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제품이 쏟아지는 소비의 시대. 뭐부터 만나볼지 고민되시죠. [슬기로운 소비생활]이 신제품의 홍수 속에서 소비자들의 관심을 끌 만한 제품들을 직접 만나보고 가감없는 평가로 소비생활 가이드를 자처합니다. 아직 제품을 만나보기 전이시라면 [슬소생] ‘추천’을 참고 삼아 ‘슬기로운 소비생활’ 하세요. [편집자]
넘을 수 없는 벽
국내 라면 시장에서 ‘짜파게티’는 그야말로 ‘넘사벽’인 브랜드다. 전체 3000억원 규모의 짜장라면 시장에서 연매출 2400억원대인 짜파게티의 시장 점유율은 80%에 달한다. 그 밑으로 연매출 100억원대의 제품들이 도토리 키재기를 하고 있다. 전체 라면 시장으로 시선을 넓혀 봐도 짜파게티 위에 선 제품은 ‘신라면’이 유일하다. 짜장라면 1위 브랜드라는 말로 짜파게티를 표현하기엔 부족한 이유다.
사실 짜파게티는 농심의 오랜 숙제 중 하나이기도 하다. 농심의 톱 5 라면은 모두 80년대생이다. 82년 출시된 ‘육개장 사발면’을 시작으로 83년 ‘너구리’와 ‘안성탕면’, 84년 ‘짜파게티’, 86년 ‘신라면’이 등장했다. 82년부터 86년까지 5년간 출시된 40대 라면들이 아직도 매출 최상단에 있다. 40년 가까이 이들을 대체할 제품이 나오지 않고 있다는 의미다.
농심은 한 차례 짜파게티의 자리를 대체할 신제품을 내놨었다. 2015년 선보인 ‘짜왕’이다. 짜왕은 출시 첫 달 600만개가 팔리며 단숨에 짜파게티를 대체했다. 성공적인 세대 교체 사례가 되는 듯했다. 하지만 짜왕은 이듬해부터 매출이 급감하며 다시 짜파게티에게 자리를 내줬다. ‘익숙한 맛’을 이기기는 어려웠다. 지난해엔 ‘하얀 짜파게티’를 내놨지만 틈새시장을 노린 니치 상품에 가깝다.
올해 농심은 또 한 번 ‘짜파게티 따라잡기’에 나섰다. 짜파게티와 결이 다른 맛을 선보였다가 ‘삼일천하’에 그친 짜왕 때의 교훈을 발판삼았다. 이번엔 짜파게티의 맛을 유지하면서 업그레이드를 꾀했다. 제품명도 ‘짜파게티 더 블랙’이다. 결이 다른 고급화로 신라면과의 공존에 성공한 ‘신라면 블랙’의 예를 따랐다. ‘블랙’을 단 짜파게티는 원조를 넘어설 수 있을까. 이번 [슬기로운 소비 생활]에서는 짜파게티 더 블랙을 맛보고 평가해 보기로 했다.
건강한 짜파게티
짜파게티 더 블랙의 가장 큰 특징은 건면을 이용했다는 점이다. 일반 라면보다 굵은 짜파게티의 면발 특징을 살리기 위해 농심이 만드는 건면 중 가장 굵은 면을 활용했다. 더욱 탱탱하고 쫄깃한 식감을 구현한 것이 특징이다.
스프도 기존 짜파게티보다 강화했다. 소고기 풍미를 새롭게 첨가하고 볶음양파분말 함량은 늘렸다. 이를 통해 짜파게티 고유의 갓 볶은 간짜장 맛을 한층 진하게 살렸다. 건더기 역시 짜파게티의 특징인 ‘콩고기’를 더 큼직하게 넣어 차별화했다.
건면을 사용한 만큼 ‘건강 마케팅’도 곁들였다. 기존 짜파게티보다 칼로리를 20% 이상 낮춰 맛과 영양을 모두 잡았다는 설명이다. 실제 짜파게티 더 블랙 1봉지의 칼로리는 465㎉다. 여기에 면에 칼슘 262㎎을 보강, 영양 밸런스도 챙겼다. 진한 맛을 위해 분말스프 함량을 늘리면서 나트륨은 소폭 늘었다.
건면을 사용하면서 중량은 140g에서 116g으로 17% 줄었다. 이 때문에 ‘한개는 적고 두개는 많다’는 비빔면 딜레마가 해소됐다. 2개가 ‘정량’이다.
이에 대해 농심 측은 “건면을 사용하면서 지방 함량이 절반으로 줄어든 것이 칼로리가 낮아진 가장 큰 이유”라며 “건면 설비 특성 상 면 중량이 더 늘어나면 품질이 떨어지게 돼 중량이 다소 줄어든 것”이라고 말했다.
짜파게티를 상징하는 유성스프가 올리브유에서 일반 조미유로 바뀐 것도 ‘프리미엄’을 표방하는 ‘블랙’ 제품으로서는 아쉬운 점이다. 농심 측은 “짜파게티 더 블랙의 제품 콘셉트인 ‘간짜장 맛’을 구현하기 위해 양파의 볶음 풍미를 극대화할 수 있는 기름을 선택했다”고 밝혔다.
신라면 블랙의 길, 짜왕의 길
신라면 블랙이 우골스프로 바디감을 강화하며 신라면 마니아들의 인정을 받았다면, 짜파게티 더 블랙은 짜파게티가 ‘싱거워졌다’고 말하는 짜파게티 마니아들을 돌아오게 할 만하다. 단맛이 지나치게 튀었던 짜왕이 초반 인기를 지켜내지 못하고 무너진 데서 온 교훈일까. 단맛과 짠맛, 고소한 맛을 모두 강화하며 짜왕보다 밸런스 있는 맛을 구현했다.
특히 굵은 건면을 사용한 것은 신의 한 수. 건면 특유의 쫄깃한 식감이 기존 짜파게티와의 차별화를 성공적으로 이뤄냈다. 농심은 최근 들어 다양한 자사 라면의 ‘건면 버전’을 내놓고 있는데, 건면의 방향성은 이런 볶음면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 조합이다.
가격에는 농심의 고민이 묻어 있다. 기존 짜파게티가 대형마트 기준 개당 896원(5개입 멀티팩 기준 4480원)인 반면 짜파게티 더 블랙은 개당 1145원(4개입 멀티팩 기준 4580원)으로 책정됐다. 짜파게티보다 28%가량 비싸지만 신라면 블랙(개당 1538원)보다는 30% 이상 저렴하다.
신라면 블랙 등 이른바 ‘프리미엄 라면’보다 확실히 저렴하게 가격을 설정해 소비자들의 심리적 부담을 줄였다. 기존 짜파게티와는 멀티팩 기준으로 1봉 차이가 있지만 가격만 보면 100원 차이다. 비싸지 않다는 인식을 준다. ‘프리미엄’ 트렌드가 지나가자 매출이 급감한 짜왕의 길을 걷지 않겠다는 의도다.
짜파게티 더 블랙이 짜파게티를 따라잡을 수 있을까. 맛으로만 평가할 수는 없다. 짜파게티는 그 자체로 ‘짜장라면’의 기준이다. 더 맛있고 덜 맛있고가 아닌, ‘짜파게티’라서 찾는다. 다만 힘이 빠진 짜왕을 대신해 짜장라면 2위로 치고 올라온 오뚜기 ‘짜슐랭’을 견제할 만한 잠재력은 충분해 보인다.
*본 리뷰는 기자가 제품을 농심으로부터 제공받아 시식한 후 작성했습니다. 기자의 취향에 따른 주관적인 의견이 포함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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