록 하기도 한다. 그 결과 체제의 안전과 사회적 결속을 견인하도록 한다. 이런 역할을 공적연금에 지우는 국가는 마땅히 제도 운영에 대한 책임과 함께 재정 책임을 져야한다. 공적연금의 독특한 사회적 연대원리와 국가의 재정책임에 대하여 연금학자와 전문가들은 더 앞서서 정치인, 관료, 언론들을 교육하고 설득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게 사회정책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지식인으로서의 마땅한 도리이다. 연금정치의 구도를 이해하고 당사자들의 숨은 의도를 파악하여 개혁의 방향을 잡아주는 역할 역시 연금학자들의 몫이다.

그런 의미에서, 연금학자들과 전문가들은 정부·여당이 급조하여 제시한 연금개혁 구도가 초래할 위험성과 한계를 파악하고 문제제기와 대안제시를 마다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나라 노인의 빈곤과 자살의 실상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고 이를 개선할 소명으로 연금개혁에 임하고 있다면, 주어진 연금정치의 구도에 무조건 편승해서는 안 된다. 초기에 형성된 연금개혁 구도가 개혁의 방향과 내용과 속도를 실질적으로 제약하기 때문이다. 개혁구도에 대한 문제나 대안제시 없이 정부·여당이 제시한 대로 개혁논의에 참여만 한다면 이는 결과를 책임지지 않겠다는 태도일 뿐이다. 국민의 고통에 책임질 각오 없이 연금개혁에 참여하는 것은 자신의 인지도와 커리어만 관리하려는 태도로 보일 수밖에 없다. 용기가 필요하다.

그렇다면 앞으로 진행될 연금개혁은 어떻게 될까? 22대 국회에서 연금개혁 절차가 재개된다 하더라도 보이지 않는 손이 원하는 바가 달성될 때까지 연금개혁이 제대로 굴러가기 어려울 것이다. 따라서 아무리 합리적 절차를 통해 타당한 개혁 방안이 도출된다 하더라도 용산의 의도가 달성되지 않는 한, 어떤 이유를 들어서든 지금처럼 외면되거나 거부당할 가능성이 크다. 국회에서 야당이 발의하여 통과시킨 모든 법안에 거부권을 행사하는 대통령의 행태를 보아 반드시 그럴 것이다.

명확하게 드러내 놓지는 않았지만, 그 보이지 않는 손인 실세 사장이 진짜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공적연금 영역을 축소하고 사적연금 시장을 키우고 연금기금 관리 영역을 넓히는 것이다. 이는 그간의 시행령 개정으로 추진한 여러 조치들과 정책기조 발표 등을 통해 충분히 확인할 수 있고 또 예견되는 일이다. 이것이 윤석열 정부의 완성판 연금개혁의 궁극적 목표가 될 것이다. 이를 충분히 이해하고 연금개혁에 임해야 할 것이다. 21대 국회의 연금개혁이 비록 중단되었지만 몇 가지 중요한 결실들이 있었다.

22대 국회에서의 연금개혁 구도와 논의의 전개 방향은?

첫째, 시민의 집단지성은 올바른 길을 찾아간다는 사실이다. 그동안 연금개혁이 있을 때마다 전문가라는 사람들과 관료들과 이해집단 대표들의 제한된 논의가 있었다. 외부인들에게는 어려운 용어와 피상적 자료만 제공되고 결국 정치인들의 밀실 합의로 개혁안이 타결되곤 하였다. 논의 장 밖에서는 이해집단의 무력시위와 언론의 기금고갈 위협이 난무하고, 세대별, 남녀별, 직종별 대립과 갈등이 첨예하게 대두되곤 하였다. 하지만 지난 문재인 정부에서의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산하 국민연금개혁과 노후소득보장특별위원회의 사회적 대타협과, 이번 21대 국회의 연금특위가 주도한 사회적 공론화는 집단지성으로 사회적 과제의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는 매우 큰 시사점을 주고 있다. 무엇보다도 연금개혁 같은 매우 복잡하고 어려운 정책과제도 정확한 논의 주제가 주어지고 사실 자료와 이에 대한 다른 관점의 전문가들 설명과 질의응답과 토론의 기회가 충분히 주어진다면 하나하나의 주제에 재한 방향을 찾아 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와 이번 시민대표로 참석한 분들이 느끼는 공정성과 숙의토론에 대한 신뢰도는 매우 높은 것으로 드러났다.

둘째, 공정하게 주요 이해집단의 대표를 뽑고 주제별로 정제된 의견을 문서화하여 제시하도록 하는 것과 시민대표단의 선출을 어떻게 공정하게 할 수 있을 것인가가 관건이 될 것이다. 이번 이해집단 대표 구성에 있어서 몇 가지 불공정 시비 소지가 있는 일들이 있었다. 노후소득보장의 핵심 주체인 노인 권익단체 대표를 선정하는 데 있어서 공적연금수급자유니온 같은 연금개혁에 직접적 이해관계 단체를 누락시킨 점이다. 또한 이해단체 의견진술자에서 노인 권익을 대표하는 집단의 진술인 대표가 선정되지 않은 것도 공정성에 큰 흠이 될 것이다. 더 나아가 논의 주제를 설정하는 데도 불공정한 문제가 있었다. 기초연금제도 논의에서 기초연금 지급대상을 넓히는 대안은 선택지에서 제외한 것이다. 이미 문재인 정부의 사회적합의 권고문에서 기초연금 지급대상을 점진적으로 넓히는 데 모든 이해단체 대표들이 동의했었다. 기초연금 지급대상을 넓히는 대안을 고의적으로 제외시켰다면 이는 매우 불공정하다.

셋째, 그간의 정치권이나 언론에서 주장하던 내용들이 프로파간다였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대표적인 것들이 기금고갈론에 기반한 재정불안 경고가 매우 왜곡되고 과장됐다는 사실과 국민연금의 실질적 보장성이 매우 취약하여 더욱 보장성을 높여야 한다는 사실, 연금제도가 후세대에 부담을 전가하는 폰지 사기라는 주장이 과장되고 터무니없는 세대갈등 조장이라는 사실을 당사자들이 충분히 이해했다. 지난 정부의 사회적 대타협 참여자들 역시 소득보장을 강화하여 소득대체율을 50% 수준으로 해야 한다는데 대부분 동의한 사실과 보험료를 점진적으로 인상하는 것을 대부분의 대표들이 받아들이고 있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어려운 연금개혁의 여정이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될 것이다. 앞서 말한 대로, 각 정당들은 먼저 각자의 연금개혁 비전을 명확히 밝히고 개혁의 방향과 목표, 개혁안을 분명히 밝여야 할 것이다. 그 후 연금개혁의 구도와 로드맵을 정성을 들여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 사회적 이해집단의 주제별 의견 제시와 시민대표들의 숙의토론과 주제별 표결에 의한 방향과 대안 선택과정을 거쳐 국민보고회까지 한다면 구조개혁을 넘어 세계적으로 모범적인 연금체제개혁의 성과가 나을 수 있을 것이다. 공정하고 평등하며 효율적인 다층 연금체계를 구축하여 노인이 존중받고 노후가 행복한 사회, 그래서 젊은이들 안심하고 결혼하고 아이도 낳고 도전하며 살아갈 수 있는 나라를 만들 수 있기를 희망한다.

▲이재섭 복지국가소사이어티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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