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리로 어려운 소상공인·자영업자들은 일해서 번 돈을 고스란히 대출 원리금 상환에 갖다 바치는 현실에 마치 ‘은행의 종노릇’을 하는 것 같다며 깊은 한숨을 쉬었다.”
윤석열 대통령의 이 발언은 현 정부가 금융권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단면이다. 지난해 정치권을 중심으로 은행의 초과이윤세 부과와 지급준비금 상향 등 횡재세 도입에 대한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윤 대통령의 이 말 한마디가 도화선이 돼 은행권은 2조원대 상생금융안을 마련해야 했다.
윤 대통령은 금융사 수익구조에 대해서도 “은행은 공공재적 성격이 있다” “‘은행의 돈 잔치’로 국민들의 위화감이 생기지 않아야 한다”고 강도 높게 비난했다. 윤 정부 2년 동안 은행권이 그야말로 ‘수난의 연속’이었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다.
이 같은 관치금융이 이전 정부에서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금융권의 희생을 강요하는 정도는 더 심해졌다는 것이 업계의 전반적인 반응이다. 향후 3년 역시 이 같은 분위기가 달라지지 않을 것으로 예상돼 금융권의 한숨이 깊어지고 있다.
홍콩 H지수 주가연계증권(ELS)을 바라보는 정부 시선도 비슷하다. 올해 만기가 도래한 홍콩 ELS 상품의 원금 손실 규모가 5000억원을 넘어서는 등 국내 투자자 손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나자 금융당국은 ELS 판매사를 향해 선제적인 자율배상을 압박해 왔다.
금융권은 홍콩 ELS 판매와 관련해 불완전판매 등이 광범위하게 인정되면 배상 규모가 너무 커져 주주 반발을 사거나 배임 소지가 발생할 수 있다고 하소연했지만 결국 정부 의견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당국이 최소 1조원 규모의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다는 ‘제재 카드’를 꺼내 들었기 때문이다. 제재 확정 이전에 손실 배상에 나서면 과징금이 경감될 수 있다고 회유하자 금융사들로서는 손실을 감수하고서라도 무리하게 배상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다.
시장에서는 지난 2년 동안 거듭되는 이 같은 금융당국의 월권과 일방적 소통에 대해 우려 섞인 목소리를 내고 있다. 정부가 금융지주 회장 선임, 배당정책 등 개별 기업이 결정해야 할 부분에 대해서까지 의견을 표명하는 것은 지나친 개입이라는 것이다. 금리인하요구권 고지 의무, 가계대출 중도상환수수료 면제, 상생금융지수 등 새로운 상생금융 정책 도입도 연내에 추진할 가능성이 높다.
금융권 관계자는 “어느 정부에서나 금융사는 ‘동네북’이었지만 이번 정권의 ‘팔 비틀기’는 특히 힘들게 느껴진다”며 “윤 정부는 표면적으로 항상 ‘자율’을 내세우지만 현실은 금융사가 전혀 자율성을 갖고 영업할 수 없는 환경”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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