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공간에서 여덟 명이 계속 있다보니 진짜 몰입을 할 수 밖에 없더라. 그런데 게임 참가자지만 관객처럼 인물들의 괴로움을 보고 즐거워하는 캐릭터를 유지한다는 게 쉽지 않더라” 배우 천우희가 넷플릭스 ‘더 에이트 쇼’ 속 파격면모 소회를 이같이 밝혔다.
최근 서울 삼청동 한 카페에서 넷플릭스 시리즈 ‘더 에이트 쇼’에서 열연한 천우희와 만났다.
‘더 에이트 쇼’는 네이버 웹툰 머니게임·파이게임(작가 배진수)을 원작으로 한 한재림 감독의 첫 드라마 연출작으로, 8명의 인물이 8층으로 나뉜 비밀스런 공간에 갇혀 ‘시간이 쌓이면 돈을 버는’ 달콤하지만 위험한 쇼에 참가해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는다.
천우희는 극 중 ‘8층’ 송세라 역을 맡아 활약했다. 자신을 제외한 타인의 고통에서 쾌감을 느끼는 소시오패스 급 광기연기와 함께, 플라잉요가와 액션페인팅 등 최상위층의 혜택에서 비롯된 파격적인 면모들을 한층 더 매력적으로 묘사해 이목을 집중시켰다.
특히 류준열(3층), 박정민(7층), 박해준(6층), 문정희(5층), 이열음(4층), 이주영(2층), 배성우(1층) 등 배우들이 연기하는 고통어린 몸부림과는 다른 괴랄한 수준의 표정연기는 사회불평등과 인간존중 등의 생각들을 떠오르게 하며, 작품 몰입감을 이끄는 파격시도를 불사하는 천우희의 배우매력을 새롭게 실감케 했다.
천우희는 인터뷰 동안 이성적인 눈높이와 감성적인 표현법을 아우르는 배우 본연의 자세와 함께, ‘더 에이트쇼’와 송세라의 해석과 사회적 인식들을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전사를 직접 만들어가야 했던 파격적인 캐릭터, 부담은 없었나?
▲선택할 때는 그저 해보고 싶은 마음으로 결정했는데, 막상 준비하는 과정에서 불안함이 있었다. 8명의 상징적인 인물들로 풀어나가는 이야기구조 속에서 기댈 수 있는 서사가 없었기 때문이다.
또한 종잡을 수 없는 캐릭터감으로 시청자들을 납득시킬 수는 있지만, 오래 지속되면 자칫 비호감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걱정도 있었다.
감독님이 바라는 방향과 함께 준비했던 여러 설정들과 동료배우들의 호흡을 더해 비호감 아닌 파격으로의 줄타기를 잘 해나가려고 노력했다.
-한재림 감독과의 교감으로 완성된 ‘8층 홍세라’의 설정은?
▲8층 특유의 섹슈얼함과 순수본능에 집중했다. 의상이나 목소리 톤 등 그를 접근하는 방식에 조금은 차이가 있었지만, 감독님의 시선에 최대한 맞춰나갔다.
분장·의상팀과 감독님은 물론 제 개인 스타일리스트까지 더해 수많은 명품의상들을 공수했다. 다양한 의상들 가운데 하나만 고르자면 첫 의상이 아닐까 한다.
행위예술을 하다가 바로 들어온 그 모습 자체가 8층의 이미지를 보여주는 게 아닐까 한다.
-신체적인 것보다는 정신적으로 표현하기 힘들었을 듯 한데, 난이도가 있는 장면은 무엇이었나?
▲말씀처럼 육체적인 힘듦보다 정신적인 부분이 컸다. 한 공간에서 여덟 명이 계속 있다보니 진짜 몰입을 할 수 밖에 없더라. 그런데 게임 참가자지만 관객처럼 인물들의 괴로움을 보고 즐거워하는 캐릭터를 유지한다는 게 쉽지 않더라.
평소처럼 캐릭터와 저를 분리해서 접근하면서도, 씁쓸한 감정들이 거듭 들어와서 제 인간적 성향을 다시 돌아보게 됐다.
-롱테이크신과 페인팅 장면은 8층의 핵심장면이다. 비하인드는?
▲우선 롱테이크는 감독님께서 제게 ‘하고싶은 대로 하라’고 하신 장면이었는데 그만큼 어려웠다. 김설진 안무가님의 도움과 제 표현방식을 결합, 다수의 리허설을 거쳐 완성했다.
액션페인팅 장면은 코코더(박정민), 춤(류준열), 탭댄스(이열음) 등에 이어 제게 주어진 미션 중 하나였다. 미흡해보이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준비를 했는데, 막상 하고 나니까 너무 재밌더라.
색이 뭉쳐지고 흩어지고 새로운 색을 만드는 것 자체가 또 다른 예술임을 느끼게 했다.
-또래 배우들과의 호흡 소회는 어떤지?
▲(박)정민 씨는 오래 봐왔고 서로 응원하던 사이고, (이)주영 씨도 작은 작품으로 함께 한 적이 있다. (류)준열 오빠는 초면이었다. 자기 몫을 충실히 하는 배우들과의 좋은 교감과 함께, 자극도 되고 응원도 됐다.
-천우희가 생각하는 ‘더 에이트 쇼’와 ‘오징어게임’의 유사성?
▲오징어게임이 워낙 유명한 넷플릭스 한국 콘텐츠고, 원작 자체가 머니게임/파이게임 등의 서바이벌 식이라 유사하게 느끼실 수 있다.
가장 큰 차이는 탈락자가 없고, 사회불평등과 인간욕구를 조명하는 작품의 메시지 자체가 다르다. 또한 여러 피라미드 구조의 중첩과 함께 접근법이 다르다.
-넷플릭스를 통해 글로벌 팬들에게 다양하게 비치고 있다. 그 소감은?
▲평소 내가 아닌 그 캐릭터로서 인식됐을 때 배우로서의 만족을 느끼는데, ‘히어로는 아닙니다만’과 ‘더 에이트 쇼’가 동시에 나오는 요즘 그러한 칭찬을 들어서 기쁘다.
많은 작품을 보여드릴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다. 감독님과 스태프, 동료배우들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라 그들에게도 감사하다.
-실제 ‘더 에이트 쇼’에 초청된다면?
▲절대 가기 싫다. 상금이나 쾌락적인 부분을 추구하는 사람도 아니고, 그 안에 갇혀서 피폐해지는 모습을 당하고 싶지 않다. 다만 불가피하게 들어가게 된다면, 침대부터 사서 있고 싶다.
-실제 본인과 닮은 층은?
▲인간 모두가 다면성을 지니고 있다. 그처럼 저도 모든 층의 모습을 갖고 있다. 물론 가장 가까운 것은 화자인 3층이지만, 저는 봉기를 드는 것도, 가만히 있는 것도 못할 사람이다.
-인간욕망에 솔직한 ‘더 에이트 쇼’ 8층을 마무리한 천우희, 본인의 지금 가장 솔직한 욕심은?
▲’히어로는 아닙니다만’과 ‘더 에이트 쇼’가 모두 잘 됐으면 하는 마음이다. 많은 분들의 고생으로 만들어진 작품이고, 대중에게 기쁨을 주는 것이 배우로서의 몫이니 당연하다.
또 캐릭터들을 거듭 연기해가면서, 저 스스로 어떤 사람인지를 좀 더 알아가고 싶다.
-대중에게 한 마디?
▲배우는 자기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을 택하지만, 중요한 것은 관객의 반응이다. ‘어떤 이야기를 보고 싶으세요?’라고 묻고 싶다.
박동선 기자 dspark@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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