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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가 장애인의 ‘갇혀 살지 않을’ 권리를 막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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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설을 나오니 취향이 생겼습니다. 머리를 꾸미고 화장을 하는 것이 좋았습니다. 시설에서 가질 수 없었던 취향이 생겼습니다. 동네에서 나만의 취향이 생겼습니다.”

지난 24일 서울피플퍼스트에서 주최한 탈시설 발달장애인 이야기 파티 ‘나도 시설 밖에서 나와서 남들처럼 살고 싶었다’에서 한 탈시설 발달장애인이 한 말이다. 서울시의회에서 ‘서울특별시 장애인 탈시설 및 지역사회 정착지원에 관한 조례(이하 탈시설조례)’ 폐지안이 발의되고 임시회가 시작하자, 발달장애인 당사자들이 서울시의회 의원회관을 찾아갔다.

이들은 “하늘 아래 좋은 시설은 없다”며 탈시설하여 꾸리고 있는 삶을 말함으로써 탈시설조례가 유지되어야 함을 요구했다. 이야기 파티의 사회자도, 발언자도 모두 발달장애인, 탈시설 장애인 당사자였다. 서로 다른 자유로운 일상을 이야기하는데, 어디에도 갇히지 않은 살아있는 목소리가 가지고 있는 힘이 느껴졌다. 이들은 현재 시설에 있는 장애인 동료 또한 자신처럼 자립생활을 할 수 있도록 탈시설조례가 폐지되면 안 된다고 말했다.

서울시 탈시설조례 폐지 위기

2022년 7월 11일 전국 최초로 서울시에서 탈시설조례가 제정되었다. “장애인을 수동적인 보호의 대상에서 자율적인 인권의 주체로 인정하는 방향으로 장애인 정책의 패러다임이 전환되는 추세”에 따라 “장애인이 독립된 주체로서 지역사회에서 자립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자” 제정되었다.

탈시설은 국제인권기준에 명시된 장애인의 권리이다. 유엔장애인권리협약(CRPD)은 장애인이 복지 수혜자가 아닌 권리의 주체로서 장애인의 자율성과 참여, 자립생활 보장받아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렇기에 유엔 장애인권리위원회는 일관되게 탈시설을 말해왔다. 특히 유엔 인권기구인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가 2022년 ‘탈시설가이드라인’을 발표하면서 장애나 질병 등 어떤 이유로도 장애인의 시설수용을 정당화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더구나 한국은 장애인권리협약 가입국이다.

탈시설조례 제정 1년을 넘기지도 못한 지난해 5월 11일, 조례를 폐지하는 내용을 담은 조례안이 주민조례로 청구되었다. 청구인은 “해당 조례는 의사 표현도 힘든 중증장애인들을 자립이란 명분으로 지원주택으로 내몰고 있는 탈시설 정책을 지원하려고 만든 조례”라며 오히려 “중증장애인의 거주환경을 악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어 이의 폐지를 청구하였다”고 밝혔다.

2만 7435명의 서명으로, 지난 3월 21일 서울시의회가 조례청구를 수리했다. 주민조례발안법에 따라 서울특별시의회 의장은 조례청구를 수리한 날부터 30일 이내에 주민청구조례안을 발의해야 한다. 탈시설조례 폐지안은 서울시의회 보건복지위원회에 회부되어 의사일정과 절차에 따라 논의와 심사가 이루어지게 될 예정이다.

▲지난해 서울지하철 4호선 혜화역 인근 공터에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및 종교인 관계자들이 ‘배제된 사람들의 권리 크리스마스’ 예배선전전을 진행하고 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제공

장애인 탈시설 책임을 다할 의지가 없는 오세훈 시정

탈시설조례 5조는 필요한 인적·물적 자원의 확보 및 지원, 탈시설 정책 기본계획의 수립 및 실행, 자치구 및 민간과의 긴밀한 협력체계 구축 등 시장의 책무에 대해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오세훈 서울시장은 당선 이후 장애인 탈시설에 대해 책임지기는커녕 후퇴시켰다.

올해 들어서면서 서울시는 탈시설을 지원하는 ‘거주시설 연계 장애인자립지원’ 예산 19억 원을 삭감하면서 탈시설 지원에 대한 의지가 없음을 대놓고 드러냈다. 또한 지난 2월에 발표한 ‘장애인 자립 지원 절차 개선안’은 오히려 장애인 시설수용을 강화하는 안이었다. 개선안에 따르면 이전과 다르게 시설거주 장애인이 탈시설을 희망할 때 의료진이 자립역량을 조사한다.

