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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돌아보기] 육상양식 ‘김’을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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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훈 논설위원
이석훈 논설위원

조미김은 기름을 발라 굽고 소금이 첨가되어 있어 반찬이 애매할 때 간편하게 먹기 좋다. 저렴한 데다 부피마저 작아 보관하기가 좋아서 자취생활자나 단체식당이 선호하는 반찬일 정도로 흔히 접할 수 있는 식품이지만, 1960~70년대만 해도 귀한 대접을 받는 식품이었다.

당시에도 김 양식은 되었지만, 생산량이 적을뿐더러 대부분이 일본으로 수출되었기에 일반 가정에서는 손님 접대용으로, 장이 서는 날 큰맘 먹고 사서 나눠주시던 1~2장을 아껴먹은 생김으로, 소풍 갈 때 반드시 챙겨야 하는 김밥으로 맛볼 수 있었다. 그런 김이 주요한 산업 효자상품이 되었다.

지난해 김 수출이 1조 원을 돌파했다. 조미김과 건조김 등 김 수출액은 전년보다 22.1% 늘어난 7억9000만 달러(약 1조332억 원)였고, 이 금액은 2023년도 수산물 총수출액의 26.4%를 차지하며 단일 항목으로 참치를 넘어선 최다 수출액이다. 2010년 1억 달러 돌파(1억1000만 달러) 후 13년 만에 7배가 넘는 놀라운 성장세를 이룬 것이다. 자원이 부족한 우리나라에서 순수국산 자원을 활용하여 1조 원의 수출을 달성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식품업계의 반도체라 불릴 만한 성과다.

과거에는 김이 우리나라와 일본 등에서 주로 반찬으로 소비되었지만, 최근 해외에서 저칼로리 건강 스낵으로 인기를 끌면서 세계 김 시장이 급성장하고 있다. 김을 밥반찬으로 먹는 우리나라의 조미김은 짠맛이 강한 게 특징이다. 이와 달리 해외에선 김을 밥반찬이 아닌 웰빙 간식으로 소비한다. 내수용과 달리 수출용은 김을 스낵으로 먹는 소비 형태에 맞춰 현지화했다.

즉, 반찬용 김보다 30% 정도의 염도를 줄이고, 외국인들의 선호도가 낮은 참기름 대신 유기농 기름을 사용하여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한국산 김은 일반 김, 김부각, 김 튀김 등 다양한 종류의 간식으로 가공돼 판매 중이다. 외국인 운동선수나 유명 연예인과 그 가족이 김을 먹는 사진은 이제 화제가 되지도 않을 정도로 일상적인 일이 되었다.

더욱 고무적인 것은 수출 대상국이 2010년 64개국에서 2023년 122개국으로 거의 2배 확대되었다는 점이다. 국가별로 보면 미국 수출이 1억6900만 달러로 가장 많았고, 일본(1억4400만 달러), 중국(9700만 달러), 태국(6600만 달러), 러시아(5700만 달러) 등이 뒤를 이었다. 2010년 당시 주요 수출 5개국의 수출액이 83.2%를 차지했으나 2023년엔 67.5%에 머물러 그만큼 수출이 여러 국가로 다변화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드라마, 영화 등 한류 문화 컨텐츠의 인기에 힘입어 한국 음식 등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도 김 수출 증가의 한 가지 요인으로 생각된다. 넷플릭스를 통해 세계 80여 국가에서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드라마의 주인공이 즐기던 김밥도 인기에 기여했을 것이다. 더불어 지난해 미국에선 냉동 김밥 열풍이 불면서 약 250톤의 물량이 한 달 만에 매진되기도 했다.

