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름계의 원로 故김학용
강호동도 무서워한 호랑이 감독
그의 씨름 인생 재조명
씨름선수 출신이자 현재는 대한민국에서 알아주는 방송인 강호동은 어엿한 국민 MC로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시청자와 만나고 있다.
스포츠 선수라는 경력 덕에 카리스마 있는 진행 실력과 남성미로 ‘강한 캐릭터’로 자리 잡은 강호동이지만, 이런 그가 두려워한 사람이 있다.
바로 씨름 선수이자 감독이었던 ‘백두대호’ 故김학용이다.
5~60년대 씨름판 휘어잡은 故김학용
경북 경산에서 1935년 태어난 김학용은 어릴 때부터 그 힘이 장사였던 지라 중학생 시절에 80kg에 달하는 가마 두 대를 들어 올릴 정도였다고 전해진다.
강건한 자세와 강력한 손아귀 악력으로 씨름계에 입문한 김학용은 전국 씨름선수권 대회에서 3연패를 기록하는 등 5~60년대를 풍미했다.
전국 장사 씨름 대회에서 21회 우승을 하는 등 씨름 대회에서 황소 트로피를 쓸어갈 정도였다고 한다.
60년대 이후 김학용은 선수 생활을 마무리한 이후 사업에 매진하였으나 80년대에 다시 씨름판에 발을 들여놓았다.
씨름판으로 복귀한 김학용은 민속 씨름 위원회에서 심판 위원장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당시 김학용이 심판 위원장으로 있을 당시 씨름판을 휘어잡고 있는 사람은 지금도 방송에서 활발하게 활동 중인 이만기였다.
이만기는 천하장사 10회를 기록하고 각종 공식 대회에서 47번의 장사 타이틀을 거머쥐는 등, 역대 모든 씨름 선수를 통틀어 최고 승률을 보유하고 있다.
주변인들은 김학용에게 감독으로 제자를 양성하여 이만기를 이겨보지 않겠냐고 권유했으며, 이에 김학용은 1989년 감독으로 취임했다.
일양약품 2대 감독으로 취임한 김학용이 이때 발굴한 선수가 바로 강호동이었다.
김학용 감독의 회고에 의하면, 당시 강호동은 자기 집 마루에 앉아 혼자 밥을 먹고 있었는데, 국자만 한 숟가락으로 밥을 먹고 있었다고 한다.
이 모습을 본 김학용이 “쟤는 무조건 대성한다”는 생각에 강호동을 데려가 씨름을 가르치기 시작했다고 전해진다.
이후 김학용은 강호동의 운동 신경을 최대한 키우기 시작했으며, 강호동은 그 결과 1990년 최연소 천하장사 타이틀을 획득할 수 있었다.
이만기가 밝힌 바에 따르면 당시 김학용은 강호동에게 “너는 무슨 수를 써도 이만기를 못 이긴다”고 조언했으며 “딱 한 가지, 이만기의 성질을 건드리면 이길 수 있다”고 했다고.
이후 김학용은 2000년 씨름계에서 완전히 은퇴했으며, 당뇨와 췌장암이 겹치며 병상에 누워야 했다.
2007년 향년 7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지만, 숨을 거두기 직전까지도 씨름판을 걱정했다고 전해진다.
당시 김학용과 함께 있었던 이준희 감독은 “선생님(김학용)은 씨름인들이 합심해 모래판을 반드시 살려야 한다고 강조하셨다”고 전했다.
강호동을 연탄 사이에 숨게 만든 백두대호 김학용
한편 김학용을 제일 두려워했다는 강호동의 일화도 함께 재조명되고 있다.
강호동이 밝힌 바에 따르면, 김학용 감독의 밑에서 제자로 있던 강호동은 훈련이 너무 힘들고 지긋지긋해서 씨름부가 단체로 가출을 한 적이 있었다고.
민박집에 머무르면서도 그냥 조용하다는 자체가 좋고 괴로운 운동을 하지 않으니 지나가는 사람들만 봐도 웃음이 실실 나올 정도였다고 전했다.
민박집에서 라면을 끓이던 강호동은 어느 날 초인종 소리를 들었는데, 동기 한 명이 현관문을 열자 그 앞에 김학용 감독이 서 있었다.
머리끝까지 화가 난 채로 서있었던 김학용을 피해 간신히 도망친 끝에 민박집의 연탄창고로 숨어든 강호동.
옷을 전부 벗고 연탄을 몸에 발라 위기를 모면하려고 했지만, 결국 다 벗은 채로 김학용에게 발각되어 잔뜩 혼이 났다는 일화를 밝히며 웃음을 자아냈다.
천하의 강호동도 두려움에 떨게 할 정도로 무시무시한 스승이었지만, 동시에 강호동은 김학용을 아버지 같으신 분이라고 전하기도 했다.
김학용의 소식이 전해지자 네티즌들은 “호랑이의 인간화 같다”, “그냥 언뜻 봐도 피지컬이 어마어마하네”, “내가 강호동이어도 무서웠을 듯” 등의 반응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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