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제22대 국회가 개원했다. 21대 국회가 역대 최악의 식물 국회로 낙인 찍힌 만큼 민생 법안 처리를 서둘러야 하지만, 이번 국회도 쉽지 않은 모습이다.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이 17개의 주요 상임위원장 자리를 두고 다투느라 민생은 뒷전이기 때문이다. 대체 상임위원장 자리가 뭐길래 여야가 이렇게 욕심내는 걸까.
상임위원장은 국회 상임위원회를 이끄는 위원장으로, 상임위는 법률·금융·재정 등 특정 분야에 전문적인 지식을 가진 국회의원들로 구성된 집단이다. 이 상임위에선 법안을 만들고, 토론하고 다듬는 역할과 소관 정부 부처 예·결산안의 예비심사 등을 담당한다.
상임위는 보통 소관 부처별 17개로 나뉜다. △국회운영위 △법제사법위 △정무위 △기획재정위 △교육위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 △외교통일위 △국방위 △행정안전위 △문화체육관광위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 △보건복지위 △환경노동위 △국토교통위 △정보위 △여성가족위 등이 있다. 여기에 ‘상설특별위원회’로 예산결산특별위원회가 추가된다.
십 수 개의 상임위 중에서도 ‘요직’ 또는 ‘핵심’이라 할 수 있는 곳은 ‘법사위’가 1순위로 꼽힌다. 22대 국회에서 여야가 서로 ‘가져가겠다’며 다투는 상임위 중 하나도 이곳이다. 법사위는 각 상임위에서 발의되고 1차적으로 다듬어진 법안을 심사하는 ‘수문장’ 역할을 한다. 법사위에서 법안 심사를 하지 않거나 통과를 허락하지 않으면 본회의 회부가 거의 불가능하다. 이같은 막강한 권력을 가진 곳이기에 ‘상원’으로 불리기도 한다.
여야가 법사위 자리를 탐내는 이유도 이같은 법안 통과권에 있다. 민주당은 22대 국회에서도 ‘채 상병 특검법’을 통과시키겠단 입장인데, 여당 입장에선 법사위원장 자리를 사수해야 조금이라도 통과 시점을 늦출 수 있다.
민주당은 채 상병 특검법을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에 올려서라도 통과시키겠단 입장이다. 패스트트랙이라고 불리기에 굉장히 빠른 시일 내에 처리할 것 같지만 실상은 조금 다르다. 국회법상 패스트트랙 법안은 실제 처리까지 최장 330일(상임위 180일 이내→법사위 90일 이내→본회의 60일 이내)이 걸린다. 늦어질 경우 내년 초에나 채 상병 특검법 표결이 이뤄질 수 있단 얘기다.
반면 민주당이 법사위원장을 확보하면 법사위 심사 기간이 대폭 단축된다. 야당 단독으로 법사위를 개의해 채 상병 특검법만 ‘원 포인트’로 처리할 수 있다. 범야권 의석수가 192석이고, 국회의장도 민주당 출신이기에 법사위원장만 차지하면 모든 법안은 민주당 주도대로 ‘일사천리’ 통과될 수 있다.
여야가 확보하려는 또 다른 상임위는 운영위다. 운영위는 대통령비서실과 국가안보실, 대통령경호처 등을 담당한다. 민주당은 대통령실을 둘러싼 의혹 제기와 질의를 이어가기 위해선 운영위원장 확보가 필수라는 입장이다. 반면 국민의힘은 운영위원장은 관례상 여당 몫이었다며 반대하고 있다.
국토위원장 자리도 여야가 치열하게 맞붙고 있는 상임위다. 통상 지하철이나 교통, 부동산 등 지역구 숙원 사업을 해결할 수 있는 위원회이기에 의원들 사이에선 ‘알짜배기’로 불리는 상임위다. 여기에 민주당은 윤석열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 일가가 연루된 ‘양평고속도로 의혹’을 파헤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상임위원 선출은 보통 국회의장단 선출 이후 이틀 내에 국회의장에게 요청해야 한다. 다음달 5일 열리는 22대 국회 첫 본회의에서 의장단 선출이 이뤄지기 때문에, 6월 7일까지는 협상을 마치고 원 구성을 끝내야 하는 셈이다.
여야는 일단 7일까지 원구성을 마무리 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이견이 계속될 경우 결국 표결을 통해 상임위를 배분할 방침이다. 이렇게 되면 21대 국회 전반기와 마찬가지로 민주당이 18개 상임위원장 전체를 독식할 수도 있다.
갈등이 계속되면 국회 개원식도 늦어질 가능성이 높다. 21대 전반기 국회는 상임위 다툼으로 원 구성이 늦어졌고, 결국 국회 임기 시작 48일이 지난 2020년 7월 16일에야 뒤늦은 개원식을 치렀다. 이는 1987년 개헌 이후 최장 지각 기록이다. 최근 국회 여야 대치가 더욱 첨예해지고 있는 만큼, 어쩌면 22대 국회가 지각 기록을 새로 갈아치울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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