외국에서는 조미김을 밥 반찬이 아닌 간식이나 안주로 먹는다. / 미국 김 스낵 판매 현지 업체 시스낵스(seasnax) 제공
외국에서는 조미김을 밥 반찬이 아닌 간식이나 안주로 먹는다. / 미국 김 스낵 판매 현지 업체 시스낵스(seasnax) 제공

21세기 이전만 해도 서양에서는 김을 ‘검은 종이(black paper)’라 부르며 먹길 꺼렸지만, 건강식품에 더하여 친환경 먹거리로 인식되면서 찾는 외국인들이 크게 늘었다. 한국산 김은 맛이 좋은 데다 친환경 제품으로 인정받은 점이 주효했다. 프랑스 일간지 르몽드는 2019년 ‘지구를 위해 해조류를 조리하는 한국’이라는 기사를 통해 해조류 섭취가 이산화탄소 감소로 이어져 환경을 지키는 데 도움이 된다고 보도했다. 김을 재배하는 동안 다량의 이산화탄소를 흡수한다는 사실에 주목한 것이다.

김을 대량으로 상품화해 파는 나라는 한국, 중국, 일본 3개국뿐이다. 2022년도 김 생산량은 중국(222만 톤), 한국(53만6000 톤), 일본(28만9000 톤) 순인데, 수출액 점유율은 한국(73.4%), 중국(24.2%), 일본(2.0%) 기타(0.4%) 순이다. 중국의 경우 절대 생산량은 많지만, 아직 가공기술이나 제품 개발이 늦어 외국에선 인기가 없고, 타국에 있는 자국민 대상 수출이 대부분이다. 일본은 계획 생산을 통해 생산량을 조절하고 있어 국내 수요도 충당하기 바쁘다. 대신 품질관리를 통해 가격을 높게 책정하는 전략을 쓰고 있다.

이에 비해 한국은 높은 생산량과 더불어 김 두께를 조절할 수 있는 기술이 탁월하다. 스시용 김을 주로 제작하는 일본과 중국은 주로 김 1속(100장)에 280g 내외의 두꺼운 김을 제작한다. 한국은 200g~300g까지 10g 단위로 김의 두께를 조절할 수 있는 기술로 다양한 용도의 김을 생산할 수 있는 강점이 있어 수출 확대에 기여하고 있다.

그런데 김이 열풍이 아니라 세계인의 일상이 되어가면서 아이러니하게 한국에는 김값 상승이라는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우리 밥상의 대표 반찬인 김 가격이 폭등하고 있다. 1년 전 마른 김 1속의 도매가격이 5000원을 밑돌았다. 그러나 올해 들어 김 가격이 폭등해서 이미 1만 원에 근접했고, 이런 추세가 계속되어 연말에는 1만 원을 훌쩍 넘을 것으로 예측되었다.

지난해 김 수출액이 처음으로 1조 원을 넘어서면서 세계적으로 김 수요가 급증한 가운데 이상기온 현상이 맞물려 김 가격 오름세가 이어지고 있다. ‘24년산(’23.10.~‘24.2) 김 생산량은 약 1억 속으로 전년 동기간 대비 14.3% 증가했으나, 올해 2월까지 누적 수출량이 전년 동기간 대비 15.3% 증가하는 등 수출 수요가 도매가격을 상승시켰다고 판단하고 있다. 업계는 원초 생산량 감소보단 김 수출 증가가 가격 인상의 주원인으로 작용했다고 보고 있다. 실제 2022년 기준 전 세계 김 생산량의 99%가 한국, 중국, 일본에 집중됐는데 세계적 수요를 따라가기 어려울뿐더러 최근 일본과 중국의 수확 부진으로 한국산 수요가 더 더욱 높아진 상황을 맞았다.

