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걸 어떻게 다 먹어?
최근 편의점에 가면 거대한 크기로 분위기를 압도하는 제품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라면부터 도시락까지, 우리가 알고 있던 작고 간편한 크기가 아닌 두 손으로 들어야 하는 점보 사이즈의 제품들이 출시된 건데요. 얼핏 봤을 때 ‘장난으로 만든 건가?’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식품·유통업계에서 이 같은 유행은 하나의 ‘전략’으로 받아들여지는 모양샙니다.
최근 MZ세대를 중심으로 크기가 크고 저렴한 제품들에 대한 선호가 강해지면서, 다양한 점보 제품이 출시됐습니다. 가성비를 챙겼다는 평가를 받을 뿐 아니라, 재미있는 소비를 추구하는 ‘펀슈머'(Fun+Consumer) 트렌드도 만족시켰다는 분석이 나오는데요. 소비자들의 눈길이 쏠리면서 일부 제품들은 ‘품절 대란’을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온라인상에서는 “드디어 구했다”는 후기 글들이 속속 게재되기도 했죠.
그렇다면 이 같은 제품들이 등장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가성비를 넘어 ‘갓성비'(God+가성비)를 내세운 점보 제품 인기의 비밀을 알아봤습니다.
점보 제품 뭐 있을까…대왕 크림빵에 세숫대야 냉면까지 다양
점보 제품이 등장한 게 당장 최근의 일은 아닙니다. 점보 유행은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물살을 탔죠.
다양한 빅사이즈 상품이 잇따라 출시되는 기폭제 역할을 한 곳으로는 GS리테일이 운영하는 편의점 GS25가 있습니다. GS25는 지난해 5월 ‘팔도 점보 도시락’을 출시했습니다. ‘팔도 점보 도시락’은 ‘팔도 도시락’ 8개를 하나로 만든 대용량 컵라면인데요. 팔도와 도시락 브랜드 상표권 사용만 계약해 출시된 이 제품은 최초 5만 개 이벤트 한정 상품으로 기획됐습니다. 그런데 한정 수량이 3일 만에 완판되는 등 열띤 반응이 이어졌고, 정식 운영 상품으로 전환했죠. 출시 5개월 만에 누적 판매량 70만 개, 매출 60억 원을 기록했습니다.
GS25는 이를 시작으로 ‘공간춘 쟁반 짬짜면'(공간춘), ‘오모리 점보 도시락’도 선보였습니다. ‘공간춘’은 군대에서 공화춘짜장과 간짬뽕을 섞어 먹는 것이 유행한 것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상품인데요. ‘팔도 점보 도시락’의 인기에 힘입어 출시 전부터 화제를 빚었습니다.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면서 중고 거래 사이트에서 ‘웃돈’이 붙어 거래되기도 했죠. 오픈마켓에서는 컵라면 1개 가격이 3만 원에 육박하기도 했습니다.
지난달엔 점보 라면 시리즈 4탄 ‘틈새 비김면’을 출시했는데요. 하절기 최고 인기 라면 중 하나인 ‘팔도 비빔면’을 활용한 만큼, 출시 한 달 만에 판매량 20만 개를 돌파하면서 흥행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여기에 ‘유어스 세숫대야 물냉면’까지 출시하면서 여름 준비에 박차를 가했습니다. 중량 150g 안팎인 시중 냉면보다 8배 큰 8인분 용량의 해당 제품으로 점보 라면 콘셉트를 즉석식품 카테고리로 확장했는데요. 초대형 콘셉트와 함께 재미 요소를 극대화하기 위해 세숫대야 크기의 국산 스테인리스 용기까지 구성품으로 담았습니다. 냉면을 먹은 뒤 세척해 실제 세숫대야로 활용하는 등 다양한 콘텐츠 생성에 사용할 수 있도록 기획했다는 설명이죠.
출시 타이밍도 절묘했는데요. 한국소비자원 가격정보종합포털 ‘참가격’에 따르면 지난달 서울 기준 대표 외식 메뉴 가운데 냉면 한 그릇 가격은 평균 1만1538원에서 1만1692원으로 올라 1만2000원을 목전에 뒀습니다. 1년 전과 비교했을 땐 약 700원, 7%의 상승률을 나타냈는데요. 실제 서울 유명 냉면집인 을지면옥은 종로구 낙원동으로 이전해 지난달 2년 만에 영업을 재개하면서 냉면값을 기존 1만3000원에서 1만5000원으로 2000원 올렸습니다. 을밀대는 냉면 한 그릇에 1만5000원을 받습니다. 필동면옥은 1만4000원이고, 우래옥과 봉피양은 1만6000원까지 치솟았습니다.
유명 냉면집의 냉면과 간편식 냉면을 같은 선상에 두고 비교하는 건 무리지만, 전문점 냉면 한 그릇 가격으로 8인분 용량의 간편식 냉면을 즐길 수 있는 셈입니다.
