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임팩트 김병주 기자] 다소 꺾이는 듯했던 가계대출이 다시 폭발하는 조짐을 보이면서 은행권의 고민도 깊어지는 모습이다. 금융당국의 인위적인 개입이 지속됐음에도 주택담보대출 중심의 가계대출 증가세가 확대되자 일각에선 사실상 ‘백약이 무효한 상황’이라며 대출 관리가 쉽지 않다는 목소리도 들려온다.
업계에서는 최근 몇 년 새 가장 낮은 수준으로 내려온 주택담보대출 금리, 그리고 각종 주택 구매 관련 정책금융상품 공급이 가계대출을 끌어올린 것으로 보고 있다. 사실상 정부와 업계의 정책이 대출 잔액을 끌어올린 셈인데, 당장 은행권에서는 대출 심사 강화 등을 통해 관리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주담대 여파에 증가하는 가계대출
4일 한국은행과 은행업계에 따르면 지난 4월 말 기준 국내 전체 금융권의 가계대출 잔액은 전월 대비 4조1000억원 증가했다. 지난 2월과 3월 두 달 연속 이어지던 감소세도 불과 석 달도 안 돼 증가세로 전환한 것이다.
금융권의 가계대출 증가세를 견인한 원인으로는 첫 번째로 주택담보대출이 거론된다. 주택담보대출(이하 주담대) 대출 증가폭은 4조1000억원으로 전체 금융권 가계대출 증가 폭과 동일한 수준을 보였다.
이 같은 가계대출 증가세는 대출 공급 주체를 은행으로만 한정하면 더욱 두드러진다. 실제로 지난 4월 국내 은행권 가계대출은 전월 대비 5조1000억원 늘었다. 특히 은행권 주담대의 경우 전월 대비 4조5000억원 늘어나며 전체 금융권 내 주담대 증가량을 넘어섰다.
또 지난 4월 은행권 주담대 증가 규모는 불과 한 달 전인 지난 3월 증가폭(5000억원) 대비 9배나 폭증하며 눈길을 끌었다. 이처럼 은행권의 주담대 증가의 여파로 지난달 은행권 내 주담대 포함 전체 가계대출 잔액은 전월 대비 5.1조원 늘어난 1103.6조원을 기록, 다시 1100조원대로 재진입했다.
이러한 증가세는 지난 5월에도 지속된 것으로 보인다. 실제 데일리임팩트가 확인한 국내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지난 5월 말 기준 가계대출 잔액은 702조7000억원으로 전월 말(698조30억원) 대비 0.7%(4조6970억원) 가량 증가했다.
특히 주담대 영역의 증가세가 눈길을 끈다. 은행권 전반의 공격적인 기업금융 확대 전략 여파로 기업대출이 예상가능한 수준 증가한 반면, 주담대는 시장의 예상을 뛰어넘는 증가세를 보였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달 5대 시중은행의 주담대 잔액(전세대출 포함)은 545조6110억원으로 전월 대비 4조6200억원 가량 늘어나며 전체 가계대출 증가분 중 91%의 높은 비중을 보였다. 반면, 신용대출 잔액의 경우 103조1260억원을 기록, 전월 대비 3200억원 늘어나는데 머물렀다.
은행업계 관계자는 데일리임팩트에 “주택 관련 정책금융 상품의 상당수가 은행 주도로 이뤄지면서 잔액도 이에 발맞춰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며 “최근 매매 중심의 부동산 거래가 증가할 조짐을 보이고 있어 주담대 또한 증가세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고 해석했다.
주담대 증가세 지속 여부에 ‘촉각’
실제 업계에서는 당분간 주담대 증가세가 이어질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정부의 정책금융 상품 공급이 지속하는 상황에서 주담대 금리도 당국의 고정금리 확대 압박과 맞물려 점진적으로 내려가는 흐름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지난 4월 말 기준 한국은행이 밝힌 은행권의 주담대 평균 금리(신규 취급액 기준)는 3.93%로 전월(3.94%) 대비 0.01%p 내려가며 6개월 연속 하락세를 유지했다. 특히 이 같은 지난 4월 주담대 평균 금리는 지난 2022년 5월(3.90%)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라는 점에서도 주목된다.
