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잠식에 빠진 좀비 벤처캐피털(VC)이 늘고 있다. 올해 들어서만 4곳 VC가 자본잠식으로 경영건전성 기준 미달 ‘경고’를 받은 것으로 파악됐다. 지난 1분기 펀드결성 규모가 전년 대비 증가, 벤처투자 시장이 회복세에 들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는 것과 대조된다.
20일 벤처캐피털(VC) 업계에 따르면 올해 들어 5월 현재까지 4곳 VC가 자본잠식에 따른 ‘경영건전성 기준 미충족’으로 중소벤처기업부(중기부)로부터 경영개선 시정명령을 받았다. 네오인사이트벤처스, 엔피엑스벤처스, 오라클벤처투자, 더시드인베스트먼트 등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같은 기간 2곳이 경영개선 시정명령을 받았던 것과 비교해 2배 증가한 것으로, 이들 4곳은 자본잠식률이 50%를 넘어선 것으로 파악됐다. 이대로라면 지난해 기록한 연간 8곳 자본잠식 시정명령을 넘어설 전망이다. 2022년엔 5곳 VC가 경영개선 시정명령을 받았다.
창업투자회사로도 불리는 VC는 설립 근거인 ‘벤처투자 촉진에 관한 법률’(벤처투자법)에 따라 자본잠식률 50% 미만을 유지해야 한다. 기준 미충족 시 중기부는 자본금 증액, 이익 배당 제한 등 조치를 부과한다. 최대 9개월 내 미이행 시 VC 등록 면허를 말소한다.
특히 네오인사이트벤처스는 이번에 두번째 경영개선 시정명령을 받게 됐다. 지난해 5월 이미 한차례 중기부로부터 경영건전성 미충족 시정명령을 받았다. 네오인사이트벤처스는 곧장 유상증자에 나서며 위기를 넘겼지만, 1년도 지나지 않아 다시 자본잠식에 빠졌다.
VC업계 한 관계자는 “VC는 기본적으로 펀드를 만들어 관리보수를 받아야 하는데 중소형 VC로는 펀드 출자 자체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면서 “관리보수를 비롯한 수익원이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인건비 등 영업비용만 내다보니 자본금을 까먹게 되는 셈”이라고 말했다.
올해 벤처투자 시장이 점진적인 회복 국면에 들었다는 관측이 나오지만, 중소형 VC의 위기는 도리어 심화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고금리 국면 속에 모험자본에 자금을 공급하는 기관들이 대형 VC로만 출자하려는 기조를 오히려 더 강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올해 1분기 국내 벤처펀드 결성액은 2조3628억원으로 42% 증가했지만, 이는 모두 대형 VC로만 몰렸다. 모태펀드 같은 정책자금을 받은 VC라고 하더라도 연기금이나 공제회, 은행, 캐피털 등으로부터 추가 자금을 유치해야 하는 데 중소형 VC는 외면받고 있다.
국내 대형 VC들은 역대 최대 규모로 펀드를 결성하고 있다. 에이티넘인베스트먼트는 작년 국내 VC 사상 최대 규모인 8700억원 규모의 벤처펀드를 결성했다. DSC인베스트먼트는 이달 초 3000억원 규모 세컨더리 펀드를 결정했다. 단일 세컨더리 벤처펀드로는 국내 최대 규모다. 세컨더리 펀드는 VC가 기존에 투자했던 포트폴리오 회사 주식을 다시 인수하는 펀드를 말한다.
업계에선 VC 폐업이 본격화할 것으로 보고 있다. 올해 들어 현재까지 루트벤처스, IDG캐피탈파트너스코리아, 플랫폼파트너스자산운용, 이랜드벤처스, 예원파트너스 등 5곳 VC가 이미 면허를 반납한 것으로 집계됐다. VC 신규 등록은 2022년 42개 기록 이후 지난해 19곳으로 줄었다.
VC업계 한 관계자는 “벤처 호황기에 너도나도 VC를 설립하고 나섰지만, 고금리에 따른 자금 조달 비용 증가, 금융시장 불확실성 등으로 중소형 VC는 설 자리를 잃었다”면서 “펀드 한 개도 결성하지 못하고 폐업하는 VC가 더 많이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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