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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성어로 세상 읽기] (15)어린 풀이 봄 햇살의 고마움을 어찌 알까 – 촌초춘휘(寸草春暉)

아주경제 조회수  

유재혁 에세이스트
[유재혁 에세이스트]

지난 3일 제52회 어버이날 기념식이 장충체육관에서 열렸다. 윤석열 대통령이 현직 대통령으론 처음 참석해 행사의 의미를 더해주었다. 5월 8일은 예전에는 어버이날이 아니라 어머니만을 위한 날, 즉 ‘어머니날’이었다. 카네이션은 어머니에 대한 사랑을 상징하는 꽃이다. 초등학교 시절, 어머니날에 카네이션을 사다가 엄마 가슴에 달아드린 기억이 어렴풋하게 떠오른다. ‘아버지날’이 따로 있었을 법하지만 그렇지는 않았다. 어버이날은 나라마다 날짜와 사정이 조금씩 다르다. 

어머니날 제정 운동은 20세기 초 미국에서 시작되었다. 애나 마리아 자비스(Anna Maria Jarvis)라는 여성이 사회운동가로 활동했던 어머니의 유지를 받들어 1908년 최초의 어머니날 공식행사를 여는 등 어머니날 제정을 위한 여론전을 펼쳤다. 결국 미국은 1914년에 윌슨 대통령이 5월 둘째 일요일을 어머니날로, 1972년에는 닉슨 대통령이 6월 셋째 일요일을 아버지날로 공식 선포했다. 중국 역시 모친절(母親節)과 부친절(父親節)이 따로 구분되어 있고 날짜도 미국과 같다. 미국 방식을 그대로 받아들인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는 일제 강점기인 1930년대부터 기독교 단체들이 5월 둘째 일요일을 어머니 주일로 기리기 시작했다. 1956년부터 5월 8일이 ‘어머니날’로 공식화되었고 1973년에 ‘어버이날’로 개칭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5월 8일이 어머니날에서 어버이날로 이름이 바뀐지 반세기가 흘렀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이날의 주인공은 여전히 어머니 아닌가 싶다. 제도가 의식이나 정서를 바꾸기란 쉽지 않다. 자식들의 마음 속에서 ‘엄마’는 언제나 비교 불가, 절대 우위의 존재다. 서양이라고 별반 다르지 않은가 보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영어 단어가 무엇인지 앙케이트 조사를 했더니 1위가 Mother였다. 그럼 Father가 2위였을까? 전혀 그렇지 않다. 2위는 Passion이었다. 그 뒤를 이어 Smile이 3위, Love가 4위를 차지했다. Father는 10위권에도 들지 못했다고 한다. ‘신이 모든 곳에 있을 수 없어 어머니를 세상에 보냈다’는 탈무드의 잠언은 이 세상의 모든 어머니에게 바치는 최고의 헌사다.

당나라 시인 맹교(孟郊)는 46세란 늦은 나이에 진사(進士) 시험에 합격하여 관직에 올랐다. 관운도 좋지 않아 하급 관리로 생을 마쳤다. 그는 일생 동안 가난했다. 만년에 자식을 앞세워 보내는 참척의 아픔도 겪었다. 작품에는 은연중 작자의 삶이 반영되기 마련이라 맹교에게는 자신의 처량한 처지와 일반 백성들의 애환을 묘사한 시들이 많다. 그의 대표작 ‘유자음(游子吟, 나그네가 읊는 노래)’은 먼길을 떠나는 아들을 위하여 정성스럽게 옷을 짓는 어머니의 지극한 사랑을 노래한 시다. 

자모수중선慈母手中線, 유자신상의游子身上衣
임행밀밀봉臨行密密縫, 의공지지귀意恐遲遲歸
수언촌초심誰言寸草心, 보득삼춘휘報得三春暉

자애로우신 어머니 손에 실 들고, 길 떠나는 아들 위해 옷을 지으시네. 떠나기에 앞서 촘촘하게 바느질 하는 뜻은, 더디 돌아올까 염려하시기 때문이라네. 뉘라서 말하리오 어린 풀의 마음이, 석 달 봄볕의 은혜를 갚을 수 있다고.

아들이 기약없이 먼 길을 떠난다. 집 떠나면 고생인데 몸이라도 따뜻하게 지내라고 옷을 지으신다. 행여 돌아오기 전에 옷이 해질세라 바느질을 하고 또 한다. 어머니의 이 마음, 자식은 알까?

중고등학교 시절, 어머니는 매일 아침 우리 형제들이 학교에서 먹을 도시락을 싸주셨다. 인구 폭증을 걱정할 만큼 집집마다 자식을 많이 낳던 시대다. 요즘이야 학교에서 점심을 제공하지만, 그 시절 어머니들은 새벽잠을 설치면서 도시락을 자식 수대로 준비해야 했다. 전기밥솥도 없고 냉장고도 귀했으니 매번 새로 밥을 짓고 반찬을 만들어야 했다. 비록 흰쌀밥에 값비싼 반찬은 아닐지라도, 지금은 흔해빠진 계란후라이조차 마음껏 밥위에 얹어주진 못할지라도 자식들이 맛있게 먹고 공부 열심히 해서 훌륭한 사람이 되라는 소망과 정성이 담긴 도시락이었다. 어디 도시락뿐이랴. 어머니의 삶 자체가 자식들을 위해 바친 희생이었다. 그때는 몰랐다. 알았다고 한들 가없는 그 은혜를 어머니 생전에 갚을 수나 있었을까.

촌초는 ‘어린 풀’, 춘휘는 ‘봄날의 햇볕’이라는 뜻으로 각각 어린 자식과 어머니의 자애로운 사랑을 비유한다. 따사로운 봄 햇살이 어린 풀을 잘 자라게 하듯이 어버이는 사랑으로 자식을 키운다. 하지만 풀이 봄볕의 은혜에 보답할 수 없듯이 자식은 무엇으로도 어버이의 은혜에 보답하기 어렵다. 맹교의 ‘유자음’은 어머니의 사랑을 노래한 시로는 필적할 작품이 없다는 평가를 받는다. 자식이 부모의 은혜에 보답하기 어렵다는 뜻으로 쓰이는 성어 ‘촌초춘휘(寸草春暉)’가 이 시에서  비롯되었다.

곧 어버이날이다. 나무는 가만히 있으려고 하나 바람이 그치질 않고, 자식은 효도하고자 하나 부모는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옛 글귀가 있다. 불효자의 가슴을 치게 하는 성현의 가르침이다. 어머니날을 만든 자비스는 이렇게 말했다. 최고의 선물은 찾아뵙는 거라고. 살아계실 때 자주 찾아뵙고 틈틈이 전화를 드리는 게 낳아주고 길러주신 어버이의 은혜에 보답하는 첫걸음일 것이다.

유재혁 필자 주요 이력

△연세대 사회학과 졸업 △제일기획 근무(1985~2008) △’한국산문’ 등단 (2019)

아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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