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년 간의 사례만 봐도 충분합니다. 실리콘밸리뱅크(SVB)와 FTX가 파산했어요. 은행이나 가상자산 거래소 등 수탁업체에 돈을 맡길 때 생기는 위험 부담을 온전히 해결할 방법은 없습니다. ‘내 돈의 통제권이 나에게 없다’는 본질적인 문제가 있기 때문이죠.”
마이클 샤울로프(Michael Shaulov·42) 파이어블록스 공동창업자 겸 대표는 가상자산 ‘셀프 커스터디(self-custody)’의 필요성을 언급하며 이같이 말했다. 셀프 커스터디란 가상자산을 거래소나 자산운용사에 맡기지 않고 개인 전자지갑에 보관해 스스로 관리하는 것을 일컫는다.
샤울로프 대표는 “개인과 기관을 막론하고 누구나 제3자에게 의존하지 않고 자신의 자산을 스스로 보관하기를 원한다”면서 “특히 웹3.0(블록체인 기반 탈중앙화 네트워크) 시대에서는 셀프 커스터디의 수요와 비중이 크게 늘 것”이라고 전망했다. 조선비즈는 지난달 10일 샤울로프 대표와 화상 인터뷰를 가졌다.
파이어블록스는 샤울로프 대표와 이단 오프라트 최고제품책임자(CPO), 파벨 베렌골츠 최고기술책임자(CTO)가 지난 2018년 설립한 가상자산 관리·운영 플랫폼 개발사로 주 고객은 기업과 공공기관이다. WaaS(Wallet as a Service·서비스형 가상자산 지갑)와 커스터디 기술 개발, 디파이(DeFi·탈중앙화 금융) 자금 관리, 주식과 채권 등 금융 자산의 토큰화, 가상자산 결제 등의 서비스를 제공한다.
현재 전세계적으로 1800여 곳의 기업이 파이어블록스의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다. 설립 후 6년 간 파이어블록스가 생성한 전자지갑의 수는 2억좌를 넘는다. 미국의 유명 은행인 뱅크오브뉴욕(BNY)멜론도 파이어블록스의 고객사 중 한 곳이다. 샤울로프 대표는 “BNY멜론은 파이어블록스와 손잡고 가상자산 중개 서비스에 나서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전했다.
금융사들이 셀프 커스터디에 관심을 보이는 이유를 묻자, 샤울로프 대표는 “가상자산을 다른 사업자에게 맡겼을 때 발생할 수 있는 각종 위험을 없앨 수 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그는 호주뉴질랜드은행(ANZ)과 브라질 최대 투자은행(IB)인 BTG팩추얼 등 대형 글로벌 금융사들도 파이어블록스를 통해 스테이블 코인(법정화폐와 가치가 연동되는 가상자산) 활용을 실험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주요 금융사들이 여러 가상자산 관리 플랫폼 중 파이어블록스를 찾는 이유에 대해선 “가장 높은 완성도의 보안 기술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샤울로프 대표는 파이어블록스 창업 전 이스라엘 방첩 당국과 테크 기업 등에서 보안관리 책임자로 일했다. 그는 “파이어블록스는 업계에서 유일하게 다층(多層·멀티 레이어) 보안을 제대로 구현하는 회사”라며 “우리의 서비스는 네트워크와 하드웨어의 완벽한 분리를 구현해 이상 상황에서 해커의 접근을 원천 차단한다”고 설명했다.
파이어블록스는 이스라엘의 국책 사업 파트너로 채택되기도 했다. 이스라엘 재무부는 지난해 텔아비브 증권거래소(TASE)와 함께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한 디지털 국채 발행 연구 사업을 진행했다. 파이어블록스도 이 프로젝트에 함께 참여했다. 이 프로젝트로 발행된 국채는 12개 은행이 경매로 매입했고 블록체인을 통해 실시간으로 정산되면서 성공적으로 마무리됐다.
샤울로프 대표는 앞으로 가상자산 셀프 커스터디 산업의 규모가 크게 성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현재 전세계 셀프 커스터디 시장의 규모는 4억달러(약 5480억원) 수준”이라며 “5년 후 시장은 지금의 10배 수준인 40억달러(약 5조4800억원) 이상으로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파이어블록스는 올해 한국 시장에서도 사업을 확장할 계획이다. 국내 게임 제작사인 위메이드는 파이어블록스를 통해 이미 지난해 6월부터 자체 발행 가상자산인 위믹스를 관리하고 있다. 국내 원화마켓 가상자산 거래소 중 한 곳도 파이어블록스의 서비스를 이용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샤울로프 대표는 “한국은 세계에서 블록체인 기술이 가장 발달한 국가”라고 말했다. 이어 “여러 글로벌 기업들이 한국에 진출해 있고, 가상자산의 거래량도 많다”면서 “웹3.0 관련 기업들에게 매력적인 시장”이라고 덧붙였다.
국내 금융 당국은 해외 가상자산 사업자들에게 강한 규제를 적용하고 있다. 국내에서 가상자산을 발행하거나 중개하려면 가상자산사업자(VASP) 인가를 받아야 하는데, 금융위원회는 해외 사업자들에게 승인을 해주지 않고 있다. 그러나 샤울로프 대표는 파이어블록스가 가상자산 거래를 중개하지 않고, 보관·관리 서비스만 하기 때문에 VASP 인가를 받을 필요는 없다고 설명했다.
다만 샤울로프 대표는 “기업이 파이어블록스 서비스를 이용할 때 각 국의 규제 방침을 준수하도록 플랫폼을 운영한다”면서 “이를 통해 가상자산이 자금 세탁이나 도박 등에 활용되지 못하도록 관리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현재 파이어블록스의 플랫폼을 통해 관리되는 가상자산의 규모는 연간 1조달러(약 1370조원)에 이른다. 샤울로프 대표는 올해부터 한국과 일본 등 아시아 시장을 공략해 사업 규모를 지금의 2배 수준으로 키우는 게 목표라고 전했다. 그는 “가상자산 관리 외에 스테이블 코인을 사용한 결제, 비금융 자산의 토큰화 등 다른 사업의 비중을 확대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마이클 샤울로프 파이어블록스 공동창업자 겸 대표는
▲네게브 벤구리온대 물리학·컴퓨터공학 학사 ▲이스라엘 군사정보국 소프트웨어팀장 ▲라쿤 모바일 시큐리티 공동창업자 겸 대표 ▲체크 포인트 소프트웨어 모바일·클라우드 상품 총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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