BGF리테일이 운영하는 편의점 CU는 기존의 삼각김밥보다 크게 나온 빅사이즈 삼각김밥 4개를 합친 초대형 삼각김밥으로 재구성한 ‘슈퍼라지킹 삼각김밥’을 출시했습니다. 1㎏에 달하는 특대용량 안주 꾸이포대로도 인기몰이를 했죠.
SPC삼립은 크림빵 출시 60주년을 맞아 정통크림빵(75g)을 6배로 늘린 500g 용량의 ‘크림대빵’을 선보였습니다. ‘크림대빵’은 시중에서 품귀 현상이 빚어질 정도로 인기를 끌었는데요. 대형 사이즈인 만큼 생일·돌잔치 등에 축하 케이크로도 사용할 수 있도록 빵칼이 제공돼 웃음 요소를 더했습니다.
고물가 속 등장한 점보 제품, SNS 타고 인기 치솟아
소비자들이 점보 제품에 열광하는 건 ‘고물가’ 상황이 주효했습니다. 크기와 양을 늘린 점보 제품이 상대적으로 가성비가 있다고 여겨지기 때문인데요. 예를 들면 5900원짜리 ‘슈퍼라지킹 삼각김밥’은 하나에 1500~1700원인 삼각김밥 4개를 개별 구입하는 것보다 10% 정도 저렴합니다.
통계청에 따르면 외식물가지수는 지난달 기준 3.0%로, 4월 소비자물가지수(2.9%)보다 0.1% 높으며 35개월 연속 소비자물가보다 높은 상승률을 보였습니다. 냉면뿐 아니라 주요 외식 품목 39개 모두 가격이 상승한 것으로 집계됐으며 이 중 19개 항목이 외식물가 평균 상승률보다 높았죠.
이렇다 보니 ‘면플레이션'(면+인플레이션), ‘런치플레이션'(점심+인플레이션) 등 고물가와 관련한 신조어도 쏟아지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소비자들이 대안으로 삼은 건 편의점 도시락, 간편식이었는데요. GS25, CU 등 주요 편의점 프랜차이즈 업계의 올해 1분기 매출은 전년 동월 대비 5.1~5.7%가량 상승했으며 4월에는 18~25% 오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번 매출 증대에는 ‘가성비’ 도시락 판매 증가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됐죠.
점보 제품은 가성비를 중요시하는 고객에게 대안이 되면서 재미까지 줘 인기를 끌었습니다. 유튜브, 인스타그램 등 SNS에서는 점보 제품들을 먹는 ‘먹방’ 영상이 유행했죠. 자신의 취향, 가치관과 유사하거나 인기 있는 인물 혹은 콘텐츠를 따라 제품을 사는 ‘디토(Ditto) 소비’가 트렌드로 자리 잡은 것도 흥행에 영향을 미쳤는데요. 인증샷 등을 통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확산하면서 자연스러운 홍보 효과가 더해진 겁니다. 이에 업계에서는 제품의 크기를 늘리거나, 두 개 이상의 콘텐츠를 융합해 새로운 상품을 만드는 ‘매시업'(mash-up) 형태로 펀슈머에 열을 올리고 있죠. 차별화된 경험을 중시하는 젊은층의 소비 성향을 반영하면서 하나의 흥행 전략으로 떠오른 모습입니다.
프랜차이즈 업계도 주목…인기 이어질까?
빅사이즈 열풍에는 프랜차이즈 업계도 동참했습니다.
롯데리아는 지난해 12월 테스트메뉴로 운영하던 ‘왕돈까스 버거’를 올해 2월 한정 메뉴로 출시했습니다. 말 그대로 버거 양 옆에 돈가스 패티가 튀어나올 정도로 큰 왕돈가스를 끼워 넣은 버거였죠. 이 상품은 출시 2주 만에 누적 판매량 55만 개를 돌파하면서 인기를 끌었습니다. 인기 유튜버 침착맨은 ‘예술의 경지에 오른 롯데리아 K-왕돈까스 버거 먹방’이라는 제목으로 리뷰 영상을 게재했는데요. 해당 영상은 130만 회 이상의 조회 수를 기록하면서 화제가 됐죠.
맘스터치도 기존 싸이버거 패티에서 2배가량 커진 ‘메가 싸이버거’를 한국과 일본 양국에서 동시에 선보이면서 화제를 모은 바 있고요. 스타벅스는 ‘트렌타’ 사이즈(887㎖) 용량의 음료를 선보였습니다.
업계에서는 이 같은 점보 제품의 인기가 이어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습니다. 고물가 시대에 가성비를 추구하는 소비자 욕구를 충족하면서도, ‘먹방’ 트렌드에 편승하는 등 색다른 경험을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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