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5월 17일 국가유산기본법이 시행됨에 따라 문화재청이 국가유산청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매우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제는 인터넷에서 문화재청을 검색하면 곧바로 국가유산청으로 새롭게 단장한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1962년 문화재보호법이 제정된 이래로 60여 년간 공식적으로 사용해 온 ‘문화재(cultural property)’라는 명칭은 이제 ‘유산(heritage)’에 자리를 넘겨주게 되었다. 1972년에 제정된 유네스코 세계유산협약은 “인류 전체를 위해 보호되어야 할 뛰어난 보편적 가치가 있다고 인정되는 유산”을 문화유산, 자연유산, 복합유산으로 분류하고 있으며, 별도의 협약으로 무형유산을 정의한 바 있다.
하지만 그동안 현장에서는 문화재와 문화유산 두 용어를 혼용하였고,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국제사회의 유산 분류체계와 국내의 문화재보호법상 분류체계가 달라 용어의 정합성과 연계성이 떨어진다고 누차 지적을 해왔던 차에 국가유산기본법이 문화유산에 대한 체졔적 접근의 토대를 만든 셈이다.
국가유산기본법 제정 과정에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록작업이 중요한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 1995년 석굴암과 불국사, 해인사 장경판전, 종묘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이래 2023년에 가야고분군까지 현재 14건의 문화유산이 지정되었다. 2007년 제주 화산섬과 용암 동굴, 2021년에 갯벌까지 포함해 총 2건의 자연유산을 보유하고 있다. 무형유산으로는 2001년 종묘제례를 시작으로 2022년의 탈춤까지 총 22건이 지정되었다.
국가유산기본법은 재산적 가치에 초점을 둔 문화재에서 탈피해 공동체 유산으로서의 가치에 초점을 둔 국가유산의 개념을 도입하고, 법의 목적을 통하여 국가유산의 보호는 물론 창조적 계승과 국민의 문화 향유까지 포괄하는 미래지향적 목표를 제시하고 있다. 또 국민의 국가유산 향유권을 명시적으로 규정하고 국가유산 보호정책의 기본원칙을 상세히 규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국가유산기본법에 따라 조직도 개편되어 유산 유형별 특성을 고려한 문화유산국, 자연유산국, 무형유산국과 국가유산 정책총괄, 세계·국외유산, 안전방재 등의 업무를 수행하는 유산정책국의 1관4국24과로 재편된다는 소식도 매우 반가운 일이다.
특히 2008년 2월 11일 새벽에 국보 숭례문이 방화범에 의한 화재로 2층의 90%가 소실되고, 1층의 10%가 소실되었던 사건은 문화유산의 안전방재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불러일으킨 최대의 사건일 것이다. 한국전쟁에서도 살아남았던 국보 1호 숭례문이 잿더미가 되었다는 사실에 놀랐고, 문화유산 안전대책이 너무나 허술하다는 사실에 두 번 놀랐던 기억이 있다. 그나마 오랜 세월에 녹슬고 소실된 자재들을 복원하기 위해 2017년에 문을 연 전통건축부재보존센터에 소실된 숭례문의 처마와 문루를 복원해 전시하고 있다는 사실에 안도감을 느낀다.
그러나 2023년 5월 16일에 공포된 국가유산기본법이 2024년 5월 시행되는 시점에도 여전히 제대로 논의되지 않는 문제, 즉 문화유산 접근에 성평등 가치가 빠져있다는 점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또한 국가유산기본법은 국가유산 지정·등록제도의 근거만을 규정함으로써 여전히 문화재보호법의 비체계적인 지정등록 규정의 편제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는 점도 지적되고 있다.
물론, 유네스코문화유산 등재에 국가뿐 아니라 지자체까지 경쟁적으로 나서는 과정에서 얻은 성과를 폄훼할 생각은 없다. 한국의 인류무형유산 22건 중에 강릉단오제(2005), 강강술래(2009년), 한산모시짜기(2011), 김장문화(2013년), 제주해녀문화(2016년) 등 여성 관련 무형문화유산이 포함되었다는 사실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시라도 보호와 지원이 필요한 여성유물이 사라지고 있다는 점에는 별다른 관심이 없다. 특히 전통박물관처럼 유서 깊은 값비싼 유물이 문화유산의 주류로 인식되는 한, 예컨대 현대를 살아가는 여성들의 구술, 사진, 일상물품, 기록 등은 문화유산의 반열에 들어가기가 어려운 현실이다. 문화재를 여전히 값비싼 재산적 가치로 인식하는 상황에서는 유형의 근사한 형태를 갖추지 않은 여성 물품은 유물의 이름을 부여받지 못하고 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사업의 근본이념은 보편적 가치의 보존과 함께 문화다양성의 보장에 있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점점 관계 맺기를 어려워하는 젊은 세대에게 공동의 경험을 통한 공동체 가치의 중요성을 어떻게 이해시킬 수 있을까? 이야기를 기억하는 할머니 등 집안 어른들이 남긴 작은 물품들에 이름을 붙이고 간직하는 젊은 세대의 경험은 ‘살아있는 박물관’을 만드는 기초이다.
국가유산기본법이 표방하는 국가유산의 보호, 창조적 계승, 국민의 문화향유를 포괄하는 미래지향적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한 사람 한 사람이 살아있는 박물관이라는 생각의 공유가 시급하다. 한국의 유형무형의 문화유산 행정이 감동 없는 관제행사로 귀결되지 않으려면, 그것을 기억하려는 다양한 시도와 창의적 아이디어에도 지원이 필요한 것은 아닐까? 세계문화유산 등재제도가 문화유산의 보존과 전승을 위한 효과적인 수단이 될 수는 있으나, 문화유산의 보호가 궁극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간과할 위험이 있다는 점에서 우리의 문화재 정책 방향을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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