향후 금리 하락에 대한 차주들의 기대감도 주택 매입 심리를 자극하는 배경이 됐다는 분석이다. 특히 이는 금융당국이 그간 집중해 온 ‘고정금리 확대’ 기조에 반하는 결과로 이어져서 눈길을 끈다.
지난달 말 기준 5대 시중은행의 고정형 주담대 금리는 평균 연 3.23~5.85% 수준에 형성됐다. 이는 한 달 전(연 3.10~5.7%) 대비 상하단 모두 0.1%p 가량 오른 수치다. 고정금리 확산을 위한 금융당국의 인위적 금리 개입에도 오히려 고정형 금리는 오른 것이다.
반면, 변동형 주담대의 경우 지난달 말 기준 연 3.8~6.49%으로 집계됐다. 이는 한 달 전인 지난 4월 말(연 3.91~6.85%) 대비 하단은 0.1%p, 상단은 0.4%p 가량 하락한 수치다. 변동형 금리의 준거금리로 활용되는 코픽스(COFIX)의 하락세가 영향을 미치면서 변동형 주담대 금리도 내려간 것이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데일리임팩트에 “LCR규제 정상화의 여파가 더해지면 은행채 발행량 증가는 불가피할 것”이라며 “은행채 발행이 늘어나면 채권 금리도 오르는 구조상, 은행채 금리에 연동되는 고정금리 오름세 또한 당분간은 불가피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 정부와 금융당국이 공급하는 정책금융 상품도 주담대 잔액을 끌어올리는 요인으로 거론된다. 실제로 대표적인 정책금융 모기지 상품인 ‘신생아 특례대출’의 경우, 지난 1월 말 출시 후 3개월 새 5조원 이상 공급(신청액 기준)됐다. 특히, 초기 재원인 주택도시기금의 소진으로 은행권의 재원을 통해 대출이 공급되고 있어, 직접적으로 은행 주담대 잔액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주담대 잡아라’ 고삐 죄지만…
일단 은행업계에서는 이러한 주담대의 증가세를 억제하기 위한 조치에 집중하고 있다. 주담대 또한 부실채무화 될 가능성이 적지 않은 만큼, 실수요자 대상 공급은 지속하되 그밖의 대출 목적인 경우 대출 심사를 보다 강화하겠다는 계획이다.
특히 주담대 한도 역시 ‘상환 가능한 최소한의 범위’ 내에서 설정해 공급하겠다는 기조는 지속 유지하겠다는 방침이다.
실제로 지난 4월 말 기준 국내 5대 시중은행에서 분할 상환식 주담대(만기 10년 이상)를 공급받는 차주의 신용점수는 평균 934점 수준을 기록했다. 이는 같은 기간 신용대출을 받은 차주의 평균 신용점수(926점)보다도 8점가량 높은 수치다.
통상적으로 신용대출 차주의 신용점수는 주담대보다 높다. 주담대는 ‘주택’이라는 확실한 담보 기반의 대출인 반면, 신용대출은 유무형의 신용도만으로 자금을 공급하는 대출이기 때문이다.
은행업계 관계자는 “최근 소위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투자)’ 형태의 주담대 수요가 다시 늘어나면서 이를 억제하기 위한 조치로 대출 심사 문턱을 높이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다만, 이러한 은행권 및 금융당국의 노력이 실제 성과로 귀결될지는 미지수라는 분석도 나온다. 이 관계자는 “금리하락에 대한 기대감이 지속하는 데다, 주택 시장의 침체가 회복세로 돌아설 경우 대출 수요가 더욱 늘어날 수 있다”며 “무작정 대출을 줄이는 것 또한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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