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움증권의 2024년은 표면상 평온하다. 주주환원정책에 힘입어 키움증권 주가는 작년 연말 대비 올해 5월 28일 종가기준 28.6% 상승을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김익래 전 회장이 회장직을 사퇴하기까지 했던 당시의 문제 자체가 해결된 건 아니라는 우려가 높다. 라덕연씨 사태와 영풍제지 미수금 논란 등 굵직한 사건이 한 해 두 번이나 터졌고, 이들 사태는 내부통제와 소비자보호 미흡 논란을 빚으면서 증권사의 기본인 고객 신뢰 자체에 의문을 남겼다. 김 전 회장의 605억원 사회환원 약속 즉 재단설립은 아직 오리무중이다. 김 전 회장이 지난 5월 사회공헌 약속을 내놓은지 이제 1년을 맞이한 가운데, 건강한 증권시장질서를 세운다는 점에서 키움사태의 교훈을 되짚어 본다. <편집자주>
【투데이신문 임혜현 기자】 이른바 키움증권 사태 이후 1년이 흘렀지만, 정작 김익래 전 회장의 605억원 사회환원 추진에는 브레이크가 걸려 있다. 이를 두고 시민사회계에서 ‘즉시 이행’을 촉구하는 비판이 나오는 것은 물론(기사 ①김익래 사과의 ‘진정성’ 논란…사회환원 올스톱에 비판 여론 참조), 증권가 등에서도 이행 시기를 저울질하는 행보에 대해 다양한 추측을 내놓고 있다.
사회환원 굳이 서두를 필요 없나…수사 이후 선택 때문에 각종 억측 난무 상황 초래
처음에는 키움증권이 빠른 이행 행보를 보일 것으로 전망됐지만, 이 같은 사회환원이 수사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묘한 주장이 대두되면서, 상황은 사회환원 작업의 올스톱 구도로 흐르고 있다.
초기에 재단 설립에 속도가 붙는 듯 했지만 이후 1년이 흐른 금년 5월까지 이렇다 할 결과물을 전혀 내지 못한 상황은 왜 조성되고 있는가? 이제는 수사 지연을 이유로 재단설립을 미루고 있는 구도다. 초반에 키움증권 측은 공익법인의 설립·운영에 적격한 이사 및 감사 인사를 고려한다는 것이 기정사실로 시장에 받아들여졌다. 교육부를 관리감독 주무부처로 하는 재단, 즉 장학재단을 설립하는 구상이 확실시됐던 것. 하지만 현재는 “수사에 영향을 미칠 수 있으므로, 수사가 종결된 뒤 진행하겠다”고 키움증권 측은 말을 아끼고 있다.
물론 이를 좋게 보면, 수사 전에 모종의 제스처를 취한다는 것 자체가 ‘선처’를 구하는 떳떳하지 못한 행보로 오해를 살 수 있으므로, 이를 피하겠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즉, ‘일단 잘못을 전제로 인정하고’ 이행을 하는 대신, 떳떳하게 김 전 회장에 법적 책임이 없다는 수사 결과를 받아들고 ‘별도로’ 사회환원을 하겠다는 입장인 셈이다.
하지만 문제는 법적인 책임 문제 외에도 도의적 책임이 큰 상황에서 수사 결과와 이를 꼭 연관짓는 게 정답이냐는 것. 증권가 일각에선 김 전 회장의 주식 매도 과정이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 하더라도 주가폭락 전 대량 매도 자체가 우연으로 보기엔 어렵다는 의구심을 갖는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그런 측면에 기반해 “빠른 약속 이행을 하면 가장 좋을 것”이라고 평가하면서도 “현재 재단 설립을 하지 않는 것에도 내부적으로 여러 이유가 있을 수도 있다”고 부연했다.
한편 “수사에 영향을 미칠까 우려돼 사회환원을 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1,2,3심까지 이어지는) 재판 과정 등 절차가 아직 많이 남아있기 때문에 이를 언제 사용할지, 나중에 사용할지 생각이 달라질 수도 있다. 그래서 이행을 서두르지 않고 (아껴두고) 있는 것으로 볼 여지가 있다”는 의견은 유의미하다.
