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 김혜인] “낮 병동 치료를 조기 종결하겠습니다.”
의사가 아니라 내가 한 말이다. 총 6개월을 처방받은 낮 병동 치료를 두 달 만에 그만두기로 결정했다.
낮 병동 치료는 아침에 입원해서 6시간 이상 상주하며 치료받고 오후에 퇴원하는 방식이다. 외래로 예약을 잡으면 하루에 많은 항목을 진행하기 어렵지만, 낮 병동 치료는 하루에 여러 가지 항목을 집중적으로 치료 받을 수 있다.
당연히 낮 병동 치료 수요가 많다. 이를 제공하는 병원마다 대기가 길어 몇 달을 기다려야 한다.
드디어 내 아이 차례가 되었다는 연락이 왔을 때 알 만한 사람들은 모두 축하하는 분위기였다. 낮 병동에서 아이는 하루에 다섯 가지 치료를 받을 수 있다.
당초 아이에 대한 발달 지연 진단은 명백하고 신속하게 내려졌다. 반면에 치료는 혼란스러웠다. 발달이 느린 아이에게 필요하다는 치료의 종류가 너무 많았다. 감각통합치료, 작업치료, 놀이치료, 언어치료가 기본적으로 언급되었다. 우리 아이처럼 상호작용에 문제가 있는 경우에는 ABA 치료나 플로어타임도 권한다. 그 용어조차 생소한 치료를 받기 위해 아이를 이리저리 데리고 다니며 평가받았다. 한두 가지로 시작했던 치료가 점차 걷잡을 수 없이 많아졌다.
낮 병동 치료가 필요했던 이유는 이 모든 치료를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점차 낮 병동에서 제공하지 않는 치료를 위해 외래 치료도 병행하여야 했다.
또한 아이의 사회성을 위해 어린이집 생활도 포기할 수 없었다. 아이 일정은 어린이집과 각종 치료로 꽉 차 있었다.
아이는 병원에 오래 상주하는 것이 싫은 듯했다. 내 손을 끌고 자꾸만 주차장에 가서 차에 타려고 했다. 어떤 치료에서는 치료 시간 내내 칭얼대며 밖으로 나가고 싶어 했다. 아이 마음이 이러한데 과연 치료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까 의구심이 들었다.
무엇보다 내가 느끼는 스트레스와 피로감이 극심해졌다. 아이를 위해, 아니 나를 위해 숨통을 터야 했다. 엄마의 감을 믿기로 했다. 몇몇 치료를 정리하고 현재 아이에게 꼭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치료와 활동에만 집중하기로 했다.
낮 병동을 그만두기로 결심한 날, 옆자리에 새로 온 아이의 보호자가 아기를 안고 있었다. 첫째 아이가 낮 병동 치료를 받는데 둘째 아이를 데리고 왔다고 한다. 작고 앙증맞은 아기를 보며 50일쯤 되었냐고 물었더니 100일이 지났다고 한다. 세상에, 100일 된 아기가 이렇게 작았던가. 그리 오래전 일이 아닌데도 벌써 까맣게 잊어버린 듯했다.
100일 된 아기는 분유를 먹고 있었는데 절반쯤 먹더니 슬금슬금 눈이 감겼다. 자면서 젖병을 빨다가 이내 멈춘다. 젖병을 살짝 흔드니 다시 빨다가 또 멈추기를 반복한다. 한참을 그러다가 결국 깊게 잠들어 버렸다.
내 아이가 100일 무렵이었을 때, 나는 아이가 젖이나 분유를 먹다가 잠이 들면 큰일 나는 줄 알았다. 먹고 놀다가 잔다는 ‘먹놀잠’ 순서를 유지하기 위해 애썼다. ‘100일이나 되었는데 왜 아직도 먹다가 잠들려고 하는 걸까?’, ‘100일이면 낮잠도 규칙적이라던데 왜 안 그럴까?’ 고민했다. 이제 100일이 지난 아기를 보며, 이 조그마한 아기에게 뭘 그리 많은 것을 요구했나 싶다.
실제로 병원에서 보니 내 아이는 꽤 일찍부터 발달 치료를 받는 축에 속했다. 낮 병동 병실에서 내 아이가 가장 어렸다. 겨우 생후 2년 된 아이를 데리고 이런저런 치료시설에 다니며 너무 많은 요구를 했다고 후회할 것만 같았다. 훗날 두 돌 된 어떤 아이를 보며 나는 또 ‘이렇게 작다니!’ 하고 놀랄지도 모르겠다.
병원과 발달센터에 가는 날이 줄어드니 아이는 놀이터에서 노는 날이 많아졌다. 두 시간이나 놀고도 아쉬워하는 모습을 보인다. 요즘은 치료실 안 가득한 장난감보다 바깥세상이 더욱 흥미로운 듯하다.
100일 된 아기는 잘 먹고 잘 자면 그만이다. 두 돌 된 아이는 잘 뛰어놀면 그만이다. 뛰어놀기에 참 좋은 계절이다.
|김혜인. 중견 교사이자 초보 엄마. 느린 아이와 느긋하게 살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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