일본 수확 부진의 원인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마저 김 양식장을 강타한 네 가지 악재에 기인한다. 즉, 수온 상승(김 성장 정체로 수확량 감소), 황백화 현상(김이 영양실조에 빠져 누렇게 변하는 현상) 심화, 강한 폭풍우로 인한 시설물 파괴와 김을 뜯어 먹는 물고기의 피해가 겹쳐 최악의 흉작을 초래했다. 한때 1억2000만 속까지 생산되던 일본의 김 생산량이 2022년엔 약 4800만 속으로 51년 만에 최저였다. 물량 부족으로 일본의 김 가격이 폭등하자 수입을 늘렸다. 2021년 일본으로 수출한 김은 5000톤이었는데, 2023년엔 약 7000톤으로 40%나 급증했다. 그 여파로 우리 김 가격도 이어서 폭등했다. 김 가격 폭등의 핵심에는 지구 온난화로 인한 수온 상승이 있다. 이웃 나라가 겪고 있는 기후변화 충격이 우리 밥상에 충격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일본에서 일어난 것과 같은 현상이 우리 바다에서도 발생하고 있다. 지난겨울 비와 폭설로 일조량이 사상 최저 수준으로 감소해 갯병이 발병하기도 했다. 2년 전엔 해남의 김 양식장을 덮친 황백화 현상으로, 2019년엔 태풍 미탁으로 양식장이 파괴되기도 했고, 김의 성장을 방해하는 감태 같은 다른 해조류의 습격도 갈수록 큰 위협이 되고 있다. 올해는 그나마 잘 넘겼지만, 내년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 해마다 이어지고 있다. 김 양식은 수온에 굉장히 민감한데, 고수온 현상이 지속되면 그해 수확량이 급강한다. 남해안에서는 보통 10월에 채묘(採苗, 포자를 발 등에 부착하는 것)를 하고, 11월부터 다음 해 4월경까지 7번 정도 김을 수확하는데, 수온이 높으면 김이 자라지 않아 수확 횟수가 줄고, 수확량도 감소하게 된다.

지난 55년간 우리 바다의 수온은 1.36도 상승해 전 세계 평균보다 2배나 가파르다. 이대로 두면 우리나라 김의 미래는 없다. 높아진 수온에도 자랄 수 있는 품종 개발을 하거나 해수의 영향을 받지 않고 김 양식을 할 수 있는 기술 개발이 필요한 시기이다.

다른 이유이기는 하지만 우리나라 김 생산에 심각한 위기가 있었던 적이 있다. 광복 직후부터 김 수출의 70∼80%를 차지하던 일본이 1978년부터 자국 어민 보호를 명목으로 한국산 김 수입을 막았기 때문이다. 최대 판로가 사라진 김 양식 어민들은 어촌을 떠나거나 미역으로 눈을 돌렸다.

돌파구는 기술 혁신에서 나왔다. 1980년대 초반 부유식 양식법이 개발되며 대량생산의 길을 열었다. 부유식이란 바닷가에 하얀 스티로폼 등을 띄워놓고 그 아래로 그물을 걸어 김을 기르는 제조 방법이다. 깊은 바다에서도 김을 기를 수 있어 오늘날에도 김 양식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방식이다. 신품종 개발도 성공했다. 1990년대 초반 돌김 포자화에 성공하며 일본에 없는 독자적 품종을 가지게 된 것이다. 맛과 향이 좋은 돌김(곱창김)은 한국 김 산업에서 반전의 계기가 됐다. 현재도 한국 김 생산의 30%가 돌김이다.

기후변화로 김 생산량이 감소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김 육상양식의 가능성에 도전하는 국내 식품업체가 있다. 외부 영향을 많이 받는 바다가 아닌 육상에서 김을 생산한다는 것이다. 바닷물을 정화해 일정한 수온을 유지하고 빛 영양분 등 생육에 필요한 최적의 조건을 조성해 주기 때문에 1년 내내 고품질의 김을 안정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또한 특정 영양분을 수조에 추가하여 해당 성분을 함유한 기능성 김도 만들 수 있다. 아직은 설비투자비가 많이 들고, 에너지 소모도 높아 경제성이 떨어지는 한계가 있어 당장의 민간 이양은 이르지만, 기후변화에 대응할 육상양식 기술은 이미 확보되었다. 언제쯤 육상에서 양식한 김이 우리 식탁에 오를 수 있을지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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