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도서가 = 북에디터 정선영] 야구 시즌이 되면 나는 월요일 저녁이 제일 마음 편하다. 그날은 야구 경기가 없기 때문이다. 오랜 부진을 겪고 있는 팀을 응원하는 탓에 그나마 월요일에는 발 뻗고 잘 수 있다. 물론 한 주의 경기가 시작되는 화요일이 되면 상황은 달라진다.
최근 여기에 불면 요소가 더해졌다. 바로 다음 날 수요일에 기타 레슨이 있어서다.
학창 시절 나는 시험 전날이라고 잠을 못 이루는 타입은 아니었다. 수험생 때도 발 뻗고 잘만 잤다. 그런데 사회생활을 하면서 불면증이 생기더니 마흔이 넘은 요즘은 특히 기타 레슨을 앞두고 잠을 잘 못 이룬다. 연습 시간을 늘려도 여전히 늘지 않는 실력 때문에 속상하고, 그런 나로 인해 좌절하는 기타 선생님의 모습을 보는 것도 힘든 탓이다.
요즘 기타 선생님 눈치를 보는 일이 잦다. 지난 레슨 때는 여전히 제대로 소리가 나지 않는 각 코드 운지법을 집중 교정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C마이너 코드를 잡아보라는 선생님 말에 순간 얼어붙었다. 운지법이 떠오르질 않았다. 평소처럼 “머리가 나쁜가 봐요”라며 애써 상황을 넘겨보려 했지만, 이미 나도 선생님도 큰 충격을 받은 뒤였다.
솔직히 기타를 배우기 전까지 크게 머리가 나쁘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재수없는 말이지만 학창 시절 공부를 아주 못하진 않았고, 지금도 나름 지식 문화 산업에 종사하며 큰 무리 없이 살고 있다. 물론 나와 작업하는 저자나 파트너들의 생각은 다를 수 있다. 그런데 기타 코드, 그것도 매우 기본적인 메이저와 마이너 코드 운지법을 외우는 데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렸고, 툭하면 까먹는다.
이번에는 충격이 컸다. 자괴감에 빠졌다. “나이 들어서 그런 거야” “너 원래 몸 쓰는 건 꽝이잖아” 같은 말로 친구들은 나를 위로하려 했지만 마음은 여전히 무거웠다. 운지법이 서툰 것은 둘째 치고, 아예 떠올리지도 못하니 정말 머리가 어떻게 된 걸까.
그날 밤 나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실망감 가득한 기타 선생님 표정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아침이 되길 기다렸다가 일도 작파하고 온종일 기타 연습에 매달렸다. F와 B코드를 연습하느라 검지손가락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넥 뒤를 짚은 엄지는 다른 물집이 또 잡히려 했다. 이제는 좀 굳은살이 생긴 다른 네 손가락 끝도 크게 부풀어올랐다.
이어 그 다음 날도 눈 뜨자마자 연습을 시작했다. 무거운 마음으로 이번에는 진짜 해내고 말겠다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아픈 손가락이 더 아팠다. 너무 아파서 잠깐 쉴 때면 왼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그런데도 소리가 제대로 나지 않았고 코드를 잽싸게 짚어내지 못했다. 급기야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이 정도로 못하는데 포기해야 할까.
야구를 볼 때 나는 실책이 나올 때마다 욕을 해댔다. 경기에 집중을 안 하니까 저런 실책이 나오는 거라고. 평소에 연습을 제대로 안 하니까 저런 상황에 대비를 못하는 거라고. 죽도록 해야지 저게 뭐냐고. 응원하는 팬은 생각도 안 하냐고.
아니다. 사실 선수들은 매 경기 최선을 다한다. 누구보다 경기에 집중하고 있으며 잘하기 위해 연습도 많이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런데도 실책은 나온다. 팬들 응원에 보답하고자 하는 마음도 클 것이다. 그런데도 뜻대로 풀리지 않는 경기가 있다. 거기까지 생각하고 나니 기타 때문에 자책하고 좌절하고 우울하기까지 하던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졌다.
이쯤에서 기타를 그만두고 싶은 마음은 없다. 그렇다면 지금 내게 필요한 건 좌절감부터 털어내는 일일 테다. 나이가 들면서 깨달았다. 포기하지 않으면 세상에 이루지 못할 일은 별로 없다.
다시 한 주가 시작된다. 야구가 계속되고 나의 기타 분투기도 계속된다.
|정선영 북에디터. 마흔이 넘은 어느 날 취미로 기타를 시작했다. 환갑에 버스킹을 하는 게 목표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