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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준위 폐기물 처리에 있어 한국과 프랑스의 가장 큰 차이점을 꼽자면 특별법의 유무입니다. 특별법은 사용후핵연료를 어디에 저장하고 언제부터 처분 시설을 설치할 것인지 등 고준위 폐기물 처분의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핵심 요소입니다.”
프랑스 방사성폐기물 관리 전담 기관인 ‘안드라’의 파스칼 레바드 박사는 29일 한국방사성폐기물학회의 ‘2024 춘계 학술 발표회’에서 ‘고준위 특별법’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고준위 폐기물 처리 선도국인 프랑스는 폐기물 관리를 위해 1991년부터 세 번에 걸쳐 입법이 이뤄지며 처분장 설치가 속도를 내고 있지만 한국은 관련 법이 없어 교착상태에 빠져 있다.
레바드 박사는 “한국과 프랑스 정부 모두 고준위 폐기물 처리를 위해 그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있다”면서도 특별법이 존재하지 않는 한국의 상황에 아쉬움을 표했다. 그는 “프랑스는 고준위 폐기를 위한 처분 절차를 마련하는 데 30년 이상이 걸렸고 이제는 미래에 지어질 원전과 소형모듈원전(SMR)에 대해서도 정부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프랑스 정부는 2027년 뷔르 지역에 고준위 방폐장을 건설한다는 계획이다. 핀란드·스웨덴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지어지는 방폐장이다.
한국의 상황은 프랑스와 정반대다. 전날 21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에서 ‘고준위 방폐물 관리 특별법’ 제정안이 안건으로 상정되지 못하면서 자동 폐기됐기 때문이다. 특별법은 원전 가동으로 인해 발생하는 사용후핵연료의 중간 저장 시설과 영구 처분장을 만들기 위한 근거법이다. 1978년 고리 1호기가 상업운전에 들어간 후 46년간 25기의 원전이 가동됐는데 아직 영구 처리 시설은 마련되지 않았다.
이날 현장 참여자들의 질문에서는 특별법 폐기에 대한 아쉬움이 묻어나왔다. 현장에서는 “고준위 폐기물 처리에 있어 한국과 프랑스의 차이점이 무엇인가” “한국 정치인들이 어떻게 하면 고준위 폐기물 처리에 관심을 가지게 될지 조언해달라” 등의 질의가 이어졌다. 레바드 박사는 “프랑스의 경험에 비춰보면 세 번의 법안이 입법될 때마다 한 단계 한 단계씩 절차를 밟아나간 것이 효과적이었다”며 “한 번의 입법으로 전체 처분 과정을 모두 정하려 하기보다 먼저 프로그램을 세팅하고 연구개발(R&D)을 하는 등 매 단계를 점진적으로 밟아나갈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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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각국의 발표자들은 근거법뿐 아니라 이해관계자들과의 충분한 소통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지역 주민과 미래 세대에게 정확한 정보를 충분히 제공해야 의사 결정과 의견 수렴이 보다 원활하게 이뤄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일본 핵폐기물관리기구(NUMO·누모)의 과학기술부에서 근무하고 있는 겐이치 가쿠 씨는 발표에서 “일본 정부는 2017년 과학적 연구 정보를 담은 전국 지도를 공개했고 일본 정부와 누모는 이해관계자들과 집중적인 대화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누모는 2020년 11월부터 2년간 홋카이도의 기초지자체인 슷쓰정과 가모에나이촌에서 고준위 폐기물 처분장 1단계 후보지 조사인 문헌 조사를 진행하며 처분장 설치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일본은 올해 4월까지 슷쓰정에서 17회, 가모에나이촌에서 18회에 걸쳐 대화의 장을 마련했다. 가쿠 씨는 “사용후핵연료를 땅에 묻는 지층 처분의 개요와 안전성, 고준위 폐기물 처리 방식 등에 대한 논의가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미국도 전담 기관 설치 등의 내용을 담은 근거법에 기반해 2022년 방폐장 입지 조사 실시를 발표했다. 핵폐기물 저장·운송·처리 분야의 R&D를 이끌고 있는 실비아 살츠스타인 샌디아국립연구소 수석관리자는 “샌디아연구소는 동의에 기반해 소통과 지원 등 부지 선정 작업을 주도하고 있다”며 “현재는 지층 깊은 곳에 고준위 폐기물을 처분하는 시추공 저장소 개념을 개발하고 미국 에너지부의 실증 연구를 이끌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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