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들이 기업 금융에 사활을 걸고 있다. ‘이자 장사’ 비판에 가계 대출 확대가 어려워지자 일제히 기업 대출 영업을 강화하는 것이다. 실적 희비는 엇갈리고 있다. 신한은행은 올해 1분기 4%대에 육박하는 기업 대출 증가율을 기록했지만 KB국민은행은 성장률이 1%에도 미치지 못했다.
30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은행 등 4대 은행의 지난 3월 말 기준 기업 대출 잔액(대기업·중소기업 대출 합산)은 686조7252억원으로 지난해 12월 말보다 18조3637억원 증가했다. 지난해 1분기(1~3월) 기업 대출 증가액 5조8914억원의 3배를 넘는 수준이다.
기업 대출 잔액이 가장 많이 늘어난 곳은 신한은행이다. 신한은행의 기업 대출 잔액은 올해 3개월 만에 160조6834억원에서 167조216억원으로 3.9%(6조3382억원) 늘며 증가율 1위를 기록했다. 이어 하나은행 3.5%(5조7080억원), 우리은행 2.9%(4조9582억원), KB국민은행 0.8%(1조3592억원) 순이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기업 대출 ‘혈투’를 주도했던 곳은 하나은행, 우리은행이었다. 두 은행은 공격적인 영업으로 지난해 연간 기업 대출을 11.9%(17조2180억원), 8%(12조5830억원) 각각 늘렸다. 신한은행은 6.6%(9조9297억원)로 4대 은행 중 가장 낮은 성장률을 기록했다.
그러나 기존 거래처까지 뺏기는 상황에 직면하자 신한은행은 올해 본격 경쟁에 뛰어들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올해 초부터 신한은행이 굵직한 기업 대출 영업을 모두 따내며 견제 대상 1위로 급부상했다”며 “올해 경쟁은 더 치열해지는 양상이다”라고 했다. 신한은행은 본점 소속 기업금융 전담역인 PRM을 중심으로 기존 거래 내역이 없는 기업을 유치하고 종합 금융 설루션을 제공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또 기업, 자산관리, 기관을 담당하는 PRM을 한 팀으로 묶어 협업을 강화하고 있다.
반면 국민은행은 기업 대출 증가율이 1%에도 미치지 못했다. 국민은행은 기업 대출 잔액 기준으로는 1위를 수성하고 있으나, 이런 추세라면 ‘기업금융 명가 재건’을 목표로 세운 우리은행의 추월이 예상된다. 우리은행의 지난 3월 말 기준 기업 대출 잔액은 175조4327억원으로 국민은행(176조5165억원)과의 격차가 1조원가량에 불과하다. 지난해 3월 말 두 은행의 기업 대출 잔액 격차는 5조4114억원이었다.
은행들이 기업 대출 확대에 심혈을 기울이는 것은 정부가 가계 빚 총량 관리 강화에 나서며 주택담보대출 등을 늘리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올해 초 주요 은행들은 올해 연간 가계 대출 증가율을 1.5~2% 수준으로 관리하겠다는 계획을 금융 당국에 보고했다.
새로운 활로 모색이 불가피해진 은행들은 ‘역마진’까지 감수하는 모습이다. 은행 고위 관계자는 “역마진이 나는 사례도 속속 나오고 있지만 (거래처를) 뺏기지 않으려면 경쟁 은행보다 낮은 금리를 제시할 수밖에 없다”며 “다만 장기적으로 보면 임직원 급여 통장, 카드 개설 등의 부수적인 이익을 통해 상쇄할 수 있는 부분이 충분하기 때문에 손해를 보는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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