캥거루와 코알라의 나라로 알려진 호주는 숨은 과학기술 강국이다. 전 세계인의 운명을 바꾼 페니실린, 구글맵, 인공 심박동기, 와이파이 등이 모두 호주에서 최초로 발명됐다. 호주는 인구 대비 가장 많은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한 국가다. 한국 인구의 절반 밖에 안 되는 호주에서 과학기술이 꽃을 피울 수 있었던 것은 지원하되 개입하지 않는 ‘기다림의 미학’이 있었기 때문이었다.이달 27일 우주항공청 개청을 앞둔 시점에 2018년 호주우주국(ASA)을 설립 후, 뉴스페이스 시대 민·관 합동으로 우주·국방 분야를 이끌고 있는 호주를 방문해 우주, 국방산업과 산학 시스템을 분석한다.
위성항법 등 우주기업 분야 협력
ASA 등 다양한 기관 보조금 받아
딥테크 벤처 지원ㆍ일자리 창출
‘발키리’ 아르테미스 투입 예정
우주 산업은 국가가 개발을 주도하던 시대에서 민간기업이 중추적인 역할을 맡는 ‘뉴스페이스(new space) 시대’로 패러다임이 변화하고 있다. 한국이 이달 27일 우주항공청 개청을 앞둔 가운데 2018년 호주우주국(ASA)을 설립한 호주는 ‘국립 우주 산업 허브’를 운영하며 민간 주도 우주산업 생태계 조성에 앞장서고 있다. 호주는 소련, 미국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자국’에서 위성을 쏘아올린 국가다. 호주 우주기업들은 ASA뿐만 아니라 미국 우주항공국(NASA)과 긴밀하게 협업하며 글로벌 경쟁력을 확대하고 있다.
◇1차 산업혁명 이끈 시카다, 딥테크 우주산업 핵심기지로 탈바꿈
호주 시드니 도심에서 20분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호주 딥테크의 홈 시카다 이노베이션즈. 시카다 이노베이션즈가 설립된 이곳은 과거 철도 조립 과정에서 마지막 단계인 엔진을 장착하던 공간이다. 과거 1차 산업혁명을 이끌었던 역사적인 장소에서 혁신적인 첨단 기술을 개발하고 상업화하는 공간으로 재탄생한 것이다.
이곳에 있는 국립 우주 산업 허브(National Space Industry Hub, NSIH)는 시카다 이노베이션즈가 NSW(뉴사우스웨일스) 자금을 받아 운영하고 있다.
4월16일 시카다 이노베이션즈에서 만난 알렉스 샤필스키(Alex Shapilsky) 우주기술 책임자는 “우주산업을 시작하는 기업의 아이디어부터 상업화까지 1:1 멘토링, 파트너십, 인큐베이팅 등 전 단계를 지원한다”며 “호주우주청(ASA)를 비롯한 다양한 기관으로부터 보조금을 받아 기업을 키우는데 집중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가장 중요한 목표는 박사를 졸업하고 연구에서 막 나온 사람들을 사업가로 만드는게 핵심”이라며 “상주 기업들이 성장하고 더 많은 고객과 직원을 고용하는 것이 관심이 있지 이들로부터 투자금을 회수하거나 지분을 얻는 것에는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샤필스키 책임자는 “이곳에는 소프트웨어, 우주추진체, 위성 항법 시스템 등 다양한 분야의 기업들이 함께 일하고 있다. 우주산업 분야의 경우 생태계를 만드는 것이 중요한 만큼 광범위한 전문가들의 협력이 가능한 것이 장점”이라고 설명했다.
시카다 이노베이션즈는 25년간 20억 호주 달러 규모의 자본금을 조달해 350개 이상의 딥테크 벤처기업을 지원했으며 6개의 기업이 13억 달러가량의 가치를 생산했다. 뿐만 아니라 1000개 이상의 특허권과 출원 상표를 획득했으며 수천개의 일자리를 창출했다.
시카다 이노베이션즈에는 50~60여 개의 기업들이 상주해있으며 우주기업 전용 공간도 별도로 운영하고 있다. 우주 기업들이 하나의 공동체를 만들어 협력하고 지원하고 기회를 모색하도록 돕기 위해서다.
