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석 달 만에 2%대로 내려앉았지만, 여전히 과일값은 잡히지 않는 모양새다. 배 가격은 역대 최고 상승률을 기록했고, 양배추도 1년 11개월 만에 가장 큰 폭으로 뛰었다. 먹거리 가격 강세가 지속되면서 장바구니 물가 부담이 줄지 않고 있는 것이다.
석유류 물가도 2개월 연속 상승하면서 언제든 다시 물가 상승 압력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석유류 가격이 오르면 교통비, 농수산물, 가전제품 등 경제 전반의 가격에 영향을 미치면서 물가 상승 폭이 더 커질 가능성이 있다.
◇ 잡힐 듯 잡히지 않는 과일값에 정부 ‘진땀’
통계청이 2일 발표한 ‘4월 소비자물가 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는 113.99(2020=100)로 1년 전보다 2.9% 올랐다. 이는 전월(3.1%)보다 0.2%포인트(p) 하락한 것으로, 석 달 만에 2%로 둔화한 모습이다.
그럼에도 농축수산물 가격은 여전히 강한 상승세를 기록 중이다. 농축수산물 가격은 전월보다는 2.4% 하락했지만, 품목별로 여전이 가격이 고공행진 하는 것들이 있어 소비자 부담은 지속되고 있다. 과일, 채소, 생선, 해산물 등 기상 조건이나 계절에 따라 가격 변동이 큰 55개 품목 물가를 반영하는 신선식품지수는 지난해 같은 달보다 19.1% 올랐다.
특히 과일값이 잡히질 않는 모습이다. 신선과실은 전년보다 38.7% 올랐다. 농축수산물은 전년보다 10.6% 올랐고, 농산물만 따로 떼어 보면 20.3%로 상승 폭이 더 크다. 배 가격은 102.9% 상승해 1975년 1월 통계 작성을 시작한 이후 가장 큰 폭으로 올랐다. 사과 가격도 80.8% 오르며 높은 상승세를 지속했다.
신선채소는 전년 동월보다 12.9% 상승했다. 양배추 가격은 기상 여건 악화로 48.8% 오르며 1년 11개월 만에 최대 상승 폭을 보였다. 배추 가격은 전년 같은 기간보다 32.1% 올랐다. 정부가 지난 3월부터 약 1500억원 규모의 과일값 긴급가격안정 자금을 투입하고 있지만, 상승세를 꺾기엔 역부족인 모습이다.
농림축산식품부 관계자는 “사과와 배는 7월 이후 출하될 예정이라 그전까지는 가격 강세가 이어질 것”이라며 “4월부터는 참외, 5월에는 수박, 6월에는 복숭아와 포도 등 제철 과일이 나올 예정이라 과일값이 다소 안정되길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농축수산물의 전반적인 가격 흐름을 보면 4월이 3월보다 하락했으며 5월에는 기상 여건이 개선되면서 조금 더 안정적인 흐름을 보일 것”이라면서 “품목 수급과 가격 동향을 보며 지원 규모나 품목을 조정해 나갈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정부는 배추와 양배추, 당근 등 농수산물 7종에 대해 새롭게 할당관세를 적용한다. 할당관세는 일시적으로 관세를 낮춰주는 것을 말한다. 정부는 민생 밀접 분야에 대한 담합 등 가격 상승을 부추기는 시장에 대한 감시도 강화할 계획이다.
◇ 중동 리스크 發 국제유가 상승도 불안 요인
이란과 이스라엘 간 갈등 등 중동 불안으로 인한 국제유가 상승도 물가에 불안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최근 배럴당 90달러를 돌파했던 국제유가 상승 여파로 석유류는 전년 같은 달보다 1.3% 올랐다. 지난 3월 14개월 만에 플러스로 전환한 이후 2개월 연속 오름세를 이어간 것이다. 물가상승률 기여도는 0.05%p로 전월 수준을 유지했다.
공미숙 통계청 경제동향통계심의관은 “워낙 중동 정세가 불안정했는데 석유류 가격이 생각보다는 많이 오르지 않았다”며 “외생변수인 석유류 가격을 주의해서 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석유류 가격이 상승하면 에너지, 연료비와 제조 산업, 농업과 식품 산업 전반 가격을 밀어 올릴 수 있어 정부도 예의주시하고 있다. 기재부 관계자는 “석유류 가격이 국제유가 상승기에 편승해 과도하게 인상되는 일이 없는지 점검을 강화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향후 물가 흐름에서도 유가와 농산물 가격이 주요한 요인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김웅 한국은행 부총재보는 “근원물가를 중심으로 둔화 추세를 나타낼 것으로 예상된다”면서도 “지정학적 리스크 전개 양상에 따른 유가 추이, 농산물 가격 강세 지속 기간 등과 관련한 불확실성이 큰 상황”이라고 했다.
정부는 전반적으로 물가 상승세가 둔화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기재부 관계자는 “(물가는) 둔화 흐름을 재개하고 있는 모습”이라며 “다만, 최근 국제유가 변동성이 확대되고 기상 여건 등 불확실성이 여전한 만큼 정부는 2%대 물가가 조속히 안착할 수 있도록 총력 대응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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