또다른 투자업계 관계자는 “키움증권에서 굳이 수사 결과가 나쁠 때 대비해서 재판 과정 등에 이를 활용하고자 ‘아끼는 카드’로 사회환원을 미루는 것 같지는 않다”고 선을 그으면서도 “이미 지난 5월 사회환원 선언으로 이미지는 얻었으므로, 서두를 이유가 없는 건 사실”이라고 평가했다. “최대한 조용히 일을 처리하는 게 좋다는 판단에서 조용히 실무적인 차원에서 시기를 택할 것”이라며 빠른 이행 노력은 사실상 가능성이나 실익이 크지 않다는 시각이다.
키움증권이나 김 전 회장은 수사 이후 사회환원으로 방향을 튼 것으로 보이는데, 관련 상황이 길어질 가능성에 대해 어떻게 판단하고 있을까? 사실상 기약하기 어려운 장기간까지도 염두에 두는 것이라는 해석이 제기된다.
블랙벨트 선임할 때부터 빠른 사회환원 논의는 뒷전 밀렸나
라덕연씨 관련 재판이 워낙 복잡해 이와의 연관성을 살펴야 하는 김 전 회장 수사 및 재판 또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실제로 김 전 회장도 공방전을 마다할 의사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그는 검찰에 사건이 정식 입건되기 전부터 거물급 전관(前官) 변호사를 선임해 이 같은 분석에 힘을 싣는다.
A 변호사는 간부 출신인 것은 물론, 증권범죄 분야 블랙벨트 이력이 있어 관심을 모았다. 블랙벨트와 블루벨트는 특정 영역에서의 수사 실적 등을 살펴 대검찰청 심사위원회에서 선정하는 인증이다. 여러 분야에서 전문가를 인증해 주는데, 검찰에서의 승승장구에만 도움이 되는 건 아니다. 이를 받은 후 검찰을 떠나 변호사 개업을 하는 경우 수사 전문성을 인정받아 몸값이 크게 오르는 것으로 회자되는 것. 시각에 따라서는, 특정 영역의 전문가가 과거 경력을 살려 범죄자 방어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행태는 사법정의상 문제가 있다는 우려도 있다.
김 전 회장의 경우, 이 같은 블랙벨트 전문가 출신 발탁이 필요할 수도 있다. SG증권 창구에서 8개 종목의 매도 물량이 대거 출회돼 투자자들의 피해가 컸던 국면에서, 김 전 회장은 오히려 이익을 봤다는 지적을 받는 인물이다. 주가가 급락하기 전 다우데이터 주식을 대거 처분했다는 의심을 사고 있고, 친형에게 정보를 넘겨 형도 주식을 처분했다는 의혹도 있다. 그래서 라덕연씨는 오히려 주가 폭락 자체는 자기가 빚은 게 아니라 폭락 책임이 김 전 회장의 ‘트리거 행위(방아쇠 당기기)’에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수사 결과 상관없이 약속은 이행하는 게 노블레스 오블리제
하지만 치열한 공방을 불사하는 수사 및 재판 전략을 택한다면 기업 이미지상으로는 ‘소탐대실’이 될 가능성이 없지 않다. 이런 복잡미묘한 상황이기에, 사회환원 이행이 수사에 영향을 미칠 수 있으므로 수사 결과를 본 뒤에 이행하겠다는 키움증권 측 태도에 찬성하지 않는 이들도 적지 않다. 한성대학교 김상봉 경제학과 교수는 “법리는 법리, 도의는 도의지만 (키움사태의 경우) 도의적인 문제만이라고 볼 건 아닌 것 같다”고 판단했다. 아울러 “또 사회환원의 이행 문제가 수사나 재판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본다”면서 “제가 오너 입장이라면, 이미 언급한 사회환원이라면 결과와 상관없이 먼저 이행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언급했다.
애초부터 사과의 진정성 자체가 있었냐고까지 의심받는 것은 김 전 회장으로서는 억울한 일일 것이다. 다만 그 진정성을 입증하는 것까지도 결국은 김 전 회장이 결자해지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