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소비 부진의 근본적인 원인이 고유가와 반도체 수출 부진에 따른 것이라는 국책연구기관의 진단이 나왔다. 수출이 빠르게 증가하고 유가도 안정세를 나타내는 현 상황에서 향후 실질민간소비 여건이 점차 개선될 것이라는 의미다. 이는 야당에서 주장하고 있는 전국민 민생지원금 지급이 사실상 불필요하다고 시사한 것으로 해석된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13일 KDI 현안분석 ‘고물가와 소비 부진: 소득과 소비의 상대가격을 중심으로’ 보고서를 통해 “올해 성장률이 지난해보다 높은 2% 중반까지 오를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반도체 가격 상승의 영향으로 실질구매력이 상당폭 개선됨에 따라 민간소비 증가 여력이 확대될 것”이라며 “민간소비 부양을 위한 단기적인 거시정책의 필요성을 높지 않은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KDI는 2022년 이후 실질구매력이 정체되면서 실질민간소비가 부진을 보이고 있다고 내다봤다. 실질구매력은 명목소득을 소비자물가로 나눈 것으로 실질 민간소비를 평가하는데 적합한 소득 변수다. 2022년 이후 소비자물가가 빠르게 상승했지만 국내총생산(GDP) 디플레이터는 낮은 상승세를 보이면서 소비 대비 소득의 상대가격이 하락하면서 실질구매력이 동시에 떨어졌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 직전인 2019년 기준 2022년 실질구매력 증가율은 -0.5%, 2023년은 정체를 보였다. 전체 근로자의 실질임금을 기준으로 살펴봐도 2022년에는 0.5%, 2023년에는 -0.9% 증가율을 기록했다. 실질민간소비 여력이 축소됐다는 의미다.
이에 KDI는 GDP 디플레이터와 소비자물가 사이의 상대가격의 변동 요인 분석을 통해 실질GDP와 실질구매력 간 괴리를 살펴봤다. 상대가격 변동 요인은 수입품을 대표하는 원유와 수출품을 대표하는 반도체로 설정했다.
정규철 KDI 경제전망실장은 “수출입 제품에서 비중이 가장 크고 가격 변동성도 크기 때문에 가장 중요한 원인으로 꼽았다”면서 “사전적으로 설정한 조사를 실시한 결과 원유의 가격 상승은 상대가격의 하락 요인, 반도체의 가격 상승은 상대가격의 상승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강조했다.
이에 2022년 국제유가 급등은 상대가격을 하락시킨 주요원인, 2023년 반도체가격 급락은 상대가격을 하락시킨 주요 원인이라는 것이 KDI의 설명이다. 국내에서 생산한 재품의 가격이 올라서면 상대적으로 소비여력이 늘어나고 수입하는 제품의 가격이 상승하면 소비여력이 줄어든다는 것이다.
KDI는 올해 국제유가(두바이유 기준)가 연간 6% 상승하고 반도체 가격이 37% 오르는 것을 기준 시나리오로 정해 분석을 진행했다. 그 결과 상대가격 상승률은 0.5%의 완만한 상승추세가 나타난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마창석 KDI 경제전망실 연구위원은 “최근 실질민간소비가 부진한 원인 중 하나는 소득보다 소비재 가격이 빠르게 상승했기 때문”이라며 “올해 반도체 가격 급등의 영향으로 실질구매력이 상당 부분 개선되고 실질민간소비 부진은 개선될 것으로 판단된다”고 강조했다.
또 “실질민간소비가 증가할 여력이 있다고 판단되는 만큼 단기적으로 민간소비 부양을 위한 거시정책의 필요성은 크지 않을 것”이라며 “부양책이 오히려 현재 안정화되고 있는 인플레이션을 자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중장기적 안목에서 실질구매력을 높일 수 있는 구조개혁 정책에 중점을 둘 필요가 있다”고 내다봤다.
야당이 주장하고 있는 1인당 25만원의 민생회복지원금에 대해 정 실장은 정책에 대한 평가를 꺼리면서도 “내수부양에 일부 효과는 있겠지만 지금 필요하지는 않다고 생각한다”면서 “한동안 고물가를 잡기 위해 고금리 정책을 써왔다. 당장의 내수부양이 일어나더라도 고물가 위험이 있는 만큼 확장적 거시경제정책 기조는 현 경제상황에 맞지 않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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