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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원의 Now&Future] ‘尹정부 남은 3년’ 반도체 넘어 새로운 성장 산업 만들라

아주경제 조회수  

곽재원 논설위원장
[곽재원 논설위원장]

일본에서 한국의 정치·경제 전문가 중 제1인자로 평가받는 기무라 간(木村幹) 고베대학교 국제협력대학원 교수가 최근 한국 경제에 대해 지적한 내용은 매우 냉철하여 섬뜩하기까지 하다. 다음 2개 단문은 그가 한국 경제의 실상에 대해 일본경제신문에 코멘트한 것을 발췌한 것이다.

하나는 “반도체에 의존하는 삼성전자의 미래가 어떻게 될 것인가는 단순히 한 기업뿐만 아니라 한국 경제 전체와 관련된 큰 문제다. 윤석열 정권은 한국의 반도체산업을 살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반대로 새로운 산업 육성의 방향은 잘 보이지 않는다. 반도체가 어느 정도 경쟁력이 있는 상태에서 어떻게 새로운 성장 산업을 만들어낼 것인가. 한국 경제는 앞으로 몇 년간 큰 갈림길에 설 것 같다.”(2024년 2월 1일, 삼성전자가 작년 대규모 적자를 낸 것에 대해)

또 다른 하나는 “‘일본 기업은 판단이 느리고 한국 기업은 판단이 빠르다. 그것이 한국 기업이 우위에 서는 이유 중 하나다.’ 한·일 비교에서 자주 언급되는 말이지만 최근에는 반대로 한국 사람들에게 ‘일본은 새로운 대책을 속속 내놓는데 우리나라는 아무것도 못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삼성이라는 한 기업의 문제를 떠나서, 그 배경에는 민주화되고 풍요로워진 한국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잃어가고 있는 상황일지도 모른다. 정치권에서도 현재 진행 중인 국회의원 선거는 좌파와 우파 세력의 스캔들 추궁과 포퓰리즘적 선심성 정책의 대결로 변질되어 한국 사회의 미래상을 놓고 경쟁하는 형태가 되지 못하고 있다. 저출산·고령화도 진행되어 어려운 상황이다.” (2024년 3월 25일, ‘삼성과 한국 경제’라는 일본경제신문 특집기획에서)

1925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아일랜드 출신의 작가 겸 비평가 조지 버나드 쇼(1856~1950)는 이런 명언을 남겼다. “낙관주의자와 비관주의자는 모두 사회에 공헌을 한다. 낙관주의자는 비행기를 발명했고, 비관주의자는 낙하산을 발명했다”고 했다. 지금 세계는 낙관론과 비관론이 치열하게 다투고 있는 형국이다. 혼돈스러운 세계경제, 잘나가는 듯 보이는 미국 경제, 침체와 회복의 갈피를 못 잡는 중국 경제, 불안정한 자세로 기지개를 펴고 있는 일본 경제 등 모든 나라가 딱히 호황이다 불황이다를 정리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보니 낙관론과 비관론은 각기 설득력이 있다. 버나드 쇼는 아마 양쪽에 귀를 기울여서 균형 있는 정책을 펴라는 얘기를 한 게 아닌가 여겨진다. 그는 1895년에 런던정치경제대학교를 설립했다.

현재 한국 경제에 대해서는 낙관론보다는 비관론이 훨씬 우세한 모습이다. 국제통화기금(IMF)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 나라 밖에서는 한국 경제를 호의적으로 진단·전망하는 경향이 있는 데 비해 국내에서는 아주 엄중하게 보고 있다. 이런 점에서 기무라 간 교수의 지적은 한국 경제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암시하는 좋은 지침이 될 것 같다.

그의 지적은 한마디로 ‘삼성전자가 현재의 경쟁력을 유지한 채 미래를 대비하는 유예된 기간에 삼성 대신 한국 경제를 끌고 갈 신산업(성장산업)을 만들어 내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삼성전자 임원 출신의 견해를 들어봤다. 그는 그 유예기간이 필경 2~3년은 될 것으로 내다봤다. 이는 향후 3년이 삼성전자를 넘어 한국 경제의 성패를 결정짓는 매우 긴박한 기간이 된다는 얘기다.

