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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만5433건의 전세사기, ‘선 구제 후 회수’가 제대로 된 방법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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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서민 임차인의 주거 불안을 야기하고 심각한 사회적 혼란을 끼치는 전세 사기 보증금 미반환 문제는 끝나지 않았다.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몇몇 임차인이 극단적 선택을 한 이후인 지난해 6월 전세사기피해자지원 및 주거안정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된 후, 2024년 4월 17일을 기준으로 1만5433건의 전세 사기가 확인됐다.

이후 법 제정 당시부터 더불어민주당 및 정의당을 중심으로 전세 사기 피해자의 보증금반환채권을 주택도시보증공사(HUG) 등이 직접 매입하여 피해 임차인을 구제하라는 소위 ‘선 구제 후 회수’ 방안 도입 요구가 거셌다. 이에 따라 ‘선 구제 후 회수’를 담은 전세사기특별법 개정안은 야당 주도 아래 국회상임위원회를 통과하고 본회의에 직회부되었다. 이번 총선에서 과반의석을 얻은 야당이 강력하게 밀어붙인다면 통과시킬 수 있다.

그런데 선 구제 후 회수 방안이 과연 효과적인 피해 임차인 구제 방법일까.

전세제도는 본질적으로 임차인의 주택 점유와 인도를 통해 전세보증금채권을 담보한다. 전세계약을 체결할 때 보증금이 주택가격의 70%를 넘도록 계약하지 말라는 이야기가 나오는 배경이다. 임차인 보호를 위하여 제정된 주택임대차보호법은 채권 미반환 시 임차인이 물권과 같은 효력인 선순위, 대항력을 유지하게 해주고 경매 절차를 거쳐 주택의 환가를 임차인에게 반환하도록 했다.

현행 전세사기특별법은 임차인에게 우선매수권을 부여했다. 임차인이 경매 절차에 직접 참여하여 주택을 취득할 수 있고, 이 경우 취등록세 감면, 저리대출 등의 혜택을 받는다. 선순위 대항력을 갖춘 대다수 전세보증금미반환 피해자의 대상주택가격은 자신의 전세보증금 언저리에 있고, 임차인은 보증금을 회수하기 전까지 강제로 쫓겨나지 않는다.

특별법 개정안은 이에 더해 전세사기피해주택 임차인이 임차보증금반환채권의 공공 매입을 신청(28조의2)할 수 있도록 했다. HUG 등 채권매입기관은 임차보증금반환채권을 ‘공정한 가치 평가’를 거쳐 매입할 수 있고, 이 경우 채권매입기관의 매입가격은 주택임대차보호법 제8조에 따라 우선변제를 받을 보증금의 비율 이상으로 한다(28조의4). ‘선 구제 후 구상’ 절차다.

이는 전세보증보험 구조와 유사하다. 전세보증보험은 보험 가입자가 피해를 입을 경우 보증기관이 우선적으로 전세보증금을 되돌려주고 사후적으로 경매 절차를 통하여 이를 회수하는 구조다. HUG에서 전세보증보험의 가입 한도를 공동주택 공시가격의 126%로 제한하는 반면, 특별법은 ‘공정한 가치평가’를 거쳐 매입할 수 있다는 점이 둘의 차이다.

그런데 현행 제도상 ‘전세보증채권의 공정한 가치평가’를 과연 할 수 있을까?

전세보증금채권을 평가하려면 임차인의 전세보증금채권 뿐만 아니라 해당 주택의 낙찰가격을 추정해야 하고, 전세보증금채권과 경합하는 다른 채권 가격도 모두 계산해야 한다. 국세, 지방세 등 조세채권 중에서도 법정기일을 따져서 전세보증금채권에 앞서는 선순위 채권이 있는지, 그 가격은 얼마인지 확인해야 한다. 선순위 근저당이 있다면 근저당권 설정 시 약정된 내용을 알아야 하는데, 현재의 시스템에서 경매법원이 아닌 정부는 이를 알 수 없다.

실제 평가에 나설 경우 발생할 문제는 다음 사례를 보면 알 수 있다. 2024년 5월 1일 기준 현재 서울시 경매 진행 건수는 2755건인데, 이중 강서구 화곡동과 양천구 신월동의 경매 진행 건수만 739건으로 전체의 26.8%를 차지한다. 최근 2개월간 낙찰된 화곡동 소재 다세대주택 57건을 추출하여 분석해 보았다. 감정가격 대비 낙찰가격(선순위 대항력이 있는 임차인의 경우는 임대차보증금 합산 기준, 임차인 본인낙찰은 제외)은 최저 65%에서 최대 110%까지 넓은 범위에 분포되어 있다. 임차보증금 대비 낙찰가격 또한 최저 74%에서 최대 170%까지 분포되어 있다. 그만큼 전세보증금 가격과 주택가격의 분포 범위가 넓어서 정확한 전세채권가격을 산정하기가 어렵다.

현행 시스템상 전세보증금채권이 다른 채권과 경합하는 경우 타 채권의 정확한 금액을 확인할 방법이 없는 데다, 억지로 가격을 산출한다 해도 매우 부정확한 채권평가에 많은 시간과 비용을 들여야 한다.

채권 평가 절차를 거친다고 하더라도 문제는 있다. 구제가 이루어진 후 해당 주택은 관리주체가 모호해진다. HUG는 전세보증보험 가입자에 대한 보증금반환과 채권 회수 절차만으로도 인력이 부족하다며 비용투입에 난색을 표하는 실정이다. HUG의 지난해 보증사고금액은 4조 원을 넘었고, 그로 인해 HUG의 당기순손실은 3조8천억 원으로 역대 최대였다. 구제가 이루어지고 난 후 임차주택은 관리의 사각지대로 방치되고, 그 결과 새로운 수요자를 찾는데 더 긴 시간이 걸리게 된다.

