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반세기가 훌쩍 지난 일이지만, 서머싯 몸(Somerset Maugham, 1874~1965)의 소설 ‘달과 6펜스(Th Moon and Sixpence)’를 읽으며 푹 빠졌던 기억이 오늘도 생생합니다. 필자는 그 소설이 탈(脫) 인상주의 화가 폴 고갱(Paul Gauguin, 1848~1903)을 모티프로 했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고 그에 못지않게 저자 서머싯 몸의 긴박감 넘치는 문장에도 푹 빠졌던 기억도 함께 납니다.
특히 소설책을 읽고는, 폴 고갱의 작품 전시회라면, 이 도시 저 도시, 이 나라 저 나라를 찾아다녔던 기억도 생생한데 2016년 파리 루이비통 재단(Fondation Louis Vuitton) 미술관에서 전시한 ‘현대미술의 아이콘-시추킨 컬렉션(Icons of Modern Art-The Shchukin Collection)에서 만난 폴 고갱의 작품은 더욱 깊게 기억에 남았습니다.
전시회에 ‘출현’한 폴 고갱의 타히티(Tahiti)섬에서의 작품은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것들이어서 많은 미술애호가의 관심을 끌었습니다. 구 제정러시아의 부호 세르게이 시추킨(Sergei Shchukin, 1854~1936)이 1890년대 말~1900년대 초 파리에 머무르면서, 당시 파리 화단에 불었던 현대미술에 눈을 떠 엄청난 양의 작품을 작가의 아틀리에에 찾아가 벽면에 걸려 있던 것까지 싹쓸이하다시피 구매하여, 그 많은 작품을 소리소문없이 모스크바로 보냈다고 합니다. 그러나 1922년 소련의 출현으로 그의 수장품은 차압되고, 세르게이 시추킨은 파리에 머물다가 1936년 이국땅 파리에서 잠들었다고 합니다.
앞서 언급했듯 2016년 ‘시추킨 컬렉션’을 파리 루이비통 미술관에서 볼 수 있는 기회가 왔다 하니 온 세계 미술애호가들이 파리로 몰려갔습니다. 그곳에 전시된 여러 작품 가운데, 폴 고갱의 작품, ‘너, 질투하고 있니’를 만난 기쁨을 필자는 만끽하였습니다.
폴 고갱을 주인공 삼아 저술한 ‘달과 6펜스’의 저자 서머싯 몸이 1965년 서거하자 독일 언론이 그 사실을 대대적으로 보도하면서, 생각보다 무게 있게 작가의 작품 세계를 분석하는 사실에 필자는 좀 놀라워하였습니다. 혹자는 노벨문학상을 받았어야 한다고도 주장하였습니다. 서머싯 몸이 생각보다 큰 작가였던 것을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그때, 필자는 새로운 사실에 무척 부끄러웠습니다. 그의 소설 ‘달과 6펜스’를 읽으면서 이런저런 스토리와 프랑스 화가가 남태평양 타히티섬의 이국적인 환경에서 생활하면서 풀어내는 줄거리에 푹 빠지면서도, 제목 ‘달과 6펜스’를 그저 타이틀로만 읽고 기억하였지, 그 유래에 대하여서는 한 번도 묻지 않았다는 사실을 언론에 실린 추모사에서 알게 됐던 것입니다. 한편 놀라웠고, 매우 부끄럽기까지 하였습니다.
필자는 ‘달과 6펜스’에서 당시 영국 화폐의 최소 단위인 ‘6펜스’에 담긴 메시지를 놓쳤던 것입니다. ‘6펜스에 어떤 깊은 뜻이 있을까?’를 생각해보지도 않았다는 사실에 스스로 놀라웠고, 부끄러움이 강하게 몰려왔습니다. 해설에 따르면, ‘밝은 달을 쳐다보자니 발밑 그 6펜스를 놓칠 것 같고, 그 동전을 챙기자니 밝은 달을 놓치겠다’고 갈등하는 심정을 나타낸 것임을 알았습니다.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그 책을 읽은 지 6~7년이 지난 후의 일입니다.
그런데, 어떤 지인이 ‘여섯 푼짜리 동전과 밝은 달’과의 관계의 설정이 어색하다고 합니다. 우리네 달은, 특히 청명한 가을하늘의 밝은 달을 생각하면, 그렇겠습니다. 그러나 작가 서머싯 몸은 1년 내내, 특히 가을부터 온 겨우내 비가 내리고, 짙은 밤안개로 시야가 어두운 그런 계절에 두꺼운 구름 사이로 잠깐 비친 영국의 달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 이 구석 저 구석에서 이것 명예도 갖고, 저것 돈도 챙기고 싶어 하는 많은 자의 볼썽사나운 모습을 봐야 하는 세상에 우리는 지금 살고 있습니다. 마음이 불편합니다.
창밖은 평화롭기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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