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을 제외한 주요국 중앙은행이 줄줄이 피벗(통화정책 전환)에 나서고 있지만 한국은행은 금리 인하 시점 조율에 애를 먹고 있다. 물가 수준이 여전히 높고 달러 강세도 이어지고 있는 데다 섣불리 금리를 내릴 경우 외국 자본 유출 위험이 있어서다. 다음주 개최될 상반기 마지막 금융통화위원회의에서도 기준금리 동결이 유력한 상황이다.
13일 금융권에 따르면 유럽 국가들은 스위스와 스웨덴을 필두로 금리 인하에 시동을 거는 중이다. 올해 3월 스위스가 주요국 가운데 가장 먼저 금리 인하를 단행했고 지난 8일에는 스웨덴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내린 연 3.75%로 결정했다. 이외에도 올 들어 비(非)유로존 국가 중 체코가 기준금리를 7%에서 5.25%로, 헝가리는 10.75%에서 7.75%로 각각 인하했다.
지난해 9월 마지막 금리 인상 이후 동결을 이어온 유럽중앙은행(ECB) 역시 다음달 금리 인하가 확실시된다. ECB 이사회는 지난 10일 ‘4월 통화정책회의 의사록’을 통해 “3월 전망에 포함된 중기 인플레이션 전망을 확인하는 추가 증거들이 나온다면 6월 회의에서 통화정책 완화를 시작할 위치일 가능성이 있다”고 언급했다.
영국 중앙은행(BOE)도 지난 9일 기준금리를 5.25%로 동결하는 한편 올 여름 금리 인하 가능성을 시사했다. 이번 통화정책회의에서 9명의 정책위원 중 2명이 0.25%포인트 금리 인하에 투표하면서 6월이나 그 다음 회의인 8월에 금리를 내릴 가능성이 높다.
미국과의 탈동조화에 속도를 내는 유럽 국가와 달리 한은은 선제적 인하에 나서지 못하고 있다. 지난 4월 2.9%로 나타난 소비자물가가 안정 목표치(2%)에 비해 여전히 높고, 국제 유가 상승과 고환율 등 물가를 다시 자극할 요인이 산재해 있어서다. 미국과의 금리 차가 더 벌어질 경우 외국 자본 유출로 이어질 수도 있다.
미국의 첫 금리 인하는 9월 이후로 점쳐진다. 이날 시카고상품거래소(CME) 페드워치에 따르면 미국이 오는 7월과 9월 금리를 인하할 가능성은 각각 25.4%, 61.2%다. 이에 따라 한은도 일러야 9월 이후에나 금리를 내릴 여지가 생긴다.
미국·유럽 간 통화정책 탈동조화 흐름은 달러화 가치를 높여 한은 통화정책에 추가적인 장애물이 될 공산이 크다. 원화 약세에 따른 수입물가 상승은 석 달 만에 2%대로 진입한 국내 소비자물가를 다시 3%대로 올릴 수 있다. 강달러가 지속된다면 이미 4월에만 60억 달러를 소진한 외환보유고의 추가 투입도 배제할 수 없다.
이정환 한양대 경제금융학부 교수는 “중소기업 부실 사태, 소상공인 부채 문제 때문에 한국이 미국보다 먼저 금리를 인하할 가능성이 아예 없지는 않다”면서도 “ECB와 달리 한은은 미국과 금리 차가 벌어질 경우 외환시장에 문제가 생길 수 있어 소극적으로 나설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한은은 미국과의 금리 차를 유지하기 위해 오는 23일로 예정된 상반기 마지막 금통위에서 기준금리를 동결할 것으로 보인다. 최근 이창용 한은 총재가 금리 인하 시점의 전면 재검토를 시사하면서 매파적 발언을 이어간 게 힘을 더했다.
이 총재는 지난 2일 조지아 트빌리시에서 연 기자간담회에서 “최근 미국 경제 관련 데이터가 좋게 나오면서 금리 인하 시점이 뒤로 밀리기 시작했다”며 “앞으로 (5월 금통위까지) 2주 동안 금통위원들과 어려운 논의를 할 것 같다”고 언급한 바 있다.
한국금융연구원도 지난 12일 현재의 통화긴축 기조 유지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금융연은 “수출 증가 영향으로 (올해) 2.5% 경제 성장을 기록하겠지만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목표 수준에 비해 높게 유지되는 상황을 고려하면 거시경제를 안정적으로 운영할 필요가 있다”며 “확장적인 거시경제 정책은 총수요 압력을 높여 물가를 자극하고 비생산적인 자원 배분을 초래할 위험이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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