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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춘 칼럼] 일본의 AI전략을 주목해야 할 이유 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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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춘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정성춘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필자가 대학원에서 한창 논문을 쓰던 1990년대 초중반, 개인용 컴퓨터와 인터넷이 급속히 보급되면서 세상은 완전히 변하였다. 커서만 깜빡이던 바탕화면을 마주하고 어려운 명령어를 입력하면서 컴퓨터를 조작하던 것이 불과 30년 전이다. 그러던 것이 개인용 컴퓨터의 운영체제가 개선되고 인터넷 보급과 함께 정보 접근성이 개선되면서 새로운 세계가 열렸다. 그 세계가 다시 한번 전혀 다른 세계로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인공지능(AI)의 세계가 바로 그것이다. 인공지능 전문가들은 현재 진행되고 있는 인공지능 혁명이 단순한 혁신을 넘어 인류 역사에서 새로운 지평을 여는 획기적 대사건이라고 주저 없이 평가한다. 그만큼 인공지능이 가져올 정치, 경제 및 사회적 변화가 크고 나아가 군사 및 외교적으로도 엄청난 파급력을 가지면서 글로벌 패권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인공지능 개발과 산업화를 둘러싼 국제경쟁은 날이 갈수록 더 치열해지고 있으며 각국은 자국에 인공지능 생태계를 안정적으로 구축하기 위해 다양한 정책적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가까운 일본 또한 인공지능과 관련한 정책에 매우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그 하나의 사례로 최근 우리나라 뉴스에서 크게 주목을 받은 것이 미국 빅테크 기업들의 대일 투자 증가이다. 미국의 대표적인 클라우드 서비스기업인 오라클은 향후 10년간 80억 달러(약 11조원)를 투자하여 도쿄와 오사카에 있는 데이터센터를 증설한다고 발표하였다. 마이크로소프트도 향후 2년간 29억 달러(약 4조원)를 투자하여 데이터센터를 설치할 예정이다. 아마존은 22조원을 투자하여 클라우드 서비스를 확충한다. 이처럼 미국 기업들의 대일투자가 증가한 배경에는 일본의 인공지능 시장 및 정부정책을 둘러싼 대내외적인 다양한 요인들이 있다. 일본은 한편으로는 우리나라와 경쟁하는 경쟁자이면서 동시에 우리나라가 진출할 수 있는 시장이라는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향후 인공지능과 관련하여 일본의 발전 가능성을 이해하기 위해 최근의 일본시장 및 정책동향을 면밀히 모니터링하는 노력이 필요한 이유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일본의 인공지능 정책과 관련한 다음의 사항은 주목할 만하다.

 첫째, 정부의 AI전략과 관련한 추진체제가 정비되었다는 점이다. 일본 정부는 2023년 5월에 내각부 산하에 일본 정부 AI전략의 사령탑으로서 ‘AI전략회의’를 설치하였다. AI전략회의가 설치되기 이전에는 각 정부부처별로 별도의 정책이 추진되었으나 이를 통합하는 주체가 새롭게 설치된 것이다. 예를 들면 총무성은 AI의 연구개발과 이용촉진에 관련한 정책을 중시한 반면, 경제산업성은 AI 거버넌스에 관한 정책에 중점을 두어 왔다. 경제안전보장담당장관(예: 타카이치 장관)은 인공지능 발달에 동반되는 다양한 위험에 대비를 강조하는 반면 디지털 장관(예: 고노 장관)은 인공지능의 활용을 강조하고 지나친 규제가 인공지능의 가능성을 꺾을 수 있음을 경계하였다. 이처럼 각 부처의 정책담당 영역에 따라 따로따로 전개되던 정책이 AI전략회의를 중심으로 종합적인 전략을 입안하는 체제가 갖추어졌다고 볼 수 있다. 이 사령탑을 중심으로 경제산업성, 총무성, 디지털청 등 관계부처가 모여 정책을 상호조정하는 것이 가능해진 것이다.

