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의 홍콩H지수 기초 주가연계증권(ELS) 대규모 손실 사태에 ‘책무구조도’ 시행을 가정해볼 경우 최고경영자(CEO)까지 책임을 물릴 수 있다는 금융당국 판단이 나왔다.
21일 금융당국과 금융감독원은 검사를 완료한 11개 홍콩H지수 ELS 판매사(5개 은행, 6개 증권사)에 검사의견서를 발송했다. 검사의견서에는 상품 판매 과정의 부당·위법 행위가 적시된다. 각 판매사는 의견서에 대한 답변서를 2∼3주 내로 제출해야 한다.
금융당국은 법률 검토와 제재 양정을 거쳐 이르면 다음 달 제재심의위원회 일정을 잡은 뒤 제재 사전 통보를 진행할 예정이다. 최종 제재는 금융위원회를 거쳐 확정된다.
이에 금융당국은 사고 재발 방지를 위해 금융사의 책무구조도 도입을 의무화했다.
금융위원회는 최근 홍콩 ELS 사태에 책무구조도 시행 상황을 시뮬레이션 해 본 결과 은행장 등 최고경영자(CEO) 제재까지 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국회에서 통과된 법 취지 등을 고려할 때 은행장에도 책임을 물릴 수 있다고 판단했다”며 “금융감독원 검사를 통해 지적했던 행위 유형들과 관련해 책무구조도에 책임이 명확히 규정돼 있다면 은행장도 책임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예를 들어 금감원 검사 결과 지적 사항에 H지수 하락 시기에 오히려 판매 인센티브를 더 강화했다는 내용 등이 있는데, 이런 사항들이 담당 이사나 은행장에게도 보고됐다면 은행장도 책임을 져야 한다”고 부연했다.
앞서 김주현 위원장은 지난 1일 시중은행장들과 만난 자리에서도 “책무구조도가 형식적으로 운영되지 않도록 하려면 이번 ELS 사태 상황을 가정해 책무구조도가 있었다면 어떤 결과가 나타났을지 생각해보는 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이러한 금융당국 판단을 고려해봤을 때 책무구조도가 미리 도입됐더라면 5대 은행장들은 금융당국의 제재를 피할 수 없었을 것으로 보인다.
기본적으로 책무구조도는 대표이사에 내부통제 관리 의무를 부여하고 있다. 조직적이거나 장기간·반복적, 광범위한 사고 발생 등 시스템 실패로 판단될 경우 이 같은 관리 의무를 다하지 못한 점을 들어 CEO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그간 횡령이나 부실 펀드 사태 등 대형 금융사고가 터져도 행위자와 상위 감독자만 제재를 받았다. CEO들을 제재할 수 있는 근거가 불명확한 측면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급자만 책임을 물다 보니 내부통제 유인이 부족하고, 이 때문에 대형 금융사고가 반복된다는 지적이 이어져 왔다.
이번 ELS 사태 역시 책무구조도가 도입되기 이전의 금융 사고라 CEO 제재까진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현행 법 규정과 달리, 만약 이번 ELS 사태 시행 전 금융권에 책무구조도가 도입됐다면, CEO까지 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게 금융당국의 검토결과다.
금융회사 임원에 주요 책무에 대한 빈틈 없는 배분이 이뤄지는 책무구조도가 도입되면 금융당국 제재 시 제재대상이 행위자-감독자 체계에서 행위자-책임자 체계로 바뀐다.
책무구조도 도입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 개정안은 오는 7월 시행되며, 금융당국은 금융지주와 은행에 6개월의 유예기간을 부여했다.
이에 따라 금융지주와 은행권은 내년 1월까지 책무구조도를 제출하면 되지만 대부분 올해 하반기 조기 시행을 목표로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KB국민은행은 딜로이트 안진회계법인과 모든 본부 부서가 참여하는 ‘내부통제 제도개선 태스크포스팀(TFT)’을 구성한 바 있다. 지난 1월에는 킥오프(Kick-off) 설명회를 개최하는 등 본격적으로 프로젝트 추진을 시작했다.
신한은행은 책무구조도 도입 준비를 지난 2022년 말부터 시작했다. 지난해에 관련 작업은 거의 완료했으며, 올해 말까지 전산시스템까지 갖춘 후 감독당국에 관련 자료 제출예정이다. 그룹 내 주요 회사(증권, 카드, 라이프)들도 지난해 하반기 준비 작업을 시작했다.
NH농협은행은 현재 책무구조도 도입을 위한 관련 사안 준비 중에 있으며, 기간 내에 감독당국에 제출예정이다.
하나은행과 우리은행도 지난해부터 책무구조도 준비 작업에 착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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