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이끄는 한은이 확 젊어졌다. 이 총재는 올 초 주요 부서장에 70년대생을 보임한 데 이어 최근 이사급 인사에 70년대생인 부총재보 2명을 전진 배치하면서 임원들까지 세대교체를 단행했다.
단순히 젊어지기만 한 건 아니다. 키워드는 ‘유능한 70년대생’이다. 전문성을 갖춘 인재라면 통상적으로 임하던 한은의 인사 공식을 과감하게 깨부수고 발탁했다. 이번 인사로 임기 후반기에 돌입한 이 총재가 본격적으로 자신의 색깔을 드러낼 수 있는 기반을 마무리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1970년생인 박종우 신임 한국은행 통화정책·시장 담당 부총재보가 28일 취임하면서 한은 집행간부는 모두 이 총재가 임명한 사람으로 채워졌다. 이날 취임한 박 부총재보는 한은 내에서 통화정책 분야의 최고 전문가로 꼽힌다. 1996년 입행해 경력의 대부분을 통화정책 부서에서 보냈다. 2013년 통화정책국에서 차장으로 승진해 정책총괄팀과 정책분석팀을 경험했고 2022년 부국장까지 올랐다가 1년 만에 금융시장국장으로 승진했다.
그가 통화정책 전문가라는 데에서는 이견이 없지만 통화정책국장 경험이 없는 1970년생이란 점에서 파격 인사라는 말이 나온다. 이상형 부총재보를 비롯한 다수의 통화정책 담당 부총재보는 통화정책국장을 거쳤지만 박 부총재보는 금융시장국장에서 부총재보에 바로 임명됐기 때문이다.
한은은 “한국은행 통화신용정책과 시장운영 전반을 아우르는 경험과 지식이 풍부하다는 점에서 대내외 경제 여건의 불확실성 하에서 총재를 충실히 보좌하면서 통화정책의 유효성을 높이는 데 크게 일조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한은 내부에선 이 총재의 세대교체 인사 기조와 무관하지 않다고 보고 있다. 민좌홍 부총재보(국제금융·협력 담당)의 후임으로 권민수 한은 외자운용원장이 발탁된 것도 일맥상통한다.
지난 17일부터 업무를 시작한 1970년생 권 부총재보는 1995년 한은에 입행해 외자운용원과 국제국에서 근무하며 전문성을 인정받은 외환·국제금융 전문가다. 외자운용원장으로선 처음으로 부총재보에 올랐다. 이전 한은 인사에선 대부분 국제국장이나 국제협력국장이 승진하는 자리였던 만큼 한은에서 주목받는 인사였다.
이로써 한은 이사급(부총재보) 인사 6명 중 절반이 70년대생으로 채워졌다. 지난해 이 총재가 직접 영입한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 출신 이재원 한은 경제연구원장(수석이코노미스트)은 1975년생이다. 임명 당시 임원급 대우를 받는 특급 보직에 40대 최연소 임원이 임명되면서 연공서열이 확고한 보수적인 한은 문화에 적지 않은 충격을 안겼다.
이 총재는 취임 당시부터 한은을 연공서열 대신 능력 위주의 젊은 조직으로 거듭나기 위해 변화를 추진하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올 초 인사 키워드도 단연 ‘유능한 70년대생’이었다. 한은의 주요 부서로 꼽히는 조사국장과 통화정책국장은 70년대 초반생으로 꾸렸다.
조사국장에는 1970년생인 이지호 국장을, 통화정책국장에는 1972년생 최창호 국장을, 금융안정국장엔 1970년생 장정수 국장을 앉혔다. 최 국장의 경우 김웅 부총재보가 승진하면서 통화정책국장으로 보직을 이동한 셈인데 당시 1급으로 승진한 지 2개월이 채 되지 않은 상황이라 파격으로 여겨졌다. 한은의 핵심 부서로 꼽히는 조사국과 통화정책국장을 모두 지낸 것은 2005년 이주열 전 총재(당시 조사국장) 이후 처음이다.
한편 김종화·이수형 금융통화위원이 새로 들어오면서 금통위원들도 모두 이 총재 임기 이후 사람들로 바뀌었다.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로 일하다 지난달 21일 취임한 이 위원은 1975년생으로 첫 70년대생 금통위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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