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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돌아보기] 아이들이 물주인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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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인희 논설위원
함인희 논설위원

다산(多産) 시대, “자기가 먹을 건 스스로 가지고 태어난다.”는 어른들 말씀으로 위안을 삼았건만, 저출생(低出生) 시대, 정작 자녀 수는 격감하는데 “아이는 돈이 너무 많이 들어 못 낳겠다.”는 푸념이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아이가 언제부터 ‘돈 먹는 하마’가 되었는지, 정말 궁금하다.

집집마다 아이들이 넘쳐나고 거리마다 아이들이 꼬물거리던 시절, 아이를 주제로 한 방송 프로그램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거의 없었다. 한데 요즘은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 ‘아빠 어디 가’의 뒤를 이어 ‘슈퍼맨이 돌아왔다’ ‘금쪽 같은 내 새끼’ 등 아이를 주인공 삼은 프로그램이 넘쳐난다. 랜선 이모 삼촌까지 생겨났다나 어쩐다나.

세 살짜리 아들을 키우는 조카며느리 이야기에 따르면 요즘 ‘아이는 아이템빨로 키우는 것’이란다. 하기야 아이가 배 속에 있을 때부터 엄마들은 태교에 좋다는 음악을 찾아 듣고, 임산부 건강에 좋다는 각종 영양제에, 임산부의 매력을 돋보이게 해주는 임부복에, 그것도 모자라 불러오는 배를 기념하기 위해 만삭 사진까지 찍는다. 아이 낳을 산후조리원 쇼핑하는 것도 중대사다. 연예인이 이용했다는 곳으로 입소문이 나면 웬만한 월급쟁이는 꿈도 못 꿀 만큼 비싼 이용료도 마다하지 않고, 럭셔리한 서비스가 기다리는 그곳에 자신을 맡긴다.

이름하여 마미산업의 규모가 날로 팽창 중이다. 모유 수유 도우미, 아이 걸음마 도우미, 배변 훈련 도우미, 연령별 생일파티 플래너, 베이비시터 감시용 카메라 등은 지금 미국에서 엄마들 입소문을 타고 성행하는 서비스 품목이라 한다. 아마 이런 것들 중 상당수는 한국 땅에 이미 상륙했거나 머지않아 우리의 일상 속으로 들어올 것이 분명하다.

와중에 어린아이를 의미하는 키드와 영향력을 의미하는 인플루언스의 합성어 ‘키드 플루언스(kid-fluence)’라는 신조어를 만났다. 적어도 몇 년 전만 해도 어린이를 주(主) 고객으로 한 상품은 일단 엄마라는 문지기를 통해 판매를 권유하는 ‘게이트키퍼론’이 우세했다고 한다. 이 학습지가 아이의 수학 문제 풀이 능력을 키우는 데 탁월하니 한번 써보시겠습니까? 이 영양제를 아이에게 먹이면 키가 쑥쑥 큰다고 하니 한번 먹여보시겠습니까? 하는 식이었다는 것이다.

한데 이제는 어린이만을 대상으로 한 케이블 채널도 다양해졌고, 어린이들이 선호하는 동영상 사이트도 넘쳐나기에, 엄마를 건너뛰고 아이들에게 바로 접근해서 상품 판매를 시도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귄위주의적이었던 자신의 부모 스타일에 반감을 가진 젊은 부모들은 자녀의 의견을 존중하려는 의지가 강하다 보니 정말 키드 플루언스의 시대가 열렸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그놈의 게임기만큼은 절대로 사주고 싶지 않았는데, 자기만 게임기가 없어 친구들 사이에 왕따가 되고 말았다며 눈물을 뚝뚝 흘리던 아들 녀석을 위해, 눈물을 머금고 그놈의 게임기를 사주고 말았다.”는 사연은 맘카페에 단골로 올라오는 하소연임에도, 매번 뜨거운 공감을 불러일으킨다고 한다.

어린이날 즈음해 손주 녀석들 장난감이라도 사줄 겸 이마트를 갔을 때 일이니, 10년도 더 지난 이야기다. 초등학교 4학년 정도로 보이는 여자아이 넷이 함께 왔는데, 아마도 친구의 생일파티를 준비하러 온 듯했다. 한 친구가 “너 ○○(남자아이 이름인 듯) 초대했어?” 묻자 생일을 맞은 친구가 고개를 저으며 아니라고 했다. 그러자 “너 ○○가 네 이상형이라고 했잖아?” 다시 확인하니, “세상에 이상형이 어딨니? 그런 건 없어.” 하며 깔깔 웃는 것이 아닌가. 초등학교 4학년만 돼도 동요 대신 K-팝을 즐기고, 5~6학년이 되면 하나둘 화장을 시작한다고 하니, 지금도 어린이날이 돌아오면 “날아라 새들아 푸른 하늘을, 달려라 냇물아 푸른 벌판을~” 흥얼대는 세대로선 세월의 흐름이 무상하기만 하다.

가족이야말로 사회적 삶의 핵심을 이루는 토대요 사랑과 돌봄은 여전히 가족의 몫이라는 인식이 강고한 상황에서, 사랑과 돌봄은 끊임없이 아웃소싱되고 있고, “탈상품화”를 고수해야 할 가족은 상품 시장의 프런티어가 되고 있는 지금의 상황이야말로 모두를 당혹스럽게 한다. 어쩌면 결혼도 기피하고 아이도 낳지 않겠노라는 결심의 이면에는, 친밀한 삶 속으로 침투한 과도한 상품화에 대한 부담과 불안과 분노가 깊숙이 자리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데일리임팩트
content@www.newsbel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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