이 기간은 윤석열 정부의 남은 3년과 일치한다. 주요 일간 미디어의 보도(5월 13일자)에 따르면 마침 윤석열 대통령이 이르면 이번 주 첨단 분야 R&D(연구개발) 사업은 500억원 이상 국가 재정이 투입되더라도 예비타당성조사(예타)를 면제하는 방안을 직접 발표한다고 한다. 현행대로라면 국가재정이 500억원 미만으로 투입될 때에만 예타가 면제되는데, 첨단 분야 R&D에는 이 캡을 없애 연구 규모와 속도를 끌어올려 경쟁력을 키우겠다는 구상이다. 정부는 5월 말부터 각 부처의 예산 요구서를 받아 내년도 정부 예산안 편성 작업을 시작한다. 이에 앞서 윤 대통령이 첨단 분야 R&D 예타 면제를 천명하는 것이다. 양자·바이오·AI(인공지능)·반도체 등 첨단 분야가 그 대상이 될 것이다.

예타는 정부 재정이 대거 투입되는 사업의 정책적·경제적 타당성을 사전에 검증·평가하기 위해 IMF 외환위기가 한창이던 1999년에 도입됐다. 대규모 사회간접자본(SOC) 투자 남발 등으로 재정 낭비를 막자는 취지였다. 과학기술계에선 “5~10년간 연구개발 계획과 연도별 목표를 제시한 뒤 예타를 거쳐야 하는 현행 방식대로라면 빠르게 변하는 첨단 분야를 따라갈 수 없다”는 문제를 제기해왔다. 또 계획이 확정되면 이후엔 이를 바꾸기도 어려워 필요가 없어진 연구를 이어가야 하는 상황도 잦았다고 한다. 윤 대통령은 ‘R&D 예타 폐지’를 통해 이런 상황을 해소해 첨단 기술 개발에 속도를 내겠다는 구상이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예타에 발목 잡혀 예산 투입이 안 되는 양자기술과 위성통신 문제 등을 해소할 길이 열리는 것”이라며 “R&D 사업 예타 면제를 반영해 이듬해 예산안을 짜는 것은 정부 수립 이후 처음”이라고 말했다.

여기에는 광주광역시의 좋은 사례가 있다. 모든 지자체가 비예타 SOC 투자에 몰두할 때 광주시는 미래를 지향한 AI로 나아간 것이다. 광주광역시와 인공지능산업융합사업단에 따르면 광주시는 2020년부터 올해까지 5년 동안 총 사업비 4295억원(국비 포함)을 투입해 ‘인공지능 중심 산업융합 밸리’를 광주 첨단산업단지(북구 오룡동 1089번지 일원 첨단3지구 내 대지 4만7246㎡)에 조성해왔다. 내년부터 2029년까지 2단계 사업에선 모두 6000억원을 투입해 밸리 조성을 마무리하고 광주를 대표적인 인공지능 중심 산업도시로 육성할 계획이다.

