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2734조원에 달하는 기업부채의 주된 요인을 부동산업 대출로 지목하며 경고장을 날렸다. 대출이 기업 성장을 뒷받침하는 투자로 이어져야 하는데 상대적으로 생산성이 떨어지는 부동산업에 빚이 과도하게 쏠려 있다는 지적이다.
한은은 기업부채가 우리 경제 선순환에 기여할 수 있도록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에 대한 질서 있는 구조조정을 통해 부동산업 대출의 점진적인 디레버리징을 유도해 나가야 한다고 제언했다.
20일 한은 금융시장국 시장총괄팀에서 발표한 ‘우리나라 기업부채 현황 및 시사점’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기업부채는 2734조원으로 본격적인 증가세가 시작된 2018년 이후 1036조원이나 급증했다. 명목 국내총생산(GDP) 대비 기업부채 비율(이하 기업부채 레버리지)은 지난해 말 122.3%로 2017년 말(92.5%)보다 29.8%포인트 뛰었다.
한은은 기업부채가 증대된 주요 원인으로 부동산 부문 신용 공급 확대를 꼽았다. 부동산 경기 활황으로 투자·개발 수요가 크게 확대되면서 금융권의 부동산업 관련 대출잔액이 2018~2023년에 301조원까지 폭증한 영향이다. 이는 같은 기간 전체 기업부채 증가 규모 대비 29% 수준으로 분석된다.
국내 부동산 관련 부채 증가는 주요국과 비교해도 두드러진다. 2010년대 이후 주요국 부동산업 대출 연평균 증가율은 5~10%인 데 반해 우리나라는 15%로 높은 수준을 유지해 왔다. 2017년 13.1%로 주요국과 비슷한 수준이던 우리나라 GDP 대비 부동산 대출 잔액 비율은 지난해 24.1%로 높아졌다. 2022년 말 기준 유로 지역(14.7%), 호주(12.0%), 미국(11.3%), 영국(8.7%) 등보다 훨씬 높다.
더 큰 문제는 부동산업 관련 대출 확대가 투자를 통해 수익성을 높이는 효율적인 경영 활동이 아니라는 점이다. 상대적으로 생산성이 낮은 부동산 부문에 빚이 몰리는 건 국가 경제 전반에 긍정적이지 않다는 게 한은 측 판단이다.
류창훈 한은 금융시장국 시장총괄팀 과장은 “부동산 부문에서 부채가 크게 늘어난 것은 전체 국가 경제 자원 배분 효율성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향후 국내외 통화정책 기조 전환 과정에서 금융기관의 신용 공급이 부동산 부문으로 재차 집중되지 않고 생산적인 부문으로 흘러갈 수 있도록 거시 건전성 정책을 통해 적절히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한은은 일반기업에 대해서는 대기업을 중심으로 부채 증가세가 확대되긴 했지만 우려할 만한 수준은 아니라고 봤다. 상위 30대 대기업집단은 2018년부터 지난해까지 부채가 연평균 7.5%(347조원) 증가했다. 다만 자기자본 역시 6.4%(418조원) 늘면서 부채 비율은 2017년 말 68.8%에서 2023년 말 73.2%로 4.4%포인트 상승하는 데 그쳤다.
부채의 질이 저하되고 있는 건 위험 요소다. 전체 일반기업 차입 부채 대비 한계기업(이자보상비율이 3년 연속 100% 미만인 기업) 부채 비율은 2021년 말 14.7%에서 2022년 말 17.1%로 높아졌다. 류 과장은 “한계기업이 부채를 통해 연명하는 상태가 장기간 지속되지 않도록 과도한 금융 지원을 지양하고 회생 가능성에 기반한 신용 공급을 유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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