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반도체 사업을 총괄하는 DS(디바이스솔루션) 부문장에 전영현(64) 미래사업기획단장(부회장)을 앉히면서 돌파구 마련에 나섰다. 갑작스럽게 단행된 인사에 재계 안팎에서는 삼성전자가 ‘초격차’ 유지에 실패한 D램 사업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구원투수를 투입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 전영현 부회장, 분위기 반전·소방수 역할
삼성전자는 21일 DS부문장에 전 부회장을 위촉하고, 경계현 사장(전 DS부문장)을 미래사업기획단장 겸 SAIT 원장으로 임명했다. 3년 5개월 동안 삼성 반도체를 이끌어온 경 사장은 스스로 부문장 자리에서 물러난 것으로 알려졌다. 경 사장은 최근 한종희 대표이사 부회장(DX부문장)과 만나 퇴임의 뜻을 전하고, 이와 관련한 협의와 이사회 보고를 마친 것으로 전해졌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경 사장이 올해 반도체 업황이 업턴에 들어선 만큼, 회사가 더 높이 도약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느낀 것 같다”며 “반도체 초격차 기술력을 다시 확보하기 위해서는 새 리더로 분위기를 바꿀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삼성전자 안팎에서는 반도체 사업에 직원들의 역량을 집중시킬 수 있는 전 부회장의 강력한 리더십이 필요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삼성전자는 인공지능(AI) 시대 핵심 반도체로 급성장한 HBM(고대역폭 메모리) 시장을 미리 내다보지 못하고 차세대 기술 개발에 실패해 SK하이닉스에 시장 선두 자리를 내줬다.
삼성전자 임원 출신 한 인사는 “삼성 입장에서는 어떻게든 난제를 극복해야 하는 상황으로, D램 시황 개선과는 별개로 실질적인 초격차 리더십을 다시 확보해야 하는 숙제가 있다”며 “경 사장은 부드러운 리더십을 보여왔지만 치열하게 경쟁해야 하는 현시기에선 그의 리더십이 밀린다는 내부 평가가 많았다”고 말했다. 그는 “경 사장보다 선배이면서 회사 내부에서 명망이 높은 전 부회장을 수장으로 앉혀 기강을 다잡겠다는 시도를 하는 것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박재근 한양대 융합전자공학부 교수는 “전 부회장은 사업 추진력이 강하고 판단력이 뛰어나 위기 상황에서 더욱 적합하다는 인물이라는 평가가 있다”고 말했다.
◇ “7년 만의 반도체 복귀, 사업 생태계 달라져”
일각에서는 반도체 사업에서 7년간 떠나있던 인물을 반도체 사업을 이끌 수장으로 투입한 것에 대해 리스크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맞춤형 인공지능(AI) 메모리 광풍이 불면서 소품종 대량 양산 체제로 메모리 사업을 구가해 왔던 과거와는 사업 생태계가 달라졌다는 것이다.
삼성 반도체에 정통한 관계자는 “전 부회장이 경쟁력을 보이던 시절은 PC, 모바일, 서버 D램으로 시장이 안정화됐었다. 지금과는 사업 구조가 다르다”며 “지금은 소품종 대량 양산보다는 빠른 피보팅(기존 사업 아이템을 다른 것으로 전환하는 것)과 협업, 시장 수요에 따른 기술 개발이 승부를 가르는데, 전 부회장이 반도체 수장으로 적임자일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1960년생인 전 부회장이 반도체 사업 수장으로 돌아온 것을 두고 삼성 내부에 유능한 젊은 리더가 없는 것이 아니냐는 반응도 나왔다. 현재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 사장단에는 이정배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장, 최시영 파운드리사업부장, 박용인 시스템LSI 사업부장, 송재혁 최고기술책임자(CTO), 남석우 제조부문 사장 등이 있다.
재계 관계자는 “현 DS부문 사장단 중 이정배 사장이 실력이 좋다는 평가를 받지만, 반도체 수장은 경 사장이 그랬듯 전자 계열사에 투입돼 다른 사업도 경험하고 능력을 검증받고 돌아오는 과정이 필요하다”며 “현재 반도체 사업부의 뒤숭숭한 분위기를 다잡기 위해선 삼성 조직을 잘 알면서도 연륜이 있는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본 것”이라고 말했다.
전 부회장의 경륜을 미뤄볼 때 삼성 반도체 조직을 추스르기에 적합한 리더라는 반응도 있다. 전 부회장은 SK하이닉스의 전신인 LG반도체 출신으로, 2000년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로 입사해 D램·낸드플래시 개발, 전략 마케팅 업무를 거쳐 2014년부터 메모리사업부장을 역임했다. 2017년 삼성SDI로 자리를 옮겨 5년간 삼성SDI 대표이사를 맡았다. 지난해 말 인사에서 신설된 미래사업기획단을 맡았다.
강성철 한국반도체디스플레이기술학회 연구위원은 “삼성전자에는 HBM, D램 분야에서 사업을 강하게 밀어붙이고, 위기 상황에서 안정감을 심어줄 수 있는 인사가 필요한 시점”이라며 “전 부회장은 낸드플래시 전문가인 경 사장보다 D램 분야에서 잔뼈가 굵고, 위기에 처한 삼성SDI 사업을 안정적으로 이끌면서 위기관리 능력을 인정 받았다. 현재 위기를 타개하는 데 적합한 인물이라는 판단이 작용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재계 관계자는 “전 부회장은 미래사업기획단을 맡아와 현 삼성 사장단 가운데 가장 새로운 시각을 갖고 있는 인물일 수 있다”며 “쇄신을 하려면 새로운 시각에서 사업을 접근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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