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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계(욕계·색계·무색계)의 뜨거운 번뇌가 마치 불타는 집(火宅)과 같거늘 거기에 차마 오래 머물러 긴 고통을 달게 받으랴(보조국사 지눌의 수심결).’
가슴 속 답답함, 타는 것과 같은 분노는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잠도 청해보고, 달려보고, 차도 마시며 달래봤지만 일시적인 효과뿐이었다. 일터로 돌아오면 고통은 다시 시작됐다. 내 마음은 불타는 집이었다. 어디를 가든 화는 사라지 않고 나를 좀 먹고 있었다.
불타는 고통 속 구원의 동아줄은 예상치 않은 곳에서 나타났다. ‘이뭣고’ 화두였다. 고통스러운 이것은 무언가란 화두 일념에 몰입한지 몇분이 흐르자, 생각과 생각 사이에 틈이 발생했다. 그러자 독극물 같은 지독한 사념(思念)이 가스가 빠져나가듯이 나갔다. 그 순간 찬비가 내리듯 ‘불타는 집’에 불이 꺼졌다.
◇불타는 집 속 국민들…진우스님의 약(藥) 선명상
마음의 불이 꺼지는 놀라운 체험은 대한불교조계종이 31일 서울 은평구 진관사에서 일간지 기자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선(禪)명상 체험 프로그램을 하다가 일어났다.
행사는 본격적인 프로그램 배포에 앞서 의견 수렴 등을 위해 이뤄졌다. 조계종은 내달부터 8차례에 걸쳐 명상 지도자를 교육하고 9월 28일 서울에서 열리는 국제선명상대회 때 프로그램을 정식으로 공표할 계획이다. 이날 프로그램은 선명상에 대한 조계종 총무원장 진우스님의 법문, 중앙승가대 교수 금강스님의 ‘화두선’ 실습, 홍대선원장 준한스님의 ‘걷기 명상’, 동국대 WISE 아동청소년교육학과 부교수 혜주스님의 ‘자비명상’ 등으로 구성됐다.
선명상은 진우스님의 역점 사업이다. 갈수록 심해지는 저출산과 높은 자살률, 성별·지역 갈등 등 진우스님이 보기에 대한민국은 삼계화택(三界火宅)이었다. 불타는 집 속 고통받는 국민들을 위한 스님이 내놓은 처방은 명상과 불교의 선(禪)을 접목한 선명상이었다. ‘약’인 선명상을 국민들이 널리 이용하도록 만드는 것이 조계종의 사회적 책무라고 본 것이다.
진우스님은 선명상이 일반 명상과 확연하게 구별된다고 정의했다. 스님은 “일반 명상은 불안하거나 불편하면 그때그때 명상을 해서 증상을 가라앉히는 진통제에 가깝다. 그에 비해 선(禪)은 깨달음을 추구한다. 깨달으면 모든 것이 명상이 된다. 선을 모르면 명상의 진가조차 모른다”며 “비유하자면 스스로 면역력을 만들어 극복하는 게 선명상”이라고 설명했다.
금강스님은 화두선을 지도하면서 “사람들은 쉰다고 하지만 마음은 정작 쉬지 못한다. 감정과 사념의 오물을 매일 넣고 산다. 명상을 통해 일시적으로 편안하면 오물이 가라앉아 없어 보인다. 그러나 누가 건드리면 밑에 가라앉은 오물이 터져 나온다. 모든 오물을 완전히 연소시키는 게 선명상”이라고 강조했다.
진우스님은 선명상이 사회적 영향력이 큰 사람들이 함께하면 좋다고 봤다. 그는 불자 국회의원 또는 명상에 관심 있는 이들을 모아서 1∼2개월에 한 번씩 직접 명상을 지도하겠다고 밝혔다.
◇ 무심히 지나친 것들…내 몸 치유하는 자비
“지금부터 올라가는 동안 회사와 인연 다 끊으시고, 데드라인(마감시간) 걱정, 글 쓰는 걱정, 집안일, 다 끊으시고 온전히 걷는 것 자체만 하세요.”
준한스님은 걷는 이 순간에만 집중하는 것이 ‘걷기 명상’의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준한스님을 선두로 2미터 정도 간격으로 진관사 일대 산책길을 조용히 걷자 그냥 지나쳤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듣지 못하고 지나쳤던 개울물 소리, 새소리가 들려왔다. 묵언 속 짧은 시간이었지만 근심을 덜어놓고 안정을 취할 수 있었다.
이어진 혜주스님의 ‘자비 명상’은 인간이 본래 지니고 있는 사랑과 친절의 마음에 집중하는 게 핵심이었다. 티베트불교의 보리심 훈련법 등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이 명상법은 심리 치료에 탁월한 효과를 인정받고 있다.
혜주스님은 편안한 자세로 앉아 눈을 감고 이완한 뒤 타인의 친절을 경험했던 순간을 회상하라고 지도했다. 아울러 따뜻함을 받았던 순간을 떠올리고 다시 내가 줄 수 있는 사랑과 친절에 집중하라고 안내했다.
사랑과 돌봄의 체험을 상기시키는 것은 그것만으로도 마음과 몸을 쉬게 하는 효과가 있었다. 화두선으로 가라앉았던 마음에 사랑과 감사가 더해지자 포근한 쉼으로 이어졌다.
명상을 마친 뒤 참가자들의 반응은 다양했다. 누군가는 환히로운 체험을 하기도 했고 한 참가자가 ‘자비를 베풀기 어렵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고백했고, 마음속 심연을 보고 ‘내가 이렇게 상처받았구나’란 자각을 하는 사람도 나왔다.
이에 혜주스님은 “자기 자비와 타인 자비는 같이 갈 필요가 있다. (그러나) 자비를 못 주겠다는 마음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다. 왜냐면 내가 우선 힘들기 때문”이라고 위로했다. 스님은 매일 적은 시간을 투자해서라도 선명상을 꾸준히 할 것을 권하며 “나의 행복은 관계 속의 타인에게도 행복을 전하는 일”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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