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 칼럼에서 필자는 인공지능과 관련된 일본의 최근 동향을 소개한 바 있다. 일본은 디지털 전환에 실패하면서 경제사회적으로 큰 어려움을 겪었지만 2020년대 이후 새롭게 등장한 인공지능사회에서는 과거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보다 적극적으로 경제사회구조를 전환하고자 정책적으로 노력하고 있음을 소개한 바 있다. 그런데 이와 유사하게 오늘날 우리는 또 다른 변혁의 시기에 직면해 있다. 이번에는 인공지능이 아니라 바로 기후 변화와 탄소 중립을 달성하기 위한 경제적 및 기술적 과제의 해결과 나아가 국제적인 협력을 도모해야 한다는 과제이다. 인공지능의 보급에 따른 디지털 사회로의 전환과 더불어 탄소중립과 에너지 전환은 우리가 안고 있는 가장 중요한 과제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최근 일본은 위와 같은 과제해결을 위해 “아시아 제로 에미션 공동체”(AZEC: Asia Zero Emission Community)를 결성하고 아시아 지역, 특히 아세안 국가들과의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아시아 제로에미션 공동체”는 2023년 3월에 도쿄에서 제1차 장관급회의를 개최하였고 동년 12월에 정상회의를 개최한 바 있다. 그리고 2024년 8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제2차 장관급회의가 개최될 예정이다. 아시아 제로에미션 공동체에는 일본을 비롯해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 아세안 9개국, 그리고 호주 등 아시아 국가들이 참여하고 있다. 현재 한국과 중국은 이 공동체에 참여하고 있지 않으며 기술 및 경제적 역량을 가지고 있는 일본이 이 공동체의 주요 사업들을 주도하고 있다. 주요 사업 내용으로는 재생 가능 에너지 프로젝트, 에너지 효율 향상, 탄소 포집 및 저장 기술 개발, 친환경 교통 인프라 구축 등이 포함된다.
예를 들어, 미쓰비시중공업은 인도네시아 국영전력회사(PLN계 기업)와 화력발전에서 수소 및 암모니아 혼합연소를 검토하고 있으며 동 회사에 대해 일본무역보험이 융자보험으로 지원하고 있다. 호주기업과는 재생항공연료(SAF) 및 합성연료의 제조와 공급에서 협력한다는 방침이다. 베트남 해상풍력발전사업에 일본기업이 참여할 예정이다. 이처럼 일본은 아세안 국가들에서 태양광 및 풍력 발전 설비를 확충하고, 발전소의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등 다양한 사업을 할 예정인데 아시아 제로에미션 공동체는 이를 실현하기 위한 중요한 국제협력틀을 제공해 줄 것으로 보인다.
일본이 아시아 제로에미션 공동체를 추진하는 궁극적인 목적은 탄소 배출을 줄이는 환경적 목표 달성에 그치지 않는다. 일본은 탈탄소화와 에너지 전환을 통해 새로운 산업과 기술을 개발하고, 이를 바탕으로 경제 성장을 도모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장기적으로 일본경제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혁신적인 산업 생태계를 구축하는 데 기여할 것이기 때문이다. 에너지 안보 강화도 중요한 목적이다. 에너지 자원의 대부분을 해외에 의존하는 일본은 재생 가능 에너지와 같은 새로운 에너지원을 개발함으로써 에너지 안보를 강화하고, 에너지 수급의 안정성을 높이려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이를 통해 에너지 수급의 리스크를 줄이고, 보다 자립적인 에너지 구조를 구축하려고 한다. 국제적 리더십 확보에 기여할 수 있다. 일본은 아시아 지역에서의 리더십을 강화하고, 국제 사회에서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 아시아 제로에미션 공동체와 같은 다자간 협력 체제를 주도하고 있다. 이를 통해 일본은 국제적 기후 목표 달성에 기여하고, 아시아 지역의 다른 국가들과 협력하여 상호 이익을 도모하고자 한다. 즉 일본 정부의 이러한 정책은 경제적 이익, 에너지 안보, 국제적 위상 강화, 그리고 환경 보호라는 다방면의 목적을 동시에 달성하기 위한 전략으로 볼 수 있다.
한국은 현재 여기에 참여하지 않고 있다. 중국도 참여하지 않았다. 어디까지나 일본이 주도하고 아세안과 호주가 참여할 뿐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어떤 전략을 구사해야 할 것인가? 우리도 탈탄소를 지향하며 이 과정에서 기술개발과 경제성장을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내세우고 있다. 일본은 아시아 지역을 대상으로 적극적인 시장확보, 나아가 영향력 확대를 위한 본격적인 행보를 시작하였다. 우리나라는 현재 어디에 와 있는가? 두 가지 전략이 있을 수 있다. 하나는 우리도 개별적으로 아세안 국가들이나 호주 등과 탈탄소를 위한 기술 및 경제적 협력을 독자적으로 수행하는 전략이다. 다른 하나는 일본이 추진하고 있는 아시아 제로에미션 공동체를 활용하는 전략이다. 과연 어느 전략이 더 우리에게 이익이 될 것인가?
필자는 본 칼럼을 통해 한국과 일본이 경제적 및 기술적으로 한 차원 높은 협력관계를 추구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이러한 주장은 이 대목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무엇보다도 한국은 일본과 마찬가지로 에너지 전환과 탈탄소 분야에서 중국과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으며 태양광, 풍력, 배터리, 전기차 등 핵심 분야에서 중국에게 밀리고 있다. 그리고 첨예한 미중경쟁으로 공급망이 급속히 재편되는 상황에서 아세안 지역에서의 산업지형도 급변하고 있어서 한국도 서둘러 아세안을 비롯한 아시아 주요 지역과의 협력관계를 구축할 필요성이 매우 높은 것이 현실이다. 한국은 아시아 제로에미션 공동체 참여를 통해 다음과 같은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첫째는 기술 혁신 촉진이다. 일본과의 협력을 통해 재생 가능 에너지 및 탄소 저감 기술 개발을 가속화할 수 있다. 둘째는 경제적 이익이다. 공동체 내 다양한 프로젝트에 참여함으로써 경제적 이익을 창출하고, 일자리 창출에도 기여할 수 있다. 셋째는 국제적 위상 강화이다. 아시아의 탄소 중립 목표 달성에 기여함으로써 국제적인 환경 리더십을 강화할 수 있다. 그리고 넷째는 에너지 안보 강화이다. 다자간 협력을 통해 안정적인 에너지 공급망을 구축하고, 에너지 안보를 강화할 수 있다.
일본이 주도하는 아시아 제로에미션 공동체는 아시아 지역의 탄소 중립 목표 달성에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필자는 한국도 이 공동체에 적극 참여하여 기술 혁신과 경제적 이익을 도모하고, 국제적인 환경 리더십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인공지능의 발달, 탄소 중립, 그리고 미중전략경쟁에 따른 공급망 재편이라는 시대적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한국과 일본은 서로의 강점을 살리고 약점을 보완할 수 있는 좋은 파트너이다. 탄소 중립을 실현하기 위한 양국의 기술적 및 경제적 협력은 그 중요한 분야이며 한국이 아시아 제로에미션 공동체에 참여하는 것은 한일협력의 좋은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두 나라 정부의 적극적인 협력을 기대해 본다.
정성춘 선임연구위원
▷서울대 경제학과 ▷히토쓰바시대학(一橋大學) 경제학연구과 경제학 박사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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