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심을 잘 조절하는 것은 일상생활, 특히 인간관계를 유지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이게 말처럼 쉽지 않다. 화가 났을 때 어떻게 하면 그 마음을 다스릴 수 있을까?
전문가마다 다양한 조언을 한다. 어떤 이는 현장을 떠나 산책이나 운동을 하라 하고, 어떤 이는 음악을 들으라 하고 어떤 이는 명상을 권유한다.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는 더 어려운 방법도 있다.
일본 나고야대 연구진이 심리 실험을 통해 매우 간단하면서도 효과가 좋은 방법을 찾아내 국제학술지 ‘사이언티픽 리포츠’에 발표했다. 자신을 화나게 만든 사건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종이에 적은 뒤 그 종이를 찢어버리면 분노의 감정이 크게 사그라든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우선 50명의 실험 참가자들에게 공공장소에서의 흡연 금지 같은 중요한 사회적 문제에 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쓰도록 했다. 그런 다음 나고야대 박사과정 학생들이 그들의 글을 평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게 하지 않고, 글의 내용과 상관없이 논리성, 합리성, 흥미 등 모든 평가 항목에서 모든 글에 낮은 점수를 줬다. 동시에 핵심을 제대로 전달하기 위해 박사과정 학생들에게도 “교육받은 사람이 이런 생각을 하다니 믿을 수 없다”는 등 모욕적인 댓글을 달도록 했다.
연구진은 이어 참가자들에게 자신이 받은 평가 중에 어떤 점이 거슬렸는지에 초점을 맞춰 평가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쓰도록 했다. 마지막으로 한 그룹에겐 자신이 쓴 종이를 쓰레기통에 버리거나 책상에 있는 파일에 보관하도록 하고, 다른 그룹에겐 종이를 분쇄기에 넣어 파기하거나 플라스틱 상자에 넣도록 했다.
그런 다음 두 그룹의 학생들에게 평가를 받은 직후와 종이를 폐기 또는 보관한 후의 감정에 변화가 있었는지 평가해 줄 것을 요청했다. 그 결과 종이를 버리거나 파쇄한 사람들의 분노심은 평정심을 되찾은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문서를 보관한 사람들은 분노심이 약간 줄어드는 데 그쳤다.
가와이 노부유키 수석연구원은 “어느 정도 효과는 기대했지만 이 방법을 쓴 뒤 분노의 감정이 거의 완전히 사라진 것에 놀랐다”며 화나는 상황에 자주 처하지만 겉으로 내색하기 어려운 사업가 등이 활용하면 유용할 것으로 기대했다.
왜 이런 심리적 효과가 생기는 걸까?
연구진은 자신의 마음이 담긴 종이를 쓰레기통에 버리는 행위가 심리적 실체(분노)를 버리는 것과 비슷한 느낌을 갖게 만들어 분노의 감정을 없애주는 것으로 해석했다. 물리적 대상(분노가 적힌 종이)와 심리적 실체(분노)가 함께 버려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연구진은 또 폐기 행위보다 물리적 거리가 분노를 누그러뜨리는 역할을 했다는 해석도 가능하고 말했다. 쓰레기통이 더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연구진은 그러나 물리적 거리보다는 폐기 행위의 영향이 더 큰 것으로 봤다.
일본에는 전통적으로 사물에 정령이 있다고 생각하는 애니미즘 전통이 강하다. 종이에 마음을 담아 버리는 행위의 심리적 효과도 이와 관련이 있을 수 있다. 연구진은 그러나 이에 대한 분석은 하지 않았다. 연구진은 대신 이번 연구에서 드러난 심리적 치유 방식은 ‘하키다시사라’라는 일본의 전통 의식과도 일맥상통한다고 밝혔다. ‘하키다시’는 쓸어낸다는 뜻, ‘사라’는 접시란 뜻이다.
나고야 인근 기요스시에 있는 히요시신사에서 치러지는 이 의식은 사람들이 자신을 화나게 하는 것을 상징하는 작은 접시를 부수는 연례 행사다. 이번 실험 참가자들이 느끼는 감정의 변화와 축제 참가자들이 행사가 끝난 뒤 느끼는 안도의 감정이 같다는 게 연구진의 분석이다.
한겨레 곽노필 기자 / nop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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