즉 중저가 다세대주택 임대·매매 매물 공급이 제대로 되지 않아 오히려 주택 부족 문제를 심화할 수 있다. 지금도 다세대주택 전세 기피 현상으로 공실이 늘어나고, 아파트 전세 쏠림으로 전세 가격이 오르는 부작용이 발생하고 있다.

정치권이 나서서 선순위 대항력을 갖춘 임차인에게까지 선 구제 후 회수를 신청할 수 있도록 한다면 행정적·사회적 비용을 고려할 때, 임차인 보호를 위해 큰 실익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

▲전세사기 등의 여파로 비(非)아파트를 중심으로 전세 거래가 줄어든 가운데 지난달 24일 서울 시내 한 부동산 중개업소에 다가구주택·빌라 전세와 월세 매물 정보가 붙어 있다. ⓒ연합뉴스

실무적으로 전세 사기 피해를 규정하기 어렵다는 문제도 있다. 주택건설업자와 공인중개사 등이 조직적으로 연루된 전세 사기와 전세 및 매매가격 변동으로 인한 전세 보증금 미반환 사고는 구분하기 어렵다. 최초 건축 당시에는 전세 사기꾼 조직이 소유하고 있었더라도 이를 신용불량자, 노숙자나 일반투자자에게 매도한 경우가 많은데, 신불자·노숙인은 사기꾼이 아니다. 전세 사기인지, 역전세인지, 단순 보증금 미반환인지 여부가 불분명하다.

전세 사기꾼 소유 주택의 임차인이라고 해서 반드시 피해가 발생하는 것도 아니다. 수백, 수천 채를 갖고 있었던 전세 사기꾼의 임차인이라도 보증금이 집값을 넘지 않았다면 피해가 없다. 반면 일반 역전세 임차인이라도 과다한 보증금이나 주택가격변동으로 인해 피해를 입을 수 있다. 그러다 보니 전세사기피해지원위원회는 많은 피해자를 구제하기 위하여 여러 정황을 개별적으로 살피고 피해자 범위를 폭넓게 해석하고 있다.

‘선 구제 후 구상’이라는 과도한 지원이 아니라, 현 제도 상 지원책으로도 전세 사기 문제에 상당 수준의 대응이 가능하다. 일반적으로 임차인이 주택임대차보호법이 규정한 선순위, 대항력을 잘 유지하고, 주택가격이 전세금을 회수할 만큼 충분하다면 큰 피해는 발생하지 않는다.

주택가격 대비 터무니없이 높은 가격으로 전세 계약을 체결한 경우 외에는 거의 대부분의 전세보증금을 주택 환가를 통하여 해결할 수 있다. 경매 절차를 통해 시장 내에서 문제 해결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최고가 낙찰금액을 기준으로 하되 물권과 채권이 경합하는 경우, 다수 채권 간 경합이 있는 경우에 순위를 정해주고 배분하는 것이 바로 경매 절차다. 선순위 대항력을 갖추고 있는 임차인의 경우에는 경매절차를 통하여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

경매 절차가 종료되어 자신의 보증금에 가까운 금액을 회수할 때까지 임차인은 기존 살던 주택에서 온전히 주거 유지가 가능하며, 주거를 이전해야 할 필요성이 있는 경우에도 임차권등기명령제도를 통하여 선순위 대항력을 유지할 수 있다. 더구나 정부는 피해자 보호를 위하여 임차인에게 소송 및 경매 절차 등에 소요되는 비용을 일부 지원한다. 또 각 지방자치단체와 주택도시보증공사 등에서 법률상담을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따라서 보증금미반환 주택은 문제가 예상되는 HUG의 구제가 아니라, 정상적인 경매 등의 절차를 통하여 조속히 권리관계를 확정하고 그에 따라 시장에서 안전하게 주택 수요자들에게 공급되도록 제도를 개선하는 것이 주택시장 안정에 더 도움이 된다.

선 구제 후 구상의 범위를 모든 전세사기피해자로 넓혀놓으면 오히려 진짜 구제를 받아야 하는 절박한 주거 피해자의 피해가 더 커질 수 있다. 대표적인 피해사각지대는 선순위 근저당권으로 인하여 전액 또는 일부 변제를 받지 못하는 후순위 피해자나 신탁사기 피해자, 다가구주택 후순위 피해자들이다. 이들에 대해서는 개별적인 사정을 조금 더 면밀하게 들여다보고 현행 법률의 범위와 한계를 점검해 보다 구체적인 구제책을 법률에 담아내는 것이 필요하다. 즉 이들이야말로 정치권의 도움이 필요하다.

야당 단독으로 통과시켜 본회의에 직회부되어 있는 전세사기특별법 개정안은 충분한 검토없이 졸속으로 만들어졌다. 정말 임차인들을 보호할 생각이 있다면 법안을 이렇게 만들면 안 된다. 임차인 보호와 부동산 시장 전체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고려 없이 졸속으로 만든 법안으로 전세 사기 피해자의 고통과 눈물을 닦아준다고 호도해서는 안 된다. 전세사기 문제는 윤석열 정부 들어와서 갑자기 생긴 문제가 아니다. 문제의 원인을 만든 데는 문재인 정부도 상당한 책임이 있다. 그런데도 충분한 실태 파악도, 검토도 없는 졸속 법안밖에 만들지 못했다는 것은 피해자 보호에 관심이 없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윤석열 정부의 무능과 불통에 숨이 막히는 국민이 야당에 과반의석수를 만들어줬건만, 진정 민생과 서민 삶을 돌보지 않고 무능하고 무책임하기는 그 나물에 그 밥 아닌가.

프레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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