시카다 이노베이션즈에 1년째 상주하고 있는 알렉산더 론(Alexander Ryan) VXB 에어로스페이스 최고경영자(CEO)는 “시카다에 입주해서 얻은 이점은 금액적으로 환산하기는 어렵지만 이곳이 없었더라면 1년 만에 상업화까지 진행시키지 못했을 것”이라며 “시카다 커뮤니티를 통해 이미 성공한 전문가로부터 조언을 받고 고객을 대하는 방법이나 투자를 받은 방법 등 사업에 중요한 부분에 대해 도움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VXB 에어로스페이스는 위성 전기 추력기를 개발하는 기업으로 AI 기술을 활용해 위성 엔진을 기존 대비 200배 이상 저렴한 비용으로 제작하는 데 성공했다. VXB는 초소형 인공위성 개발이 뉴 스페이스 시대 트렌드로 자리 잡은 만큼 추력기 소형화 작업에 집중하고 있으며 내년부터는 발사체에 실어 우주에서 테스트할 예정이다.
규모가 커져 시카다를 졸업한 스페이스 머신 컴퍼니는 호주 시드니 공과대학교 테크 랩(UTS)에서 궤도 서비스선 옵티머스(Optimus) 개발에 한창이었다. 스페이스 머신 컴퍼니가 개발하는 옵티머스는 우주를 떠돌며 위성을 유지보수해 수명을 연장시키는 궤도 서비스다. 고속도로에서 자동차에 문제가 생길 경우 긴급출동 서비스를 통해 정비 지원을 받듯 우주에서 위성에 문제가 생기면 위성을 수리해 지속가능한 우주 환경을 만드는 것이 이들의 목표다.
회사의 창업자인 라자 쿨슈레타(RAJAT KULSHRESTHA)최고경영자는 “우리 솔루션은 궤도 내에서 우주 공간에 필요한 인프라와 서비스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것”이라며 “작년에 위성 통신 사업자인 비아샛(Viasat)은 4억 달러 규모의 위성을 쏘아 올렸는데 안테나가 펴지지 않아서 수십억 달러의 손실을 보았다. 우리 같은 기업이 문제를 해결했다면 엄청난 비용을 세이브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 NASA와 협업도 ‘척척’…아르테미스 프로젝트 수행할 발키리 개발도 한창
모슨 로버스(mawson rovers)는 우주 탐사를 지원하기 위한 인프라 건설부터 유지보수 등의 역할을 하는 로봇 차량을 개발하는 기업으로 시카다 이노베이션즈의 가장 오래된 상주 기관이자 서포터 역할을 하고 있다. 모슨 로버스가 개발한 20kg의 저중량 로봇 차량인 R1은 우주에서 자동화 작업을 지원하는 로봇으로 ASA의 달에서 화성으로 가는 트레일블레이저 프로그램에 참여할 예정이다.
모슨 로버 맷 라이얼(Matt Ryall) CEO는 “미국 우주항공국(NASA), 호주우주청과도 긴밀하게 협업하고 있다”며 “올해 7월에는 R1을 우주로 보내서 냉각과 열 시스템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테스트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시드니 반대편에 위치한 호주 서부도시 퍼스에는 호주 최대 에너지 기업 우드사이드에서 운영하는 우드사이드 로보틱스 연구소가 있다. 이곳에서는 센서, 로봇, 인공지능 등을 연구해 우드사이드의 LNG 플랜트을 원격 조종하는 기술을 개발하고 나사의 휴머노이드 로봇 ‘발키리’의 소프트웨어 테스트를 진행해 나사에 패드백을 제공하고 있다. 발키리는 향후 나사의 아르테미스 프로젝트에 투입될 예정이다.
4월22일(현지시각) 우드사이드 로보틱스에서 만난 회사 관계자는 “세계 최초로 2000km 떨어진 곳에서 LNG 플랜트를 원격 조종하는 기술을 개발했다”며 “기존에는 사람이 3개월마다 시설을 검사했지만 해당 기술을 활용하면서 매시간 측정이 가능해졌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중요한 목표는 로봇이 사람의 일자리를 뺏는 것이 아니라 정보를 수집하는데 효율성을 높이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과 호주 워클리재단이 공동 주최한 ‘2024년 한-호주 언론교류 프로그램’의 지원을 받아 보도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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