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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면) [김호균 칼럼] ​한미일 협력, ”경제안보’ 관점서 재점검 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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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균 명지대 경영정보학과 명예교수
[김호균 명지대 경영정보학과 명예교수]

한국 네이버가 일본에 공동 투자 기업으로 설립한 라인야후를 사실상 강탈하려는 일본 정부의 시도가 알려지면서 국내 여론이 들끓고 있다. 윤석열 정부의 미온적인 대처와 ‘반일 자제’ 호소는 오히려 ‘반일’에 더하여 ‘반정부’를 부추기고 있다. 한국민에게 ‘소부장’ 개념을 각인시키는 계기가 되었던 2019년 수출 규제 이후 일본 정부의 두 번째 도발이다. 1997년 외환위기 촉발까지 더하면 세 번째이고. 미국 정부가 안보를 이유로 틱톡을 미국 내에서 강제 퇴출시키는 반(反)자본주의적 행태의 ‘모방범죄’일 수 있다. 하지만 라인야후 약탈 시도와 틱톡 축출은 규모나 파장 면에서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한국과 일본의 향후 온라인 생태계 발전은 물론 한국의 경제안보에 함의하는 바가 크다.

한국 정부는 문재인 정부 말기부터 ‘경제안보’에 대한 개념 이해조차 없이 대중 관계에서 형식적인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이 상황이 윤석열 정부에서 나아진 것은 없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이 최근 발간한 보고서 ‘2023년 중국 대외무역의 특징과 한·중 무역에 대한 시사점’에서는 한국의 대중국 의존 심화와 중국의 자급화가 가속되면서 한국의 대중국 무역적자 구조가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었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3년 한국은 중국과의 무역에서 한·중 수교가 이루어진 1992년 이후 처음으로 180억 달러 적자를 기록했다. 반도체를 제외할 경우 대중국 무역수지는 이미 2021년에 적자로 전환되었다고 보고서는 분석했다. 한국의 경제안보를 위협하는 요소는 특히 원자재와 중간재에 있다. 한국의 대중국 수입에서 중간재가 차지하는 비중은 2018년 60.7%에서 2023년 67.0%로 오히려 늘었다. 핵심 광물, 에너지, 정보통신기술(ICT), 공중보건 등 공급망 핵심 품목의 수입 비중은 52.6%에서 57.9%로 확대됐으며 이 중 핵심 광물 비중은 4.0%에서 6.5%로 상승했다. 2021년 ‘요소수 사태’를 겪은 이후 미국이 주도하는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 공급망 협정으로 대응전략을 가동시켰지만 이는 위험요인을 옮긴 것일 뿐이지 제거한 것은 아니다. 코로나19 국면 이후 심화되고 있는 미·중 갈등은 한국의 대중교역을 경제안보의 잠재적 위협요인으로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미국이 한국을 압박하는 지렛대로 만들었다.

일본 정부의 라인야후 약탈 시도는 2021년 소부장 수출 규제처럼 한국을 ‘적성국’으로 간주하는 폭거인 점에서 경제안보에 대한 심각한 위협이다. 미국과 함께 해군합동훈련을 실시하는 ‘우방’을 적성국으로 규정한다는 것은 모순일 수 있겠지만 일본 정부로서는 한국을 적성국이자 ‘속국’으로 간주한다는 해석이 일관성이 있다. 과거사에 대한 사과와 강제노동에 대한 피해 보상을 거부하는 자세도 식민지 지배를 다시 도발하고 싶은 속내로 해석하면 역시 일관성이 읽힌다. 일본에 한·일 과거사는 청산해야 할 것이 아니라 재현되어야 하는 희망사항이다. 라인야후는 일본인 9000만명이 사용하고 있으니 일본 내에서 플랫폼기업으로서는 대체 불가능할 정도로 압도적이다. 나아가 라인야후의 약탈은 일본에는 동남아시아에서 미치고 있는 아날로그 영향력을 디지털 영역으로 확대하는 날개를 달아줄 것이고, 한국에는 어렵사리 쌓아온 동남아시아 네트워크를 한순간에 잃는 재앙이 될 것이다. 이는 향후 AI 생태계에 증폭되어 직결될 것이므로 한·일 글로벌 디지털 역량에서 역전현상마저 발생할 수 있다. 라인야후 사건을 윤석열 정부처럼 ‘기업 간 문제’로만 볼 수 없는 이유다.

