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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인의 반걸음 육아 18] 우리는 숨이 차도록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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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김혜인] 다정한 사람들이 엘리베이터에서 아이를 보고 손을 흔들며 “안녕?”하고 인사를 한다. 아이는 사람들에게 눈길도 주지 않은 채 엘리베이터 층수가 표시되는 화면만 뚫어지게 바라본다. 매일 겪는 일이지만 늘 민망하다.

문자나 숫자에 대한 관심은 자폐 스펙트럼 증상으로 많이 언급되는 사례다. 예전엔 아이가 사람에게 관심이 적다는 느낌뿐이었는데, 최근에는 숫자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엘리베이터를 유독 좋아하는 이유도 숫자 때문이었다.

아이는 벽시계를 바라보며 히죽대고 숫자가 쓰인 병풍을 자주 펼쳤다. 1부터 10까지 알려 주었더니 금세 익혔다. 발화는 안 하지만 어떤 숫자를 물어보면 정확히 손으로 가리켰다.

발바닥을 온전히 바닥에 딛지 않고 발꿈치를 들어 까치발로 걷는 습관이나, 제자리에서 빙글빙글 도는 행동도 자폐 스펙트럼으로 의심하는 모습이다. 아이가 걷고 뛰는 걸 잘하게 된 후로 이런 모습도 자주 보인다.

아이가 발달 지연 진단을 받은 이후 지난 1년 동안 자폐인지 아닌지를 고민하며 시간을 보냈다. 어떤 때는 자폐로 의심하고 어떤 때는 아니라고 안도했다.

카스(CARS, Childhood Autism Rating Scale) 검사 결과는 자폐로 진단하는 점수 미만이었지만, 상당히 근접한 점수였다. 조만간 자폐 진단 검사로 가장 확실하다고 알려진 에이도스(ADOS, Autism Diagnostic Observation Schedule) 검사를 할 예정이다. 사실 내심 자폐가 아니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러나 자폐 스펙트럼을 설명하는 자료를 읽을수록 아이가 이에 해당하거나 적어도 경계선에 있다는 느낌이다.

간혹 나도 자폐 스펙트럼의 어딘가에 있었던 게 아닐지 생각해 본다.

나도 어릴 때 늘 까치발로 걸어 다녔다고 한다. 엄마는 그런 날 보시며 발레를 가르치면 좋겠다고 생각하셨단다. 자폐에 대한 정보와 이해가 없어서, 오히려 아이도 엄마도 더 행복했을지 모른다.

유치원과 초등학교 시절에 또래와 어울리는 게 어려웠다. 돌이켜보니 중학생 때, 아침에 등교하며 교실 문을 열자마자 인사를 하는 동급생을 신기하게 여겼던 기억이 난다. 나는 교실에 들어갈 때 누구와 눈을 마주치지 않고 말없이 자리에 앉는 학생이었다. 내가 친구에게 먼저 인사한 적은 없었다. 물론 친구도 별로 없었다.

세상은 사람을 많이 다듬어준다. 성인이 되면 사람이 바뀌기가 쉽지 않다고 하지만, 적어도 나는 삼십 대 중반 이후에도 계속 사회성을 길렀다. 인사를 잘하고, 상황이나 사건보다 상대 마음을 헤아리는 법을 익혔다.

그렇다고 성향이 완전히 바뀌진 않았다. 지금도 길을 걸으며 지나가는 사람들 얼굴을 잘 쳐다보지 않는 편이다. 그래서 같이 길을 걷던 사람이 방금 지나친 사람을 봤냐고 물었을 때 봤다고 대답한 적이 거의 없다.

그러나 일상생활에서 타인과 눈 맞춤에 어려움이 있지 않다. 나는 직장을 얻었고 마음을 나눌 친구가 있으며 사랑을 하고 결혼도 했다.

아마 내 아이도 나와 비슷하게 다소 외로울 때가 많지만, 그래도 사람들과 어울리며 행복을 찾을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품는다.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할머니는 대번 아이가 두 돌쯤 된 것을 알아보셨다. “이맘때가 제일 예뻐요”라고 말씀하신다.

아이가 제일 예쁘다는 시기를 자폐 스펙트럼인지 불안해하며 보내고 싶지 않다. 발달과 상호작용 향상에 도움이 된다는 치료를 지속할 예정이지만, 그건 아이의 세상을 이해하고 아이와 소통하는 방법을 배우기 위해서다.

아이가 내게 스케치북과 크레파스를 가져왔다. 보라색 크레파스를 내 손에 쥐어 주는 행동은 스케치북에 숫자를 쓰라는 의미이다. 시계를 그려주면 행복한 미소를 짓는다.

오늘은 100을 알려 주었다.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아이가 손으로 100을 짚을 때마다 “백”이라고 말해 주니 깔깔거리며 웃는다.

벌떡 일어나 까치발을 들다가 제자리 돌기를 하는 아이와 함께 나도 “빙글빙글빙글”이라고 말하며 제자리에서 돌았다. 아이를 따라서 나도 바닥에 철퍼덕 주저앉았다. 우리는 한참이나 빙글빙글 돌다가 주저앉기를 반복하며 숨이 차도록 웃었다.

|김혜인. 중견 교사이자 초보 엄마. 느린 아이와 느긋하게 살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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