 둘째, 일본의 AI 전략은 엄격한 법률에 의거한 규제보다는 이른바 연성규제(Soft Law)에 의한 유연한 대응을 특징으로 한다는 점이다. 앞서 언급한 AI전략회의는 최근의 성과로서 2024년 4월에 ‘AI사업자 가이드라인(제1.0판)’을 발표하였는데 이는 강제력이 있는 법률이 아니라 AI 관련 사업자(개발자, 제공자, 이용자)들이 자율적으로 준수하도록 노력할 것을 촉구하는 권고이다. 생성형 인공지능 개발로 인하여 인공지능이 가져올 편익과 더불어 위험성에 대한 우려도 높아지는 상황에서 각국은 위험성에 대응하기 위한 규범의 정비에 분주하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유럽의회는 2024년 3월 ‘AI규제법'(AI Act)을 통과시켰는데 이는 인공지능의 위험성에 대비한 다양한 규제를 법률적으로 강제하는 최초의 사례이다. 법률 위반 시 글로벌 매출의 최대 7%까지 벌금을 부과하도록 하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혁신을 저해한다는 비판이 있다. 다만 유럽은 이 법률을 통해 인공지능과 관련한 규범을 선도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한편 인공지능 개발이 가장 앞서 있는 미국에서는 2023년 10월에 기업에 의한 자율적 규제를 기반으로 한 AI규제 행정명령이 서명되었다. 다만, 미국은 최첨단인공지능에 대해서는 정부에 의한 안전성 심사를 의무화하였다. 일본은 미국과 같이 기업의 자율적 규제를 요구하는 정도에서 대응하고 있다. 그 이유로서 법률의 정비는 인공지능 기술의 빠른 변화 속도에 제대로 대응할 수 없다는 점, 세세한 행위규제는 기술혁신을 오히려 저해할 수 있다는 점, 나아가 인공지능이 저출산고령화에 따라 발생한 다양한 사회적 과제(예: 노동력 부족)를 해결하는 데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점 등을 들고 있다. 법률이 아니라 가이드라인을 통해 인공지능 관련 기업들이 스스로 자율적으로 규제하되 기술 및 사회경제적 변화에 따라 가이드라인의 내용을 진화시키고 나아가 법률적 대응이 필요할 경우에 대비한다는 전략이다. 실제로 ‘AI전략회의’는 향후의 과제로서 최첨단범용인공지능(이른바 AGI)에 대한 규제를 법률 수준으로 강화할 필요가 있는지, 규제의 내용을 어떤 수준으로 할 것인지 등을 논의할 것으로 보인다.

 셋째, 일본은 인공지능 산업의 생태계 형성에 매우 적극적이라는 점이다. 앞서 언급한 미국 기업들의 일본투자는 이러한 노력의 결과라고 해석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일본 정부는 일본의 공공기관, 기업, 병원, 교육기관의 인공지능 수요가 매우 클 것이며 이를 통해 그동안 부진했던 일본의 생산성을 향상시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기대하고 있다. 일본 경제를 새롭게 도약시킬 수 있는 매우 큰 기회라고 보고 있는 것이다. 그런 만큼 일본 정부는 인공지능 산업의 발달에 꼭 필요한 데이터, 알고리즘, 그리고 반도체를 기반으로 한 데이터센터의 확충에 매우 적극적이다. 다만 최첨단범용인공지능 개발에서 뒤처져 있다는 점을 고려하여 미국과는 다른 발전 전략을 구사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즉 의료, 법률, 금융, 교육 등 분야를 선별하고 일본 국내의 고품질 데이터를 확보하여 고성능/경량 인공지능을 개발하여 일본 국내시장을 공략한다는 전략이 실현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이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데이터센터나 최첨단 반도체 생산 등 하드웨어의 구축도 요구되는데 최근 반도체 전략을 통해 TSMC의 첨단 반도체 공장을 구마모토에 유치하였고 라피더스를 설립하여 첨단 시스템 반도체 생산 능력을 강화하는 등의 성과를 냈다. 미국 빅테크 기업들의 데이터센터 유치에도 성공하였다. 미·일 기술동맹을 활용한 전략이 성과를 냈다고 볼 수 있다.

인공지능을 글로벌 패권의 핵심 요소로 생각하는 미국에게 일본은 가장 신뢰할 수 있는 국가이며 이것이 인공지능 산업에서의 미·일협력 강화로 이어진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일본 정부도 양질의 데이터 공급을 위한 제도적 기반 마련, 고성능 컴퓨팅 인프라 구축을 위한 지원, 해외 유력기업의 국내 투자유치를 위한 보조금과 세액공제 등 파격적인 지원책을 통해 인공지능 산업의 생태계 구축에 적극 나서고 있다. 일본은 신속한 디지털 전환에 실패한 뼈아픈 경험이 있다. 다가오는 인공지능의 시대, 일본은 과연 새로운 글로벌 강자로 다시 한번 부상할 수 있을 것인지 주목되고 있다.

정성춘 선임연구위원

▷서울대 경제학과 ▷히토쓰바시대학(一橋大學) 경제학연구과 경제학 박사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부원장

아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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