한·미 경제동맹은 일방적인 불평등 관계이다. 미국은 한·미 군사동맹을 경제 분야로까지 확대한다는 ‘한·미 경제동맹’ 개념을 아마추어 정부에 던지면서 한국의 핵심 전략산업인 반도체, 이차전지, 전기자동차의 대미 투자를 끌고 갔다. 한국이 미국에서 받은 것은 ‘철통 같은 한··미 동맹’이라는 구두선뿐이었다. 우크라이나전쟁이 장기화하면서 ‘가치동맹’을 명분으로 이루어진 한국의 ‘간접적인’ 군사 지원은 이제 대만 문제로까지 확대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반도체, 이차전지, 전기자동차에 대한 한국 기업의 투자가 확정되고 실천에 옮겨지면서 ‘경제동맹’ 개념은 사라졌다. ‘인플레이션감축법’에서 현대 전기차를 수혜 대상에서 제외함으로써 바이든 대통령이 방한 당시 어깨동무했던 정의선 회장의 뒤통수를 친 것은 역사에 남을 만한 사건이다.
미·일 동맹은 한국 반도체기업에 대한 압박에서도 발효되고 있다. 일본 낸드플래시 생산업체 키옥시아와 미국 웨스턴 디지털 합병에 SK하이닉스가 동의하도록 윤석열 정부가 미·일 정부 당국자들과 함께 ‘설득’했다고 지난 3월 아사히신문이 보도했다. 2023년 3분기 점유율을 보면 삼성전자 31.4%, SK하이닉스 20.2%, 웨스턴 디지털 16.9%, 키옥시아 14.5% 등이다. 미·일 기업의 합병이 이루어지면 SK하이닉스를 추월함은 물론 삼성전자와 점유율이 같아진다. SK하이닉스가 ‘설득’ 사실은 일단 부인했지만 미·일 정부의 협공에 한국 정부가 방어에 나섰다는 보도는 없다.

윤석열 정부의 경제안보관 결여는 심각한 후유증을 낳고 있다. 미국 제조업 부흥을 위한 한국의 기여를 기업 이익 관점에서만 평가하고 있다. 미국 정치권과 사회가 한결같이 주목하는 일자리 창출에 한국 정부와 언론은 눈을 감고 있다. 그래서 그것이 ‘한국 일자리 유출’임을 애써 감추고 있다. 기업에는 생산지로서 한국과 미국에 별 차이가 없을 수 있겠지만 한국 경제와 한국 청년은 물론 한국의 경제안보에는 전혀 다른 문제다. 한국 기업에 의한 미국 내 일자리 창출은 한국 경제의 ‘공동화’에 대한 우려를 심화시키고 일자리 손실과 기술 유출을 가져올 뿐만 아니라 한국의 경제안보를 잠식하고 장기적으로 한국의 수출을 저해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의대 정원 확대가 반도체 인재 양성에 미칠 부정적 영향에도 대처할 필요가 있다. 의대 정원 확대는 자체로서는 최고의 청년 일자리가 그만큼 늘어난다는 점에서 노동시장에 긍정적인 소식이다. 하지만 이 확대는 반도체 인재 양성에 작지 않은 지장을 초래할 것으로 예상된다. 시작부터 의대 때문에 입학정원을 채우는 데 애를 먹고 있는 반도체 계약학과(510명) 제도가 의대 정원 확대를 소화하는 데 최소한 몇 년은 걸릴 것이다. 게다가 한국 기업의 반도체공장이 미국에 건설되면 이미 시작된 한국 인재의 미국 유출은 더욱 가속화될 우려가 있다. 미국 기업 마이크론과 인텔은 이미 한국 인재 사냥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삼성전자 직원 260여 명, SK하이닉스 직원 110여 명이 마이크론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미 미국에 투자한 한국 기업들이 미국 대학의 한국인 졸업생을 더 많이 채용할 수 있도록 쿼터를 확대해 달라고 요청하고 이를 미국 의회가 받아들인다면 자본 수출에 동반되는 인재 유출은 더욱 가시화될 것이다.

라인야후 사건은 단순한 기업 간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한·미·일 군사협력 위에서 그려지고 있는 경제동맹, 반도체동맹이 한국의 경제안보를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미국과 일본이 각각이든 협력해서든 한국에 대해 가하는 일방적인 압박과 견제는 두 나라의 경제안보는 강화하면서 한국 경제의 입지는 좁히는 방향으로 진전되고 있다. 이에 대한 윤석열 정부의 미온적 대응은 물론 명백한 ‘이적행위’는 일자리 유출, 두뇌 유출을 촉진할 뿐만 아니라 중장기적으로 ‘수출 실적을 수출’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이러한 유출과 수출은 다시 대한민국의 인구 소멸 가속화로 이어질 것이다. 군사협력을 포함한 한·미·일 협력을 경제적 국익의 관점에서 재점검해야 할 시점이다.

김호균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경제학과 ▷독일 브레멘대 경제학 박사 ▷명지대 경영정보학과 교수 ▷경실련 경제정의연구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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