본인이 시설에서 나가고 싶다는데, 의료진이 어떤 기준으로 자립역량을 판단할 수 있을까. 이 과정에 장애인 당사자는 없다. 장애인 당사자의 의견을 듣고 욕구를 파악하기보다 의료적 기준과 개인 능력에 따라 탈시설 대상을 판정한다는 것은 차별적이다. 의료적 기준으로 판단한다면 중증장애인은 시설에 남을 수밖에 없다. 재심사로 시설에 돌아가야 하는 일까지 벌어질 수도 있다.

한편 서울시는 서울시 권리중심 중증장애인 맞춤형 공공일자리(이하 권리중심공공일자리) 예산을 전액 삭감했다. 권리중심공공일자리는 탈시설 장애인과 최중증 장애인이 권익옹호, 인식개선, 문화예술의 활동을 하는 일자리이다. 특히 권익옹호 활동은 지역사회에서 장애인권리협약이 이뤄질 수 있도록 장애인 당사자가 직접 홍보하고 모니터링하는 활동이었다.

그러나 서울시가 예산을 삭감함으로써 탈시설 장애인은 노동할 기회를 박탈당했고, 지역사회와 맺을 수 있는 관계도 끊겼다. 서울시사회서비스원 폐지 조례안도 문제이다. 서울시사회서비스원은 공공돌봄을 담당하는 기관으로, 장애인활동지원사도 포함되어 있다. 장애인활동지원사는 장애인의 자립생활을 돕는 돌봄 서비스로, 서울시사회서비스원이 폐지된다면 장애인 자립생활에서 국가가 책임을 다하지 않겠다는 선언일 것이다.

ⓒ국가인권위원회 <알기 쉬운 탈시설가이드라인>

다양한 사회구성원이 함께 사는 사회

우리는 협소한 경험 속에서 협소한 생각을 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을 할 수 없다거나 도전 행동이 무섭다는 등의 이유로 장애인은 집이나 시설에만 있어야 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은 격리되어왔다. 비장애인 중심사회에서 장애인을 위한 제도와 시설은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았다. 휠체어 탄 장애인이 갈 수 없는 식당들이 많다. 장애인은 정책과 공약 등 선거공보물을 알기 어려워 투표하기 어렵기도 하다.

2020년 보건복지부 전수조사에 따르면, 시설에서 나가서 살고 싶은지에 대해 응답자들은 ‘그렇다’에 33.5%, ‘그렇지 않다’에 59.2%로 응답했다. 그런데 그렇지 않다고 답한 이들의 이유를 살펴보면, ‘나가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몰라서'(21.9%), ‘경제적 자립 자신 없음'(14.7%), ‘가족이 이곳에 있기를 원해서'(9.7%) 등이 이유다. 즉 시설에 만족해서 시설에 있고 싶다고 한 것이 아니다. 결국 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살 수 있는 기반이 없기 때문에 장애인은 시설에 있으라는 것이다. 말이 되지 않는다.

시설은 장애인이 생활 방식을 선택할 수 없고 일상생활을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자율성이 부족한 환경이다. 국제인권 기준이 말하듯, 장애인 탈시설은 권리이다. 탈시설 권리가 잘 보장될 수 있도록, 이제까지 장애인에 대해서 시혜적이고 보호적인 관점에서만 있었던 제도들이 아닌 장애인이 스스로 삶을 결정하고 꾸려나갈 권리 중심의 제도와 정책들이 더욱 필요하다. 탈시설조례는 장애인의 자립생활 정책을 보다 체계적으로 구축하기 위해 탈시설을 권리로 명문화한 중요한 조례였다.

인권조례를 폐기하는 것은 후퇴적 조치이다. 일부 시설장들의 이해만을 높이는 탈시설조례 폐지안은 장애인의 인권을 거꾸로 돌리는 일이다. 인권적이지 않은 사유들로 인권조례를 폐기하는 것이 정의로운 일일 수 없다. 서울시 지방정부와 서울시 지방의회는 기계적으로 조례폐지안이 발의됐으니 심의하는 것이 아니라 서울지역에 사는 장애인의 인권 보장을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 인권의 역방향은 국가가 할 일이 아니다.

장애인들이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 권리”를 요구하고 있다. 탈시설을 위한 장애인 당사자의 절박한 외침이 나아가 장애인과 비장애인, 서로 다른 몸들이 모여 만들어낼 이야기는 얼마나 다채로울까. 우리의 일상이 춤이라면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추는 춤은 얼마나 창의적일까. 상상만 해도 벌써 재밌다. 다양한 몸들, 다양한 사회구성원과 함께 사는 사회를 구체적으로 상상하며 상상이 실현될 수 있도록 우리 함께 목소리를 높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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