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대銀 매각 물량 1년 새 2.5배 급증
‘직접 손실’ 상각만으로는 관리 불가
고금리 장기화 속 깊어지는 ‘속앓이’
국내 5대 은행이 외부 기관에 헐값에 파는 형태로 정리한 부실대출 물량이 한 해 동안에만 2.5배 넘게 불어나면서 올해 들어 벌써 1조원을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고금리 여파로 부실이 계속 쌓이면서 직접 손실을 떠안는 상각 방식으로는 리스크 관리가 도저히 불가능해지자, 얼마라도 수익을 건질 수 있는 매각이 빠르게 불어나는 모습이다.
지금과 같은 높은 금리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계속 부실대출을 손절해야 하는 은행권으로서는 속앓이가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21일 금융권에 따르면 올해 1분기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 등 5개 은행이 매각한 부실채권은 총 1조1432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52.5% 늘었다.
이는 은행들이 회수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판단해 부실채권을 매각하는 사례가 많아지고 있다는 의미다. 채권 원가에 훨씬 못 미치는 돈을 받고 자산유동화 전문회사 등에 부실채권을 넘긴 것이다.
은행별로 보면 하나은행의 부실채권 매각액이 3204억원으로 같은 기간 대비 90.1% 증가했다. 농협은행 역시 2648억원으로, 우리은행은 2228억원으로 각각 497.7%와 63.9%씩 해당 금액이 늘었다. 국민은행도 1811억원으로, 신한은행은 1541억원으로 각각 324.1%와 151.4%씩 부실채권 매각이 증가했다.
은행들이 이처럼 부실채권 처리에 목을 매는 배경에는 높아진 금리의 충격파가 자리하고 있다. 고금리 기조가 장기화하면서 쌓여가는 이자 부담을 감당하지 못해 결국 연체의 늪으로 빠지는 차주들이 많아지고 있어서다.
한국은행은 2022년 4월부터 지난해 1월까지 사상 처음으로 일곱 차례 연속 기준금리를 인상했다. 이중 7월과 10월은 기준금리를 한 번에 0.5%p 올리는 빅스텝을 단행했다. 이에 따른 한은 기준금리는 3.50%로, 2008년 11월의 4.00% 이후 최고치다.
이런 와중 부실채권의 또 다른 처리 방식인 상각에 비해 매각 규모가 훨씬 빠르게 몸집을 불리고 있다는 점은 눈여겨 볼 만한 대목이다. 상각은 은행이 손해를 감수하면서 갖고 있던 부실채권을 아예 장부에서 지워버린 케이스다. 실제로 올해 1분기 조사 대상 은행들이 상각 처리한 부실채권은 4613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7.1% 증가하는 데 그쳤다.
이를 종합해 보면 결국 상각 대신 매각을 이용한 부실 정리가 확산하고 있다는 뜻이다. 은행이 손실을 모두 떠안는 상각으로 감당하기엔 부실채권이 너무 많이 늘어나자, 조금이라도 돈을 건질 수 있는 매각이 활성화되고 있다는 얘기다.
이런 다각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은행권의 부실채권은 계속 확대되고 있다. 실제로 조사 대상 기간 5대 은행들이 떠안고 있는 고정이하여신은 4조7752억원으로 24.9% 늘었다.
은행은 보통 고정이하여신이란 이름으로 부실채권을 분류해 둔다. 고정이하여신은 금융사가 내준 여신에서 통상 석 달 넘게 연체된 여신을 가리키는 표현이다. 금융사들은 자산을 건전성에 따라 ▲정상 ▲요주의 ▲고정 ▲회수의문 ▲추정손실 등 다섯 단계로 나누는데 이중 고정과 회수의문, 추정손실에 해당하는 부분을 묶어 고정이하여신이라 부른다.
문제는 현재의 고금리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의 금리 인하 타이밍이 계속 미뤄지면서, 한은으로서도 선뜻 통화정책 전환이 어려워진 실정이다. 연초까지만 해도 올해 안에는 기준금리 인하가 시작될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었지만, 최근에는 그 시기가 내년으로 넘어갈 수 있다는 전망이 제기된다.
금융권 관계자는 “금리 추이로 봤을 때 은행권의 고정이하여신은 당분간 확대 흐름을 이어갈 것”이라며 “제2금융권에 비해 은행권의 부실채권은 비교적 우량 물건인 만큼, 이에 대한 매매 수요는 더욱 늘어날 공산이 크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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