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대표 엔터주 하이브가 창사 이래 최대 위기를 맞았다. 산하 레이블인 민희진 어도어 대표와 갈등의 골이 깊어지면서 엔터주의 기업가치 산정에 가장 중요한 인적자원에 타격을 입은 것이 발단이다. 1분기 실적은 부진했지만, 2분기부터 하이브의 주가 청신호를 전망하고 ‘매수’ 의견을 내놓던 증권가에서도 이번 이슈가 당분간 진흙탕 분쟁으로 확산할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
엔터주 특성상 주가수익비율(PER)이 높은 하이브의 향후 주가 변동성 확대는 불가피할 전망이다. PER이 높다면 기업의 현재 버는 수익에 비해 미래 가치를 높게 평가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하이브의 지난해 연간 결산 PER은 51.84배로 코스피 기업의 평균 PER인 11.3배에 비해 약 5배나 높다. 하이브의 주가가 주가가 주당순이익(EPS)에 비해 50배 넘게 고평가됐다는 의미다.
국내 엔터사 최초 ‘플랫폼’ 기반…멀티 레이블 체제 구축
2005년 빅히트엔터테인먼트로 설립된 하이브는 2010년 창립 5년 만에 유가증권시장에 상장했다. 2021년 초에는 다양한 분야에 전문성을 가진 구성원들이 수평적으로 일할 수 있는 시스템이자 아티스트와 팬 등이 긴밀하게 모여있는 ‘연결과 확장, 관계’를 상징하는 의미에서 하이브로 사명을 변경했다.
하이브는 음악을 기반으로 한 엔터테인먼트 라이프스타일 IT플랫폼 기업이다. 사업 영역은 레이블, 솔루션, 플랫폼 등 3가지로 구분되며, 2018년 이후 여러 인수·합병(M&A)를 거쳐 멀티 레이블 체제를 구축했다. 대표 아티스트는 빅히트의 BTS(방탄소년단), TXT(투모로우바이투게더), 플레디스의 세븐틴, 투어스(TWS), 프로미스나인, 쏘스뮤직의 르세라핌, 어도어의 뉴진스, 빌리프랩의 엔하이픈, 아일릿, KOZ엔터의 지코, 보이넥스트도어 등이 있다.
기존의 엔터테인먼트 기업들은 주로 음반 산업인 레이블에 집중해 엔터테인먼트를 키워갔다면, 하이브는 아티스트의 레이블을 기반으로 솔루션, 플랫폼 등으로 매출 구조를 다각화한다는 차별점이 있었다. 방시혁 의장이 2021년 사명을 변경하면서 ‘엔터테인먼트’라는 이름을 뺀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방 의장은 2010년 10월 코스피 상장 당시 “플랫폼이 고객에게 어떤 즐거움을 줄 수 있는지를 오래 봐왔다. 모두의 삶 전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세계 최고의 엔터테인먼트 라이프스타일 플랫폼 기업으로 힘차게 나아가겠다”고 밝혔다. 엔터테인먼트 기업에서 콘텐츠(IP·지적재산권) 생산과 소비, 유통까지 아우르는 플랫폼 기업으로 거듭나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대목이다.
이를 위해 하이브는 2019년 6월 자회사 위버스컴퍼니를 통해 엔터테인먼트업계 최초로 팬 커뮤니티 플랫폼 위버스를 출시했다. 네이버, 다음 등 포털 사이트 카페 또는 온라인 커뮤니티에 파편화해있던 팬덤을 자체 플랫폼 하나로 끌어모은 것이다. 팬들은 위버스를 통해 하이브 소속 아티스트와 소통하거나, MD상품을 직접 구매하고, 프라이빗 콘텐츠를 감상할 수 있게 됐다.
글로벌 팬 커뮤니티 플랫폼 위버스 성공…국내 엔터사 최초 매출 2조 돌파
과거 국내 엔터사의 3대 중축이 됐던 SM, YG, JYP에는 찾아볼 수 없던 팬덤의 ‘중앙 집중화’를 실현한 셈이다. 위버스는 국내 엔터사가 IP 생산에만 집중하는게 아닌, 플랫폼 유통 기능까지 직접 할 수 있다는 성공 사례를 만들어냈다. 이듬해 2020년 2월에는 SM엔터테인먼트도 자회사 디어유가 운영하는 버블 서비스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위버스는 특히 K-POP(팝)의 해외 진출 발판이 됐다. 해외에서도 K-팝이 인기를 끌자 다국적 팬들과 아티스트의 소통이 중요해진 시점에서 영어, 중국어, 일본어 등 15개 언어의 번역 기능을 제공해 자유롭게 의사소통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위버스 이용자의 90% 이상은 해외 유저다. 전세계 246개 국가 및 지역의 위버스 이용자는 작년 3분기 말 기준 1050만 명을 기록했다. 지난해 7월 1000만 명을 돌파한 뒤 성장세를 이어나가고 있다.
