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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 당국이 증시 부양 정책의 일환으로 준비했던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을 지난 2일 드디어 공개했는데요. 모두가 예상했던대로 세제 지원이나 제재(페널티) 방안은 빠졌습니다. 대부분 기업 자율에 맡긴 정책이고요. 외국인과 기관투자가들은 곧바로 금융주 등 저(低) 주가순자산비율(PBR)을 대거 처분했고 코스피도 크게 반등하지 못했습니다. 정부가 내놓은 밸류업 프로그램 지침(가이드라인)의 내용과 앞으로의 과제는 무엇인지 선데이 머니카페가 짚어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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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위원회와 한국거래소·자본시장연구원 등은 2일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에서 ‘기업 밸류업 지원방안 2차 세미나’를 열고 기업가치 제고 계획 가이드라인과 해설서 초안을 공개했습니다. 기업 스스로가 가치를 높일 수 있는 핵심 지표를 선정해 중장기적인 목표와 함께 계획을 세우고 이를 이행하는 과정까지 투명하게 공개하도록 한 것입니다. 공시 참여 여부는 물론 어떤 내용을 담을지도 모두 자율에 맡겼습니다.
정부는 재무 정보뿐 아니라 지배구조 등 비재무지표까지 공시 대상에 포함시켰습니다. 상장기업의 물적 분할 이후 이른바 ‘쪼개기 상’장 등 지배구조 이슈로 일반 주주의 권익 침해가 발생했다면 이를 충분히 설명하라는 취지이죠. 특히 정부는 2004년 설립해 2010년 나스닥에 상장했으나 2020년까지 이익을 내지 못했던 테슬라를 밸류업의 모범 사례로 들었습니다.
정부는 해외 투자자들도 밸류업에 관심이 많다며 성공을 자신했습니다. 김소영 금융위 부위원장도 “이번 가이드라인은 끝이 아닌 시작”이라며 “상장 기업들이 진정한 내재 가치나 기대 가치를 시장에서 제대로 평가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고요.
정부는 이달 가이드라인을 확정해 준비된 기업부터 공시하도록 한다는 방침입니다. 밸류업지수 개발과 이와 연계돤 상장지수펀드(ETF) 상장도 하반기쯤 추진할 예정입니다.
정부는 밸류업 프로그램으로 해결해야 할 다양한 지배구조 이슈 가운데에서도 모·자회사 중복 상장 문제를 콕 집었습니다. 2022년 LG화학(051910)이 알짜 배터리 사업부를 물적 분할해 LG에너지솔루션(373220)을 상장한 사례, 카카오(035720)가 카카오뱅크(323410)·카카오페이(377300) 등을 줄줄이 상장한 사례 등을 지배구조 문제로 한국 증시가 저평가를 받은 대표적인 사례로 꼽은 것이지요.
정부는 거래소 공시 규정에도 이미 예측 정보와 관련한 면책 규정이 마련돼 있는 만큼 기업 부담도 크지 않다고 주장했습니다. 목표 변경이 불가피하다면 정정 공시도 할 수 있다고 강조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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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관심을 모았던 세제 지원 등의 방안은 이번에 포함되지 않았는데요. 정부 가이드라인을 따르지 않았을 때 기업에 줄 페널티 요건도 없었습니다. 이번 가이드라인은 공시 참여는 물론이고 작성 내용까지 모두 기업 자율입니다. 일본의 경우 지난해 3월부터 자율적인 공시를 유도했으나 지난해 말까지 상장사의 26% 정도만 참여했다고 합니다. 공시 기업 수가 늘어나면서 올해 3월 말 기준 45%로 늘었으나 공시가 정착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시장에서는 기업들이 첫 공시를 내놓기까지 아무리 빨라도 2~3개월이 걸릴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습니다. 기업들 사이에서는 투자자가 비교해야 할 지표가 많아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이 모호하다는 우려도 적지 않게 나왔는데요. 숫자로 비교할 수 있는 재무지표 항목에서도 PBR·주가수익비율(PER) 등 시장 평가 지표, 자기자본이익률(ROE) 등 자본 효율성 지표, 배당·자사주 소각 등 주주 환원 지표 가운데 어떤 지표를 내세울지도 기업 자율에 맡겼기 때문이지요. 적자 기업일 경우 영업이익이 마이너스라 PBR이나 PER 등을 입력할 수 없는데 이 경우 매출·이익 증가율 중심으로 작성할 수밖에 없습니다.