최근 윤석열 대통령이 “국가인공지능위원회를 신설하고, 관련 업무를 직접 챙기겠다”고 한 데 대해 광주시는 즉각 환영하고 나섰다. 광주시는 대통령 주재 국가인공지능위원회 1호 안건으로 ‘광주 인공지능 2단계 사업 즉시 추진’이 가결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윤 대통령이 “인공지능·AI 반도체 분야에 2027년까지 9조4000억원을 투자하고, AI 반도체 혁신기업의 성장을 돕는 펀드를 1조4000억원 규모로 조성하겠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이 사업은 2019년 1월 국무회의에서 ‘국가균형발전 프로젝트’ 추진 방안을 확정하고 광주광역시가 제출한 ‘인공지능 기반 산업융합 집적단지 조성 사업’을 예비타당성조사 면제 대상 사업으로 심의·의결하면서 시작됐다. 향후 5년간 광주‧전남 연구개발 특구 첨단3지구에 자립형 인공지능 중심 창업단지를 조성하는 것으로 GIST(광주과학기술원)과 광주광역시, 정보통신산업진흥원(NIPA)이 공동 기획했다.
임기철 GIST 총장은 “인공지능 중심 산업융합 밸리는 아직은 절반의 성공이다. 기업과 인재가 몰려 명실공히 글로벌 AI 클러스터로 자리 잡으려면 정부의 지속적인 지원이 뒤따라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 3월 27일 한덕수 국무총리 주재로 국가첨단전략산업위원회를 열어 첨단전략산업 특화단지별 맞춤형 지원 전략을 마련했다. 여기에는 첨단산업 인력 양성 추진계획도 들어 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5월 8일 안덕근 산업부 장관, 김기남 한국공학한림원 회장을 비롯한 국내 기업·학계·관계기관 AI 분야 전문가들이 참석한 가운데 ‘AI 시대의 신(新) 산업정책’ 위원회 출범식을 했다. 전문가들이 AI가 산업의 양태를 바꿀 게임체인저가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는 데 따른 것이다. 국내 AI 분야 산학연 전문가 200여 명이 향후 6개월간 작업에 참여할 예정이다. 이와 별도로 산업부가 주도하여 자율제조, 디자인, 연구개발, 에너지, 유통, AI 반도체 등 6대 분야별 전략을 마련하여 ‘AI산업정책위원회’를 통해 매월 발표할 계획이다. 산자부에 발맞춰 과학기술정보통신부도 13일 ‘AI 연구거점 프로젝트’ 사업을 발표했다. AI 기술경쟁력 확보 및 AI G3 도약을 위해 올해 40억원을 출발점으로 2028년까지 국비 총 360억원을 투입하여 최고 수준의 국내외 유수 연구진이 함께 고난도 AI 연구, 역동적 교류를 수행하는 ‘AI 연구거점’을 국내에 구축한다는 계획이다. AI 선진국들은 국가 주도의 대규모 투자를 통해 AI 연구 클러스터를 조성하고 있다.

또 지난 2일에는 성태윤 대통령실 정책실장이 “최근 경제 성과와 민생경제, 산업 구조 성장이 이어지기 위해서는 단순히 경제부처뿐 아니라 사회 부처, 과학기술 부처, 행정안전 및 지방자치단체 간 협력을 강화할 수 있는 국가 전략적 총체적 접근이 중요하다”며 국가전략산업TF와 민생물가TF를 가동한다고 밝혔다. 국가전략산업TF는 반도체·자동차·조선 등 국민 경제에 파급 효과가 큰 국가전략산업에 대해 범부처 차원에서 유기적 지원을 담당한다. 반도체·자동차·조선 등 3개 산업은 전체 제조업 생산의 23.5%, 고용의 16%를 차지하는 우리 경제의 대들보로서 이들이 수출에서 차지하는 역할도 크게 증가했다. 두 TF는 대통령실 정책실장이 직접 이끌 방침이라고 한다.

대통령실과 정부 부처들이 한국 경제의 미래를 이끌 신성장산업을 키우기 위해 전력투구하고 있다. 너무 많은 대책이 쏟아지고 있어 정책의 경중을 판단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있으나 국가총력 체제가 가동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전략론과 경영이론의 세계적 권위자인 리처드 루멜트 UCLA 명예교수는 “전략 수립은 의사 결정이나 목표 설정이 아니다. 탁월한 우위도, 장기적인 비전도, 타사와 비교도 필요 없다. 전략 수립은 극복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포인트’를 찾아내고, 그것을 해결할 방법을 찾는 것”이라고 최신 저서 <전략의 요체>에서 설파했다.

윤석열 정부는 향후 3년간 전례 없이 복잡다단한 수많은 과제를 동시에 해결해야 하는 부담을 지고 있다. 루멜트 교수는 전략을 세우는 최선의 방법은 곤란한 과제에 정면으로 맞서는 것이라고 했다. 윤 정부에 딱 들어맞는 말이다. 한국 경제를 위한 3년의 유예기간은 일하는 사람들에게는 매우 짧은 기간이다. 윤 대통령은 난제를 정면으로 돌파하는 뚝심을 보여야 한다. 그래야 역사에 남는 대통령이 될 수 있다.

곽재원 필자 주요 이력 

▷전 중앙일보 경제부국장, 도쿄특파원 ▷전 서울대 공과대학 초빙교수 ▷전 한양대 기술경영학 석좌교수 ▷전 경기도 경기과학기술진흥원 원장 ▷현 가천대·호서대 초빙교수 ▷현 아주경제 논설위원장 

아주경제
content@www.newsbel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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