플랫폼을 기반으로 한 하이브의 사업 확장은 호실적으로 입증됐다. 지난해 국내 엔터사 최초로 연간 매출 2조 원을 돌파한 것이다. 하이브 아티스트들의 글로벌 활약과 해외 레이블 인수가 스트리밍 매출을 끌어당겼다. 2021년 1조 원을 넘게 주고 인수한 이타카홀딩스의 빅머신레이블 그룹과 지난해 3140억 원에 인수한 QC미디어홀딩스가 하이브 국내 레이블의 국내외 매출을 넘긴 영향이 컸다.
안도영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하이브의 2023년은 멀티레이블 전략이 돋보이는 한 해”라며 “다수의 라인업을 통해 BTS 의존도를 낮추고 TXT, 뉴진스, 르세라핌 등 저연차 라인업들이 가파른 성장세를 보여줬다. 이후 데뷔한 보이넥스트도어, 앤팀, 투어스도 케이팝 팬덤 내 인지도를 빠르게 늘려나가고 있어 견고한 파이프라인을 다수 만들어가는 동시에 플랫폼, 게임, 해외레이블 성과도 더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어도어 경영진과 최대 위기 봉착…’민희진 없는 뉴진스’ 주가 변동성↑
하이브는 지난 1분기 다소 부진한 실적을 받아들었다. 앨범 판매량이 전년 대비 73% 감소한 380만 장을 기록하면서 저조했던 탓이다. 하이브의 1분기 매출액은 3960억 원, 영업이익 110억 원으로 지난해보다 각각 4%, 79% 감소했다. 엔터테인먼트 업종이 지난해 하반기 주가 하락 이후 모멘텀 부재와 실적 공백에 대한 우려로 부진한 가운데에도 음원 스트리밍이 33% 성장해 비교적 선방했다는 평가다.
통상 1분기는 직전해 4분기 연말 시상식 성수기 시즌 이후 아티스트들의 활동 휴식기로, 공백기에 해당한다. 하이브는 르세라핌의 컴백 이외에 기존 아티스트들의 컴백 활동이 부재함에도 르세라핌과 아일릿이 빌보드 Hot100 내에 드는 성과를 얻었고 TWS도 국내 차트에서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었다. 세븐틴, 엔하이브의 공연이 있어 BTS의 군 공백기에도 불구하고 매출 600억 원을 올렸다.
증권가에서는 2분기부터 뉴진스와 TXT 등 핵심 라인업들의 활동으로 실적 공백이 제거되며 하이브의 모멘텀이 동시다발적으로 개선될 것으로 내다봤다. 안 연구원은 “미국에서 아레나 급 공연이 가능한 아티스트가 세븐틴, TXT, 엔하이픈 세 팀이나 있고, 하반기에 멤버십 플러스 도입을 앞두고 있다. 코난 그레이와 라우브(Lauv)의 입점은 위버스 플랫폼의 확장성을 증명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지난 22일 하이브가 민희진 대표를 포함한 어도어 경영진의 경영권 탈취 정황을 파악 후 감사에 나섰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하이브의 인적 리스크는 악화했다. 엔터테인먼트사의 주가는 소속 아티스트인 인적자본에서 높은 멀티플이 부여되는 만큼, 센티멘털 측면의 의구심 확대는 치명적인 악재로 작용한 셈이다.
이번 사태는 아티스트가 아닌 프로듀서 민 대표와의 갈등이지만, 민 대표가 걸그룹 뉴진스의 ‘부모’ 역할을 강조해오면서 기자회견 등을 통해 각별한 관계가 재조명되자 하이브에는 소속 아티스트의 리스크만큼 큰 타격을 입혔다.
박수영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그간 하이브의 타사 대비 멀티플 프리미엄 부여의 여러 요인 중에는 멀티레이블에 대한 부분도 있었다. 결국 단기에 실적 부분에서 큰 영향이 확인되진 않겠으나, ‘민희진 없는 뉴진스’의 퍼포먼스에 대한 확인 과정에서 주가의 변동성 확대는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했다.
하이브의 PER이 성장성을 고려해 높게 책정됐다는 점도 주가 변동성이 커질 수 있다고 우려되는 점이다. 하이브의 지난해 분기별 평균 PER은 135.17배로 100배를 훌쩍 넘는다. 현재 주가가 향후 성장성을 반영해 고평가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사건이 발생하자 1주일 만에 하이브의 시가총액은 1조 원 넘게 증발해 코스피 시가총액 순위 40위권 초반에서 이날 49위로 밀려났다. 자회사 어도어와의 갈등이 일주일 넘게 지속하자 향후 기업가치 회복까지 시일 이상 걸릴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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