당국은 구체적인 검토가 마무리되는 대로 세제 지원 방안을 발표한다는 계획이지만 여당의 총선 참패로 얼마나 이른 시간에 현실화될 지는 불투명합니다. 자사주 소각에 대한 법인세 감면, 배당소득세 조정 등이 그 내용이 될 텐데요. 기획재정부의 발 빠른 대응에 대한 시장의 기대는 크지 않은 상황입니다.
실제로 대표 저PBR주로 꼽혔던 KRX 보험·은행·증권 지수는 2일 곧바로 2% 이상 각각 내렸는데요. 모두 코스피·코스닥지수 하락률을 크게 밑돈 수준이었습니다. 이들 지수를 구성하는 삼성생명(032830), 삼성화재(000810), KB금융(105560), 신한지주, 하나금융지주(086790), 카카오뱅크, 미래에셋증권(006800), NH투자증권(005940),
한국금융지주(071050) 등 금융 종목 대다수도 하락세를 보였습니다. 외국인과 기관이 이들 종목을 순매도 상위 리스트에 올렸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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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밸류업 프로그램이 ‘맹탕’으로 끝나는 게 아니냐는 우려 속에 최근 연기금의 매수 확대는 시장의 이목을 끄는 또 다른 지점인데요. 연기금은 총선 직후인 지난달 11일부터 30일까지 코스피와 코스닥을 각각 7038억 원, 576억 원 사들였습니다. 특히 유가증권시장에서는 지난달 17일 하루를 제외하고는 13거래일 내내 순매수 행진을 이어갔다. 지난달 22일에는 코스피시장에서 1473억 원어치를 사들여 올 들어 가장 큰 순매수 규모를 기록했다. 연기금은 밸류업 프로그램 발표 당일인 이달 2일에는 21억 원을 순매도했지만 3일부터는 다시 매수 우위로 돌아섰습니다.
연기금의 총선 직후 국내 증시 매수는 다른 기관투자가들과 상반된 행보이기도 합니다. 기관은 4월 11~30일 코스피를 1조 4196억 원 팔아치우며 차익 실현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금융투자(1조 8752억 원), 보험(350억 원), 은행(49억 원), 기타금융(607억 원), 기타법인(761억 원) 등이 모두 매도 우위를 보인 가운데 투신의 순매수액도 423억 원에 그쳤습니다. 기관은 2일에도 1417억 원을 내다팔았고요.
업계에서는 최근 연기금이 대규모로 국내 증시 매수에 나선 점을 이례적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국민연금이 국내외 자산 포트폴리오 다양화를 꾀하면서 국내 주식 비중을 최근 몇 년 사이 계속 줄이는 추세였기 때문인데요. 국민연금의 중기 자산 배분 계획에 따르면 전체 자산에서 차지하는 국내 증시 투자 비중을 지난해 15.9%에서 올해 15.4%, 내년 15.0%로 줄일 방침입니다. 투자 전문가들은 국민연금이 국내 주식 보유 비중을 올 1월 말 기준으로 이미 13.2% 정도까지 낮춘 것으로 추산했습니다. 연기금은 2020년 2조 1835억 원 순매도를 시작으로 2021년 24조 1439억 원, 2022년 2조 7488억 원, 지난해 2조 9468억 원 등 4년 연속 코스피 주식을 대거 처분했습니다. 올 들어서도 1월까지는 유가증권시장에서 7151억 원 매도 우위를 보였고요.
전문가들은 국민연금의 매매 패턴 변화를 두고 여당의 총선 참패 이후에도 금융위와 기재부·금융감독원·거래소 등이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 추진에 속도를 내자 이에 발을 맞춘 행보로 해석했습니다. 연기금은 정부가 올 1월 하순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 추진 의지를 내비치자 2월과 3월 2581억 원, 2493억 원씩 코스피를 순매수한 바 있습니다. 지난달에는 총선 당일까지 뚜렷한 매매 방향성을 보이지 않다가 그 직후부터 순매수 규모를 7000억 원 이상 늘렸고요. 코스피가 지난달 11일부터 2500포인트 후반~2700포인트 초반의 박스권 흐름을 보인 점을 감안하면 연기금이 전략적으로 저가 매수에 나섰다고 보기도 힘들다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입니다.
전문가들은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의 성공적인 안착을 위해 국민연금이 정책 초기 주요 수급원이 될 가능성을 높게 보고 당분간 연기금이 외국인과 함께 국내 증시를 주도할 수 있다고 진단했습니다. 김태현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은 현 김주현 금융위원장의 후임 인사 후보군 중 한 명으로도 거론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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