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재야, 너는 알까?
내 인생에서 가장 큰 좌절은 너였다는걸.
두 다리를 잃고나서
어떤 날은 익숙함에 무뎌져 괜찮다가도
어떤 날엔 휠체어 없인 혼자 움직일 수도 없는 막막함에 뒤덮혀 우는 날들도 많았어.
그때까지도 너는 나에게 좌절이 아닌 희망이었어.
수없이 넘어지고 무너져도 계속 살아보니까 그게 끝이 아니란걸 너에게 배웠거든.
그런데 그렇게 날 살게 해준 사람이 죽었다니..
거짓말일거야
분명 그럴 사람이 아닌데
절대 그럴 사람이 아니었는데
근데 혹시나 정말로, 내가 몰랐던 날들에 많이 아파했다면
두 발로 달려가 딱 한 번만이라도 꼭 안아주고 싶었어 선재야.
미칠 것 같은 마음이라도 이 두 발을 움직이게 할 수 없었지만,
너마저 잃은 내가 불쌍했는지 널 다시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왔어.
어쩌면 너를 살릴 수도 있을 기회가 왔어.
나는 다시 걷게 된 두 발로
늘 같았던 목적지인 너에게로 달려가.
34살의 너를 안아주진 못했지만
19살의 널 위로할 수 있는 존재가 되어서.
20살의 선재야.
모진 시간들을 부지런히 달려
겨우 다시 너에게 왔어.
그치만 이번에도 널 지키지 못할까봐 너무 두려워.
왜 하필 내가 아니라 너였는지
수십번 원망해도 바뀌지 않을 미래라면..
모든걸 잃어도 좋으니까
너만은 지킬 수 있게 해줘.
다시 바뀔 미래에 내가 없다해도
난 괜찮아.
다시 돌려주는거야.
타임캡슐에 적었던 말 기억하지?
다시 흘러가는 시간, 그게 내 선물이라고.
너는 기억못할지 모르지만
아주 오래전 너에게 받았던 선물이거든.
그래도 있잖아 선재야.
이게 정말 우리의 마지막이라면
행복했던 순간만 너의 기억에 남기를.
너가 나를 사랑했던 시간은 너무 길고 아팠으니까
내가 너를 사랑했던 행복한 시간들을 가져가.
많이 밉겠지만
너가 나 미워하는 만큼 더 사랑할게.
사랑해 선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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